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함께 보낸 한 해
동물원에 구슬프게 퍼지던 울음소리
몇 년 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일 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대학교 교양 수업을 통해 유럽의 동물원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조사하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동물원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지원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호랑이나 곰 같은 동물들을 담당하는 맹수사로 배정을 받았다. 같은 팀원들 중에는 사육사를 꿈꾸는 동물 관련학과 학생도 있었고, 동물원 동물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직장인도 있었다. 동물과 별다른 접점 없이 살아가는 내 입장에서는 모두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맹수사 내부 방사장의 철창 앞에 서면 호랑이는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지나치는 동안 호랑이들은 마치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한 것 마냥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라도 하면 적잖이 섬뜩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고기와 생닭을 나무 막대에 꽂아 철창 너머로 넣어주었다. 호랑이들은 서로 더 빨리, 더 많이 먹으려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난리를 쳤다. 식사 중인 호랑이를 관찰하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호랑이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아무리 철창 안에 갇혀있다고 해도 그렇게 험상궂은 얼굴을 하면 소름이 돋았다.
사육사의 감독 아래에서 나와 팀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좁은 공간에서 무료해 보이는 호랑이들을 조금이라도 활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할지 궁리하고, 정해진 최종안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종이 상자 속에 먹이를 숨겨서 던져주면 호랑이들은 한참을 가지고 놀았고, 향수를 뿌린 대형 부머 볼을 제공해주면 물고 빨고 사족을 못썼다. 가을 낙엽을 모아다가 천장에서 뿌려주기도 했고 호랑이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통나무를 방사장 가운데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방사장 바닥에 쌓여 악취를 풍기는 배설물을 치우고 깨끗한 흙을 퍼 날라 깔아주는 건 제일 기본적인 일이었다.
호랑이를 위한답시고 매번 땀을 뻘뻘 흘리고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그러는 동안 호랑이도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동물원의 호랑이는 자신의 진짜 집이 아닌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인간에 비하면 더없이 약한 동물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와 다른, 힘없는 존재들의 처우를 개선해주어야 한다. 이 넓은 세상은 우리끼리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우리만 잘 살면 돼'라는 식의 마인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호랑이들과는 나름대로 정이 들었다. 처음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맹수라는 생각에 거리감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호랑이도 그저 덩치 큰 고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활동을 끝마치던 날, 호랑이의 몸집은 체감상 처음 나를 압도했던 그것에 견주어 훨씬 작아져있었다.
가까이에서 정확하게 들어본 바, 호랑이의 울음소리도 흔히 일컫는 '어흥'과는 생판 달랐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꾸어어엉 하고 울부짖는 그 소리는 차라리 뱃고동 소리에 가까웠다. 어쩐지 구슬프게 들리던 그 울음은 내 귓가에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