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이름으로 견뎌내는 오늘(1)

PART1. '나'로 살던 시간들

by 이슬기


출산 전, 나는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청년 여성이었다.


아침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했고,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회의가 끝나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퇴근 후의 만찬을 상상하곤 했다. 퇴근길에는 친구와 마주 앉아 맥주잔을 부딪치며 “지금 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이 당연했고, 내 시간을 마음껏 쓰는 것도 당연한 줄 알았다.




나의 20대는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프로불만러’.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나’와 ‘사회’에 대해 배웠지만, 성찰보다는 불만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불만이 많았기에 해결책을 찾고 싶었고, 그 마음이 나를 복지정책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석사과정까지 공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며 지냈다.


덕분에 20대 후반에 첫 직장을 얻었고, 그제야 뒤늦게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일까?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일까?’


그러나 현실 속의 나는 그저 ‘급여를 받는 노동자’였다. 이상을 꿈꾸거나 실현할 시간도, 용기도 없었다. 고민만 이어진 채, 불만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동안 나는 30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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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막연히 생각했다. 30대가 되면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능력을 인정받는 커리어우먼, 내가 원하는 것을 척척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어른,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불안했고, 의존적이었다. 작고 소중한 회사의 ‘급여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렇게 불안한 채로 시간은 흘렀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결혼은 다행히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진 않았다. 가족관계가 확장되면서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때는 몰랐다. 곧 ‘엄마’라는 이름이 내 삶을 완전히 흔들어 놓으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