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발라를 찾아서
Nicholas Roerich Museum New York
Home About Nicholas Roerich Collection Explore Gift Shop On September 1st, 1939, Hitler invaded Poland and World War II broke out. It ended with the aggressor's capitulation and the Nuremberg trials, in which the war criminals were held accountable for crimes against peace, war crimes, and crimes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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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리히 사이트에서 발췌
나의 직장은 학교다. 학교 뒤를 가보면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이긴 하지만 한 번도 들어간 적도 없고 들어가려 해도 항상 문이 잠겨있다. 눈이 왔던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그랬다.
몽골어로 "뢰리히 나링 샴발라 모제-Roerich's Shambhala Museum Рерихийн Шамбала Музей"라고 쓰여 있다. 해석하면 "뢰리히 무리들의 샴발라 박물관"이다. 우리 학교 위치는 중두른잠에서 업체르 사이에 있다. 바로 학교 뒤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이 러시아 사람이 왜 여기에 박물관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에게도 물어보면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영문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Nicholas Konstantinovich, 레리히(1874-1947): 러시아의 화가·고고학자·저술가; 1920년 미국으로 이주"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여기에 방문했을까? 또 샴발라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샴발라는 뭐지....라는 의문이 아직도 낯선 몽골 땅에 의문으로 다가왔다.
검색의 힘을 빌어 먼저 샴발라에 대해 알아보면
Shambhala : 티베트 불교에서 믿는 가공의 낙원이다.
티베트의 깊숙한 곳에 있다고 전해지는 현자들이 살아가는 이상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낙원이며,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들이 줄지어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다. 이곳에는 8개의 꽃잎에 해당하는 각 분지가 있고, 분지마다 천만 개의 도시가 있다고 한다. 또 이 도시를 거느린 12개의 나라가 있고, 각 나라마다 왕들이 거느리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은 병에 걸리지도 않고, 굶지도 않으며, 싸우지도 않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현생에 낙원, 천국이다. 샴발라를 찾다 보니 연관 검색어에 샹그릴라가 떴다. 검색해 보니 샴발라=샹그릴라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인도어의 조상인 산크리스티어로 침묵의 장소, 평화의 장소라는 어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샴발라는 현생에 천국이지만 물리적인 위치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 사막의 신기루 같은 곳이다. 불교 용어를 빌리자면 공덕을 쌓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찾기 위해 샴발라를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J. 힐튼이라는 사람은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통해 샴발라가 더 유명해졌고(영화로도 상영, lost horizon), 이후에 독일의 아돌프히틀러도 부하들을 시켜 티베트의 지역 안에 샴발라를 찾는 노력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뢰리히는 누구인가? 우선 그의 작품을 보면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드러나 있다. 러시아 정교회 복장의 구도자의 모습, 교회 또한 대부분의 신비로운 설산 풍경, 티베트불교의 부처의 모습은 러시아 화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https://www.roerich.org/museum-paintings-catalogue.php
Catalogue paintings collection Nicholas Roerich Museum
Museum Collection ■ Paintings ■ Catalogue The Museum collection comprises 210 paintings by Nicholas Roerich. All of them are presented here and you can browse through them in two different ways. The thumbnails view allows you to have a birds-eye view of the collection. The images are displayed in 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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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사람은 한 종교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중앙아시아 원정을 다니면서 그린 그림을 보면 종교도 캠퍼스 안에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부처를 만나는 수도승; 그림제목은 모르지만 그렇게 보인다.>
위에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정도 결론에 이르렀다. 뢰리히는 그림을 그리는 여정 특히나 샴발라를 향해 티베트를 가는 여정을 택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몽골로 또 티베트 어딘가에 있을 샴발라를 찾았을 것으로 압니다.
그 여행에 혼자가 아닌 팀으로 갔을 것이었기에 몽골 우리 학교 뒤편에 있는 뢰리히 샴발라 박물관은 그와 그 팀들이 머물렀던 장소로 추정됩니다.
기독교인 내가 뢰리히를, 샴발라를 생각하며 이렇게 찾아 헤매는 것은 단순한 알고 싶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찾아본 곳이다.
이상향인 샴발라를 찾기 위해 떠난 그들은 죽기 전에 샴발라를 봤을까? 그러나 나는 샴발라를 갔다 왔다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알았다면 어땠을까? 유명한 관광지가 되지 않았을까? 얼마나 깊은 공덕(선한 행동, 덕)을 쌓아야 샴발라를 볼 수 있었을까? 에베레스트와 세상의 지붕과도 같은 그곳에 정말 샴발라가 있었기에 찾아 떠난 이들이 보지 못한 샴발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있다. 몽골 사람에게는 월급인상, 요즘 시위하고 있는 부패한 정치인들의 처단, 우리 통통한 선생님에게는 50킬로대의 다이어트가 샴발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의 샴발라는 가족이 한국으로 떠나 홀로 있는 저녁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샴발라다.
오늘 샴발라를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