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지구, 남한 위에 축소하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by 한창훈

이 글은 제가 Claude와 대화를 지속하면서 완성한 글입니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막막합니다. 대륙이 일곱 개, 바다가 다섯 개. 이름은 낯설고 크기 감각은 안 잡힙니다. 그래서 지구의 육지를 남한(약 10만 km²) 위에 올려놓아 봤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밟고 다니는 남한 땅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 익숙한 거리감 위에 세계를 얹으면 대륙의 크기가 가깝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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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대륙, 남한 위에 배치하기

지구 전체 육지 면적은 약 1억 5천만 km²입니다. 남한 면적의 약 1,500배. 이 거대한 땅을 남한 비율로 축소하면, 대륙마다 차지하는 비중이 선명해집니다. 그럼 면적을 보죠.

아시아가 가장 큽니다. 지구 육지의 30%입니다. 남한으로 치면 서울에서 대전을 지나 전주 근처까지를 통째로 먹는 덩치입니다. 인구도 세계의 60%가 여기 삽니다. 나머지 여섯 대륙이 나눠 가진 것보다 많습니다.

아프리카가 두 번째입니다. 전주에서 광주를 넘어 순천까지라고 보면 됩니다. 중국, 미국, 인도, 유럽을 전부 아프리카 안에 넣어도 자리가 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계지도에서는 실제보다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 때문입니다. 이 지도는 북쪽을 크게, 적도 근처를 작게 그립니다. 유럽이 실제보다 당당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북아메리카는 순천에서 여수 정도의 면적감입니다. 남아메리카도 비슷한 크기인데, 남북으로 길쭉합니다. 여수에서 해안을 따라 아래로 늘어뜨린 모양새입니다.

유럽은 여기서 반전입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대륙 세 개쯤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 면적은 호주와 비슷합니다. 남한으로 치면 충청남도 하나 정도.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아는 충청남도입니다. (저도 집안이 충남 청양입니다. 비유는 비유일 뿐입니다. ㅎㅎ)

남극과 호주(오세아니아)는 남한 끝자락입니다. 남극은 대륙인데 아무도 안 삽니다. 호주는 사람이 살긴 하는데, 해안가에만 몰려 있습니다. 내륙은 거의 사막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시아가 압도적으로 크고, 아프리카가 그다음이고, 유럽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세계사를 읽기 전에 이 크기 감각만 잡아도 절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다섯 바다, 서울 지하철로 읽기

바다도 정리합시다. 태평양이 가장 큽니다. 지구 표면의 3분의 1을 덮습니다. 대륙 전부를 합쳐도 태평양 하나보다 작습니다. 서울 지하철로 치면 2호선 순환선입니다. 모든 것을 감싸고 도는 본류.

대서양은 두 번째입니다. 유럽·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바다. 1호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서 역사의 주요 노선을 연결합니다. 콜럼버스도, 노예무역선도, 타이타닉호도 이 바다를 건넜습니다.

인도양은 3호선쯤 됩니다. 아시아·아프리카·호주 사이를 잇는 환승 구간. 향신료 무역의 고속도로였습니다.

북극해는 경의중앙선 같은 존재입니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희미한데, 최근 빙하가 녹으면서 갑자기 새 노선이 열리고 있습니다. 남극해(남빙양)는 아직 개통 전인 노선 정도로 보면 됩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바다는 장벽이 아니라 도로였습니다. 산맥은 사람을 가르지만, 바다는 사람을 연결합니다. 역사에서 강대국은 거의 예외 없이 바다를 장악한 나라였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미국을 생각해 보세요.)


땅의 모양이 역사의 방향을 정합니다

이 시리즈의 중요한 대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대가 배우를 만든다. 사람이 역사를 만드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가 먼저입니다.

강이 있으면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정착합니다. 정착하면 도시가 됩니다. 도시가 되면 왕이 나옵니다. 문명의 공식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나일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황허강, 인더스강. 4대 문명의 발상지는 전부 큰 강 옆입니다. (물론 기후가 딱 적당한 북위 38도 근처이기도 하구요.)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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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이 있으면 양쪽의 문화가 달라집니다. 히말라야 북쪽과 남쪽은 다른 세계입니다. 피레네 산맥 위(프랑스)와 아래(스페인)도 그렇습니다. 산은 "여기서부터 다른 나라입니다"를 자연이 선언하는 방식입니다.

해협이 좁으면 전쟁이 납니다. 보스포루스 해협(폭 700m)은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물길인데, 이 하나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 천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탐나는 도시였습니다. 한강 다리 하나를 장악하면 서울의 남북이 갈리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다만 스케일이 제국급입니다.

사막이 넓으면 문명이 고립됩니다. 사하라 사막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수천 년 동안 갈라놓았습니다.


그런데, 세계지도는 어느 방향이 위일까요?

여기서부터는 좀 더 궁금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는 북쪽이 위에 있습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습니다. 중세 아랍 지도는 남쪽이 위였습니다. 중세 유럽의 지도는 동쪽이 위였습니다. (영어 'orient(동쪽)'가 'orientation(방향 잡기)'의 어원인 이유입니다.) 북쪽을 위에 놓은 건 16세기 메르카토르가 항해용 지도를 만들면서 굳어진 관습입니다. 물리적 이유는 없습니다. 습관입니다.


그림3.png 왼쪽 중세 지도, 오른쪽 호주식 세계지도.

호주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본 적 있으시다면 알겁니다. 남쪽이 위입니다. 호주가 세계 꼭대기에 있고, 유럽은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똑같은 세계인데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지도의 방향 하나가 세계관을 바꿉니다.

위도가 운명을 가른 이야기

같은 위도에 있는 지역은 기후가 비슷합니다. 기후가 비슷하면 농작물이 비슷합니다. 농작물이 비슷하면 기술이 전파되기 쉽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지적한 핵심이죠.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같은 위도대가 스페인에서 중국까지 이어집니다. 밀을 키울 수 있는 기후가 수천 km에 걸쳐 연속됩니다. 기술과 작물이 동서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위도가 바뀌면 기후가 바뀝니다. 열대에서 온대로, 온대에서 냉대로. 작물이 이동하려면 기후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술 전파가 느렸습니다.

대륙이 가로로 누워 있느냐, 세로로 서 있느냐. 이 단순한 모양 차이가 문명의 속도를 갈랐습니다. 땅이 먼저이고, 역사는 그다음입니다.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지구본을 한 번도 안 만져봐도 괜찮습니다.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산맥은 가르고, 강은 모으고, 바다는 잇고, 사막은 막습니다. 이 네 가지 동사가 세계사의 기본 문법입니다. 다음 편부터 이 문법의 단어들 — 해협, 반도, 삼각주, 고원, 스텝 — 을 하나씩 배웁니다. 단어를 알면 문장이 읽힙니다. 문장이 읽히면 역사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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