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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n 08. 2018

노르웨이의 숲

11. 노르웨이의 숲


독서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실컷 떠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공감하고, 웃고,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문득 떠올라 그 말을 전하고, 그렇게 꼬리를 물고 대화가 계속 되어야 한다. 작품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다가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어야 한다. 답답한 일상을 털고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그것이 혼자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독서 모임만의 가치일 것이다.  


다 읽지 못했거나, 오래 전 기억만으로는 힘든 일이다. 하루키 모임은 한가지 규칙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다시)읽고 올 것. 신선한 감상이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모임 참석을 위해 시간을 내어 책을 읽고, 토요일 오전을 희생할 만큼의 성의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 자리가 진지하고 또 유쾌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 모임이라면 발제나 다른 준비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하고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후 지금까지 열네 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또 그만큼의 단편집과 스무 편쯤 되는 에세이를 썼다. 다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40여년간의 작가 생활을 감안하면 지독하게 꾸준한 작가라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특히 장편의 경우 1987년 ‘노르웨이의 숲’, 1994년 ‘태엽 감는 새’, 2002년 ‘해변의 카프카’, 2009년 ‘1Q84’, 2017년 ‘기사단장 죽이기’등 특정 시기에 치우치지 않는, 그야말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을 읽는다면 발표 순서를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1Q84’처럼 일본에서만 천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 셀러와 함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도 가리지 않고, 20대 후반에 발표된 첫 작품부터 어느덧 일흔이 가까워진 나이에 발표된 작품까지 꾸준히 읽어가다 보면, 작품의 감동과 함께 또 다른, 그의 삶에 비추어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떠나는 14개월의 여행이 될 것이다.  


미리 참석 신청을 받거나 정원을 제한하는 것도 불필요해 보였다. 여건에 따라 참석할 수도, 또 좋아하는 작품만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라 가라 하지 말 것’ 이것도 중요한 원칙이다. 이름도 연락처도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묻지 말자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고, 또 몰라도 상관 없다. 참석 인원이 많으면 유쾌한 자리가, 적으면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모임장은 역시 사진책방 고래의 차대표님이 맡아 주기로 했다. 책과 하루키와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니 그 이상의 적임자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모임 준비와 안내를 맡고, 커피 내리고 그리고 앉아서 함께 대화에 참여하면 될 일이었다.


첫 모임은 2017년 3월 4일 토요일이었다. 조마조마한 시간이 지나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단골 분들과 SNS를 통해 참여한 분들이 모여 첫 모임이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 꼭 열 명의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키에 관한 추억을 꺼내기 바빴다. 어색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특별한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겉치레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키의 모든 장편과 에세이, 단편집 각각 한 권씩을 포함해 16개월 동안 진행된 1기 마지막 모임은 2018년 6월 2일 ‘기사단장 죽이기’편이었다. 자리에는 첫 회에 참석했던 아홉 명 중 네 명이 남아 서로 눈을 맞추며 즐거웠던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두 번째 ‘1973년의 핀볼’편은 세 명밖에 참석하지 않아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양을 쫓는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편을 거치며 점차 안정되어 갔다. 다음 작품은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공교롭게도 2017년은 ‘노르웨이의 숲’이 발표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어느덧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이 유명한 작품은 하루키 모임에서도 가장 특별한 작품이 될 것이다.  


안내 공지가 나간 후 SNS를 통해, 또는 카페에 직접 방문해 참석 의사를 밝혔던 이들이 유난히 많았던 모임에는 열다섯 명이 참석했다. 인원도 꽤 많았지만 참석자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끊이지 않는 대화와 웃음이 인상적인 모임이었다. 이제 됐다, 이 모임은 자기만의 생명력으로 오래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피터캣에는 ‘노르웨이의 숲 세대’라는 말이 있다. ‘노르웨이의 숲’ 모임에 참석했던 이들이 이후에도 독서 모임의 주축이 되어 꾸준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종일반’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는데, 두 세시간 정도의 모임으로 성이 안차는 사람들이 문 닫을 때까지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며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보내며 재미 삼아 붙인 이름이다. 책 좋아하는 이들의 놀이터가 되겠다는 꿈이 어쩌면 꿈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https://youtu.be/OJ1oTR8pEkI




마포 경의선 책거리 옆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petercat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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