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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n 18. 2022

#4 오픈, 눈 손님

북카페 피터캣, 8년의 기록

#4 오픈, 눈 손님



북카페 피터캣이 신촌 땡땡거리에 문을 연 날짜는 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이었다. 누군가 겨울에는 그런 일을 벌이는게 아니라고 한 것도 같은데, 흘려 들었다. 그저 그때 마침 준비가 끝났고, 또 장사도 처음이라 뭔가 수습기간 같은 걸 갖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꽤 오래 직장 생활을 해왔으니 새로운 삶에 앞서 그 잔재를 청산하는 기간을 갖고 싶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잔재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물론 직장 생활 전체를 저주하는 건 아니고 다만 마지막에 조금 피곤했을 뿐이다.


반년쯤 커피를 배웠고, 그러면서 실무도 해보고 싶었는데 아저씨를 아르바이트로 써줄 곳은 없는 것 같아 결국 실무도 돈을 내고 경험했다. 한편으론 튀김과 맥주를 팔던 땡땡거리 가게를 계약하고, 답사 겸 전국 여기저기 다니면서 카페 구경을 했다. 인테리어 업체와는 피 말리는 대결 끝에 비싸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고, 구청과 세무서, 그리고 을지로 가구 골목을 누비면서 그렇게 하얀색 카페는 조금씩 형태를 갖춰 갔다.


공사 기간에는 가급적 아침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밖에서 진행상황을 지켜보곤 했다. 첫 가게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요일이나 시간대별로 그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였다. 담벼락을 등지고 서서 종일 좁은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사람들은 나를 받아줄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추운 것도, 다리가 아픈 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한달쯤 지났을 때, 드디어 피터캣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무 명쯤 앉으면 꽉 차는 공간이 될 터였다. 그 정도로는 생존이 불가능할 테니 포장 손님을 확보해야 했는데, 전문점들과의 경쟁 보다는 하루 한 잔 정도 마시는 커피에 생각보다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피의 질도, 개성도, 가게의 분위기도 모두 그들을 향해야 한다. 그렇다고 예술가 흉내를 내서는 안된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그저 한잔의 커피일뿐이니까.


인테리어와 커피 다음 차례는 책과 음악이었다. 대학로 카페에 앉아 구상을 시작할 때부터 피터캣은 문학 카페였다. 지금처럼 구체적인 여러 활동을 생각하진 못했지만, 문학 책으로 서가를 구성하고,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가게에는 천 권 규모의 책장을 마련했는데, 가진 책 중에서 너무 낡은 것 빼고 오백 권 정도를 가져왔고, 이백 권 정도를 새로 주문했다. 질서 있는 책장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가의 책들은 모두 주인이 좋아하는 책들이어야 했다. 주인이 좋아하는 책들로 서가를 구성하면 그 자체로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되고 그리고 그 책들이 손님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서가의 책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손님들을 만나는 순간이 자영업자의 마음이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음악은 가장 고민이 적었던 분야였다. 피아니스트가 조용한 음악을 연주하는 카페에서 커피잔을 앞에 두고 책에 잠기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그만이었다. 카페 한 구석에서 조용히 연주하는 뮤지션이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에릭 클랩튼이나 콜드플레이라고 생각하면, 혹은 글렌 굴드나 쳇 베이커나 빌 에반스면 또 어떤가? 단지 CD 몇 백장과 적당한 오디오면 충분한 일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어울릴 만한 비유지만 ‘아이를 만드는 건 쉽지만 키우는 건 그렇지 않다’는 말이 있다. 부모 마음대로 키울 수도 없고, 또 그냥 방목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오랜 시간의 세심한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게다가 그 누구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 아마 피터캣도 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이야기들이 들려올 것이고, 나는 그저 목소리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교차로에서 멈춰 설 때마다 그 목소리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기억해 기록할 것이다.


당연히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피터캣을 오픈한 첫날, 조용했다. 이어지는 주말도 조용했고 그리고 계속해서 조용한 날들이 이어졌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간혹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용함이 자기가 주인이라도 되는 듯 종일 버티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뭔가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은하수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눈이 내렸다. 12월엔 제법 큰 눈이 내려서 ‘아, 올 겨울은 눈을 자주 보겠구나’, 착각하게 한 다음 1월 말이 될 때까지 오지 않는 평범한 서울의 눈이었다. 그런데 그 날의 눈은 유난히 특별했다. 예쁘게 내리기도 했고, 소박하게 쌓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그 누구도 일 하라 거나, 공부 하라 거나, 추우니까 그만 들어가라 하지 않는, 처음 맞아보는 백 퍼센트의 눈이기 때문이었다.







경의선 책거리 문학 카페/책방 피터캣의  8년을 기록합니다

업데이트는 비정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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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책거리 문학 카페/책방 피터캣의 브런치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로21 2F 피터캣 (070-4106-3467, 12:00~20:00,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petercat1212

유튜브 : 채널 피터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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