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낙원을 본 적이 있나요?
핀나왈라 코끼리 고아원 기행
어느 화창한 오후. 나는 열네 살 소년의 눈으로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 한 마리를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 같은 건 단숨에 제압할 만한 거수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좁은 우리를 처량하게 맴돌고 있었다. 콘크리트를 바른 회색 우리는 얼핏 보기에도 감옥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그저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로 코끼리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물끄러미 코끼리를 보고 있던 장면은 나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고 이따금 코끼리를 생각할 때마다 그날 느낀 측은의 정을 떠올리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
작년 여름 스리랑카로의 여행을 결정한 것도 코끼리와 무관하지 않았다. 스리랑카에서는 도로를 횡단하거나 물가에 나온 코끼리를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고 들었다. 한국 사람은 없고 코끼리는 많은 곳. 단순히 그런 이유로 나는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서 마주한 코끼리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여행 셋째 날. ‘핀나왈라 코끼리 고아원’에 도착해 입장권을 샀다. 코끼리 고아원은 내전과 밀렵으로 어미와 터전을 잃은 코끼리들을 보호하고, 최종적으로 그들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선한 의지로 세워진 시설인 만큼 코끼리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때는 마침 코끼리들이 목욕을 하는 시간이었다. 고아원 맞은편에 있는 목욕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 보기로 했다.
코끼리들이 무리 지어 강가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조금 지나자 코끼리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 한 마리 걸음을 옮기며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로 샤워를 했다. 그런데 과연 코끼리는 사람이 뿌려주는 물줄기를 좋아할까? 나라면 스스로 물을 끼얹는 쪽이 더 만족스러울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코끼리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미건조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물에 젖는 바람에 얼굴이 더욱 어두워져서 코끼리의 기분이 어떤지는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코끼리 떼는 사람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난간 사이로 기다란 코를 들이밀었다. 그러다 다시 사육사의 통솔에 따라 육중한 엉덩이를 들썩이며 흙길을 빠져나갔다. 고아원으로 돌아간 코끼리들은 너른 들판에서 코로 나뭇잎을 주워서는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좀 다급해 보였다. 마치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혼이 날까 봐, 주는 대로 먹지 않으면 빼앗길까 봐 억지로 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맞은편 울타리에는 과일 먹기를 기다리는 코끼리 한 마리가 있었다. 인간이 손으로 건네주는 과일을 받아먹는 게 습관으로 굳어진 듯했다. 코끼리의 두툼한 혓바닥은 수박과 바나나를 차례차례 집어삼켰다. 나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그 모습을 관람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 녀석의 피부를 한번 쓰다듬어 보았다. 메마른 지표면이나 딱딱한 고목을 만지는 듯한 감촉이 손바닥으로 전해져 왔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닿은 곳은 고아원 구석에 위치한 그늘진 축사였다. 그곳에는 쇠사슬에 발이 묶여있는 어린 코끼리들이 있었다. 한참 동안 그들에게 시선이 가닿았다. 자꾸만 좌우로 코를 흔드는 게 꼭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바로 옆에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힘이 센 코끼리를 다루기 위해 사슬이 사용되며 이는 인간과 동물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런 뻔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보호를 위한 통제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나로서는 바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코끼리의 천국이라니. 내가 가져온 생각은 아주 오만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코끼리는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반나절 방문해놓고 시설의 모든 면을 일일이 평가할 수는 없지만, 코끼리 고아원은 결코 천국은 아니었다. 코끼리는 야생동물이다. 인간이 만든 공간은 코끼리의 집이 될 수 없다. 그래, 이런저런 방식으로 코끼리를 배려한다고 해도 절대로 코끼리에게 낙원이 되지는 못하는구나. 나는 쓸쓸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고아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리랑카 여행이 끝날 때까지 코끼리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