비시즌에 뭐해요? (4)

오늘만을 기다렸어! 팬미팅!

by 지혜

배구에 대한 열기도 무더위에 눌릴만한 한 여름이 되면,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각 팀에서는 팬들을 위한 행사가 진행되곤 한다. 본격적인 시즌 준비를 할 때는 부담스럽고, 시즌이 끝난 직후에는 선수단의 휴식일정도 있기 때문에 여름 즈음이 암묵적인 행사의 기간이 된 것 같다. 신기하게도 여태까지 각 팀의 팬미팅 일정이 겹쳐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행사를 진행하는 마케팅 업체가 몇 없을뿐더러 팬미팅의 진행을 끝난 직전 시즌의 업체가 담당하느냐, 새 마케팅 업체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하되 팀별 일정이 겹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재밌게도 우연히 두 팀의 팬미팅을 참여했는데, 같은 업체가 담당해서 담당자분들을 며칠 차이로 다시 만나게 됐었다.)


팬미팅에는 어떤 팬들이 참여하는지와 어떤 행사를 하는지 많이들 기대하고 궁금해한다. 늘 코트 위에서 경기를 뛰는 모습, 고작해야 경기 끝나고 사진이나 사인을 받거나 혹은 팀에서 이벤트성으로 진행하는 팬사인회에서 짤막하게 만나는 선수들을 공식적으로 합법적으로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팬미팅'이라는 행사가 팬들에게 얼마나 기대감을 주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보통은 각 팀의 공식 서포터즈(연예인들의 팬클럽과 비슷하다.)와 시즌권 회원들, 간혹 이벤트로 선발한 일반 팬들이 참석하기도 하는데 선수단의 구성이 20명 남짓이고 한 번에 수용 가능한 인원은 한정적이라 보통 선수 3~4명당 조원 8~10명 정도로 구성해서 함께 게임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노는(?) 행사가 진행된다.


팀에 따라서 진행하는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운동선수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미니 운동회와 가족오락관 스타일의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된다. 시즌 내내 경기장에서 함께하던 장내 아나운서가 mc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로는 모든 행사들이 취소되었지만(우리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전까지는 선수들이 생활하는 숙소와 체육관 등에서 같이 얘기도 하며 게임하는 그 시간이 참 특별하고 좋았다. 경기장에서야 늘 보던 얼굴이라 하더라도 쌓이려야 쌓이기 어려운 친분을 팬미팅 때 함께 놀고먹고 하다 보면서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는 것이다.


여러 구단의 팬미팅을 참여하는 팬들은 '**팀은 무슨 게임했데요', '어디는 영화 본다고 하던데요?', '물놀이는 **팀 때문에 다른 팀도 시작했데요' 등 각 팀별 행사를 비교도 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뻔하기도 하지만 그 별 볼 일 없는 행사도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하니 즐겁기 그지없다.


내가 참석했던 가장 인상적이었던 팬미팅의 프로그램은 바로 숙소 탐방이었다. 선수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일부 시간이 주어지며 그동안 자유롭게 선수단의 숙소를 구경하는 것(러브하우스 느낌의 집들이가 된다.) 숙소라고 해야 스포츠단의 숙소라 다 똑같이 생긴 방이 여러 호실 있는 것이지만 우리들이 사는 아파트도 같은 집이어도 집주인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듯 선수들의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보이는 지저분한 물건들을 서랍에 다 넣어둔 선수, 냉장고에서 음료수며 영양제며 꺼내놓고 웰컴 드링크도 주는 선수, 앞서가는 팬서비스로 침대에도 앉고 누워보게 해주는 선수, 기념품(?)이라며 자기 물건을 주는 선수들도 있고 말이다. 각 방에는 선수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듯 정리정돈 상태와 책이나 물건들의 배치/보유가 달랐고,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처럼 자기 방을 쑥스러워하면서도 손님에게 하나하나 소개하는 선수들과 그걸 구경하는 팬들도 너무 즐거워했었다. 뜻하지 않게 내가 준 선물이 잘 보관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팬들의 감동지수는 더 업되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은 선수와 팬도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울림이 필요하고, 어울리면 즐거워지는 법. 그 한나절의 몇 시간으로 선수들은 오랜만에 활기를 찾고 다시 다음 시즌을 준비할 힘을 얻으며, 팬들은 팬심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얼굴들을 새로 시작하는 시즌에 경기장에서 다시 마주하면 얼마나 반가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테지.


우리 팀의 경우 행사의 끝무렵이면 구단에서 준비한 기념품들을 선수들이 나눠주며 퇴장할 때 하이파이브(거의 뭐 공식인 것 같다)와 감독님의 아이스크림 선물이 매 시즌마다 반복되었던 것 같다. 편하게들 보내라며 시작할 때 인사하고는 행사에서 빠져있던 감독님은 끝무렵 아이스크림과 함께 돌아오셔서는 경기장에서의 날 선 모습이 아닌 가까운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함께해주셨다. 덕분에 갈색 피부의 감독님 얼굴, 아이스크림은 여름이면 늘 떠올리게 되는 추억이 되었다.


좋아하니까 더 많이 알고 싶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시간과 기회가 없어서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주지 못했던 마음은 '팬미팅'이라는 이름의 행사로 결실을 맺는다. 무르익는 여름의 더위도 다 이겨낼 수 있는 추억으로 말이다.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금 선수들과 만나는 팬미팅을 하게 된다면 모두들 말하겠지. '그때 참 답답했잖아', '그래도 다시 만나니 반갑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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