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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의 유희 Feb 09. 2024

사각 사각 서걱 서걱
소리일까? 느낌일까?

아버지, 면도, 기억, 추억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에는 무엇인가 잔잔한 따듯함이 짖게 담겨있다. 그의 작품 <아버지>의 시작 부분에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이발소에서의 장면을 기억한다. 햇살이 맑게 들어오는 이발소 바닥에서 놀고있는 아이와 사각 사각 손님의 머리를 깍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돌아보면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항상 미소 짓고 있었다.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 중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한때였으리라.

다니구치 지로 - 아버지

어릴 적에 나의 아버지는 그 당시 어른들이 그랬듯 늘 바쁘셨다. 내가 아침에 눈 뜨기 전에 출근하셨고, 내가 잠든 밤중에 퇴근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달에 한번 쯤 주말 아침이면 아버지를 따라 동네 이발소를 향했다. 주말 아침 이발소는 동네 아저씨들로 가득했다. 머리를 깍는 사람들, 신문을 보면 기다리는 사람들, 서걱 서걱 머리자르는 가위소리, 짝짝 등을 치는 안마 소리, 의자에서 잠든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 이발소는 눈과 귀가 늘 가득차는 곳이었다. 


그 시절 이발소에서 가장 신기하고 재미있는 풍경은 면도였다. 제껴진 의자에 비스듬 누운 아버지 얼굴 위로 뜨거운 김이 솓는 뜨거운 수건이 올려진다. 보기만 해도 뜨겁다. 이발사 아저씨는 면도칼을 경쾌한 동작으로 가죽에 슥슥 몇번 갈아준다. 그리고는 아버지 얼굴의 수건을 치운다. 얼굴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 모락 솓아 오른다. 그리고 하얀 거품 가득한 컵에, 소꼬리 털을 잘라 만든 것 같은 뭉둑한 솔을 담그어 거품을 잔뜩 찍어올린다. 거품 가득한 솔이 아버지 얼굴에 오르고 이발사의 손은 쓱쓱 아버지 얼굴에 거품을 칠한다. 드디어 날카로운 칼날이 얼굴에 닿고 스윽~ 하얀 거품 사이로 길이 생기고 뽀얀 살이 드러난다. 슥슥슥 몇번 칼날이 오가면 얼굴에 가득했던 하얀 거품이 사라지고, 드문 드문 흔적만 남는다. 마무리로 뜨거운 수건이 남은 거품을 닦아내면 면도가 끝난다.


수염이 살짝 자라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더라도 손으로 얼굴을 쓸면 까슬까슬함이 느껴지는 길이가 있다. 까칠한 수염에 손이 닿으면 왠지 피곤이 밀려온다. 얼굴을 만지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겠지만, 왠지 면도를 안하고 자란 수염을 두면 기분이 피곤하다. 면도가 필요하다.

전기 면도기를 쓰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전기 면도기는 편리하다 스위치만 켜면 되고, 급할때 휙 면도 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면도날을 교체하는 안전면도기가 좋다. 전기면도기가 커피믹스 같다면 - 아, 좀 고급은 캡슐커피 쯤 되겠다 - 안전 면도기는 핸드드립 커피 같다고 해야 할까. 뭔가 생각해 보면 하나 하나 사소한 순서와 해야하는 귀찮을 것 행동들이 쌓이 그런 리추얼이 있다.


먼저, 뜨거운 물로 얼굴을 좀 적셔준다. 세수와 다를 것이 없는데, 왠지 면도를 위한 세면은 잠시 긴 숨을 쉬어가는 느낌이 좋다. 젤 통을 눌러 손 바닥에 면도젤을 조금 올리고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 거품을 일으킨다. 거품을 턱 아래부터 구렛나루와 얼굴에 바른다. 코아래까지 거품을 바르고 나면 이제 면도 준비가 되었다. 뜨거운 물을 틀어 면도기 날을 뜨거운 물로 좀 적신후.귀 옆부터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거품사이로 길을 내며 면도를 시작한다. 아래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밖에서 안으로 사각사각 소리가 들린다.


사각 사각. 서걱 서걱. 수염이 칼날에 잘리는 소리일까? 아니면 손으로 전해오는 수염이 칼날에 서걱서걱 잘리는 느낌이 그렇게 소리로 느껴지는 것일까? 의성어와 의태어 사이의 느낌이다. 사각사각이 좋으니, 소리라고 하자. 나에게만 들리는 그 소리가 참 좋다. 커피를 내릴 때 풍겨오르는 커피향 처럼, 나의 수고를, 나의 피로를 털어내고 하아~ 하고 숨 쉬게 해주는 그 찰라.

소소한 순간의 리추얼 속에서 지나치던 나의 사소한 순간들이 그렇게 또렿해 진다.

면도를 마친 이제는 어른이 된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소소한 도구

- 와이즐리 5중날 면도기

- 5중 면도날 리필 4P

- 와이즐리 쉐이빙젤 200mL

상태: 구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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