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눈물
집에서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는 손빨래를 할 때가 그랬다. 스무 살 여름방학 때 서유럽을 짧게 여행했다. 6일째 되는 날, 파리의 저가 호텔 욕조에서 밀린 빨래를 했다. 두 손 두 발을 써가며 구겨진 속옷과 티셔츠를 빨았다. 말년 휴가 때는 미리 부대에 허가를 구하고 도쿄에 갔다. 게스트하우스 공용 화장실 세면대에서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빨래를 했다. 인도의 뉴델리에서는 2주 남짓 그날그날 입었던 옷들을 규칙적으로 빨았다.
빨랫감을 한데 모아 비누칠을 하고, 손끝에 힘을 다해 짓누르다 보면 ‘아아, 나 멀리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손빨래를 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낯선 상대와 눈빛을 교환하며 환전을 할 때, 중국어 혹은 일본어로 된 인사말을 들으며 오해와 차별을 살 때, 물갈이하는 탓에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 희한한 건물들 사이로 희한한 길을 헤맬 때도 그렇다.
1
스리랑카에서 삼 일을 내리 울 때도 나는 내가 완벽한 이방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여행의 이틀째 되는 날, 오전에 툭툭 기사에게 바가지를 써 거금을 지출하고 원통한 기분으로 버스에 올랐다. 내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요란한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승객으로 빽빽한 버스에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를 그대로 들이마셔야 했다.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스리랑카의 중부 도시 담불라에 도착했을 때, 엉덩이가 거의 네모가 될 지경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이미 해가 진 뒤였고, 근처에 식당이나 슈퍼마켓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은 숙소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숙소의 안주인은 꼬뚜와 두 종류의 커리로 상을 차리고 미리 부탁한 병맥주까지 가져다주었다. 라이언 라거 한 모금에 고단했던 하루가 스쳐 지나갔다. 여자 셋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다른 투숙객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들렸다. 물어볼까 말까 속으로 열 번쯤 고민하던 나는 “웨어 아 유 프롬?” 서투른 영어를 뱉었다. 그들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식사를 마칠 때쯤 가슴 안쪽이 저릿했다. 돌아온 내 방 한 칸이 썰렁했다. 락 발라드를 크게 틀어 놓고 엉엉 울었다. 천장에 매달린 파란색 모기장만이 나를 한심하다는 듯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2
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에 홀려 어느 광장으로 들어섰다. 대형 현수막에는 ‘Food Festival’이라고 적혀 있었다. 매혹적인 글귀였다. 중앙에 있는 무대 위에서는 다섯 사람으로 구성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무대를 앞에 두고 선 채로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각 테이블의 기둥에는 사자 문양의 조명이 불을 밝혔다. 광장의 가장자리에 설치된 각 부스에서는 스리랑카 전통 음식부터 중국과 이탈리아 음식까지 세계 각국의 음식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굳이 태국 코너로 가서 팟타이 한 접시를 주문했다. 허겁지겁 포크질을 하고 나니 배가 든든하게 찼다. 아무리 그래도 생맥주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플라스틱 잔에 가득 따른 맥주를 받아 들었다. 그때였다.
And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It is where we are
It’s enough for this wide-eyed wanderer
That we got this far
엘튼 존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이 흘러나왔다. 정말 사랑을 느끼기 딱 좋은 밤이었다.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멀리 와 있었다. 귀여운 꼬마 아이가 무대 바로 앞에서 춤을 추었다. 단란한 가족, 부둥켜안은 연인, 사이좋은 친구들이 보였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사랑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혼자라는 사실이 서글퍼서였을까. 이 행복을 우리가 아니라 나 혼자 즐기고 있다는 게 아까웠던 걸까. 축제의 한복판에서 한 명의 방랑자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
3
‘Balaji Dosai’.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인데 제법 인기가 많았다.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층이 만석이 됐다. 점원은 뒤늦게 몰려온 단체 손님을 2층으로 안내했다. 두 개의 요리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한국에 있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되게 좋아.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잘 말하던 와중에 갑자기 울컥했다. 눈물샘이 또다시 통제력을 잃었다. 당연히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듣는 사람은 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날이 저물면 사람이 감상적으로 변해버리는 것 같아서 이제는 지는 해가 원망스러웠다. 음식을 앞에 두고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빨래를 하듯 질질 눈물을 짰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밝은 얼굴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은 맛있게 식사를 하거나 일행과 정답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빙하던 여직원은 내가 음식 맛에 감탄해서 우는 줄 알았으려나. 미안하지만 몽땅 남기고 말았다.
닭고기 볶음밥, 밀크셰이크, 새우 커리, 홍차.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먹었다. 오래된 사원, 깎아지른 바위 요새, 광활한 차 밭과 해풍이 불어오는 항구. 보고 싶은 것이 하도 많아서 여섯 개 도시를 바쁘게 옮겨 다녔다. 언제 어디서 어린애처럼 울어대도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무척이나 덥고 외로웠지만, 뚜렷한 희망을 안겨준 여행이었다. 좋든 싫든 이제는 완벽한 이방인이 되는 것이 몹시 어려워졌다. 스리랑카에서의 자유 여행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여행이 간절하게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