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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n 04. 2022

#2 하루키면 좋겠는데

북카페 피터캣, 8년의 기록

#2 하루키면 좋겠는데


피터캣을 시작하기 전 몇 년, 혹은 직장 생활을 그만두기 전 몇 년 동안은 출퇴근길에 하루키를 자주 읽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일단 장편소설을 다 읽고, 그리고 단편집을 다 읽고, 에세이를 다 읽고, 그리고 장편소설을 다시 다 읽었다. 하루키 책이 총 50권쯤 되는데, 아마 4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여러모로 싱숭생숭 했다는 얘기다.


그런 시기에 하루키는 참 적당했다. 너무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몰입감이 강하지도 않아서 책을 읽는 동안 한편으론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 보기에도 좋은 작가였다.  


그때는 연극도 꽤 좋아했었다. 주중에 칼퇴근하고 극장으로 달려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토요일 오전 10시쯤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대학로나 신촌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오쯤 되는데, 연극은 3시부터라서 그때까지는 카페에 앉아서 책도 읽고,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끄적거리면서 혼자 놀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연극을 좋아했던 이유도 문제의 싱숭생숭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수십년 경력의 노련한 배우던 아니면 이제 연기를 시작한 초보 배우던, 그들이 연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은 힘이 났다. 딱 일주일 버틸 만큼.


다이어리에 적었던 내용은 주로 ‘책으로 먹고 사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헌책방은 힘들어서 못할것 같고, 책방은 이상적이긴 한데 수입을 생각하면 가장으로써 차마 못할 짓인 것 같고, 그래도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로 북카페가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일 것 같았다. 사무실 컴퓨터 개인 폴더에 보관된 엑셀 시트는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로,라고.  


일단 북카페로 모아지자 생각이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멋진 메뉴와 사진 배경이 넘쳐나는 핫플레이스라는 단어는 뜻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작고 밝고 청결한 곳이어야 했고,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처럼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주인은 그것을 책임져야 했다. 무엇보다 이름이 중요했다. 하루키면 좋겠는데.


주말 점심 시간의 대학로 카페는 대체로 한산했다. 그날 내 손에 들린 책은 하루키의 <잡문집>이었다. 제목처럼 온갖 글을 모아 놓은 그 책은 처음에는 산만해서 그저 그랬는데, 막상 읽다 보니 또 나름의 맛이 있어서,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피터캣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키 에세이에서 피터캣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대학로 카페에서 피터캣은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피터캣은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 전 스물 두살에서 스물 아홉 살까지 7년 동안 운영했던 재즈 바 이름이다. 작가는 그 이름을 그가 키웠던 고양이 이름에서 따왔다. 고양이 치곤 꽤 큰 줄무늬 수컷이었는데, 낮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하루키 집에서는 숙식만 해결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하루키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는데, 대학생이었던 부부 모두 돈이 있을  없으니 일단 처가에서 신혼을 시작했지만, 마침 이불가게를 하고 있던 처가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는 없어서 아쉽게 헤어져야 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다음 사연이다. 어쩔  없이 하루키는 고양이를 지방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했는데, 예전처럼 집과  속을 오가던 고양이가 어느  숲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숲으로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얼마 후 부부는 재즈바를 열게 되었는데, 그 재즈바는 아쉽게 헤어져야 했던 고양이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중요한 얘기였지만 더 중요한 얘기를 해보자.


내게 피터캣은 문학과 음악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하루키의 피터캣이 칵테일과 재즈와 담배연기가 함께하는 공간이었다면, 내가 상상하는 피터캣은 문학과 음악과 커피가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왜 재즈바가 아닌 북카페였나 하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다 마셔버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중요한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 안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숨겨 읽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자신이 작가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한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소설가를 꿈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어쨌든 그랬던 하루키의 생각이 7년 동안 피터캣을 운영하면서 달라졌다. 꼭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교 되는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사람마다 얼굴 생김이 다르듯 글도 다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내 목소리로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일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피터캣이라는 장소가 하루키의 생각이 바뀌는 공간으로서 작동했다는 점이었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산>에는 ‘공간도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시간을 훨씬 능가하는 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피터캣에서 하루키가 보낸 7년이, 토마스 만의 소설 속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가 마의 산에서 보낸 7년처럼 그를 바꿔 놓았다는 점이었다.


‘그럼 내 삶도 달라질 수 있을까?’  


내 삶 뿐 아니라 피터캣이라는 공간에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도 얼마쯤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공간을 만들고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악착같이 그 장소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남들처럼 살았으니, 이제는 나처럼 살아도 되지 않을까?


당연히 처음에는 7년이 너무 멀게만 보였다.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8년째 피터캣을 지키고 있다. 달라졌냐고? 원하는 것을 얻었냐고? 물론이다.




경의선 책거리 문학 카페/책방 피터캣의  8년을 기록합니다

업데이트는 비정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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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책거리 문학 카페/책방 피터캣의 브런치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로21 2F 피터캣 (070-4106-3467, 12:00~20:00,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petercat1212 

유튜브 : 채널 피터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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