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도시"와 "벽" 이라는 두 단어는 나의 마음을 끌어 들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왜 아직도 못 읽었을까? "도시" 라는 단어 하나로는 부족했을까? "벽"이 필요했던 것일까?)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어쩌면 맥락도 없이 소녀가 묘사하는 도시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소년이 있고,
그런 소년의 모습을 묘사하는 소년의 목소리로 소설이 채워진다.
도시는 높은 벽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 있어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야. 하지만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작지도 않아.
높은 벽으로 둘러 쌓인 크지 않지만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구체적이며 추상적인 크기의 그 알 수 없는 도시는 소녀가 이야기 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만큼 잡히면서도 잡히지 않은 양자적인 상태의 도시 같았다.
불확실한 벽이란 그런것 아닐까? 있으면서 없는 그런 벽.
너의 이야기를 따라 도시에는 아름다운 한줄기 강과 세 개의 돌다리(동쪽 다리, 옛 다리, 서쪽 다리)가 놓이고, 도서관과 망루가 세워지고, 버려진 주물공장과 소박한 공동주택이 생긴다.
소년과 함께 너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생각 속에도 불확실한 벽의 도시가 한 조각씩 구체적으로 생긴다.
그곳에선 모든 시간이 대략적이야. 중앙 광장에 높은 시계탑이 있지만 시곗바늘은 달려 있지 않아.
시곗바늘이 없는 높은 시계탑이 있는 그 도시의 시간은 대략적이다.
대략적인 시간은 시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략 있는 시간은 있는 존재하는 시간일까?
아무나 자유롭게 들어가진 못해. 그곳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해.
하지만 너는 들어갈 수 있어. 네게는 그 자격이 있으니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도시. 하지만, 나에게는 자격이 있다. 소년은 나이고 나는 소년이니까.
알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는 불확실한 벽이 있는 불확실한 도시의 이야기.
그 이야기에 그렇게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1부의 챕터 2 부터 이어지는 챕터들은 소년이 있는 현실과 그 도시의 두개의 이어져 있기도 하고 별개이기도 한 이야기가가 순서를 바꾸어 가면 이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처음 읽는 나에게는) 독특하고 무척이나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였다. 이어진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미스테리가 풀려가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더 모르겠는 것 같은 묘한 감정과 알수 없는 가슴 저편의 두근 거림의 교차였다.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이러한 글의 구성은 마치 한권의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 가는 어떤 세계관속의 여러 책을 읽으면서 퍼즐을 맞춰 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2부에서는 현실의 '중년'인 나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어느 시골의 도서관장이 되는 나의 이야기는 큰 사건 없이 - 아, 큰 사건일 수 있지만, 주인공인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런 사건으로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연속으로 느껴진다. 이제 그 도시는 막연한 기억 처럼, 꺼진 향초의 흩어지는 향처럼 나의 주변을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채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그 도시의 판타지가 나의 현실에 겹쳐지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한데 뒤섞여 있어.” 그녀는 말했다.
“마치 평범한 일상 속의 일들인 것처럼.” “그런 걸 매직 리얼리즘이라고들 하더군"
1부에서 그 도시와 현실의 공간이 평행선상의 이야기 였다면, 2부에서는 현실이 그 도시의 무엇인가에 물들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각자의 판단이겠다. 100% 판타지 세계 보다는 현실속에서 마술 같은 상황이 더 흥미로운 그런것 있지 않나.
물론, 히가시노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나 '녹나무의 파수꾼' 같은 일상의 판타지...라 하기에는 100% 판타지이지만, 현실을 배경으로하는 이런 스토리들의 느낌들이 참 좋다.
소설을 읽다보면 영상이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글은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묘사하지 않은 부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그 순간에서 묘사되지 않은 부분이 또렿하게 머리속에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간의 여백, 트랜지션은 글로 만들어진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상이다.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지금 왜 여기 있을까?
나는 그 점이 - 지금 이렇게 나를 포함하고 있는 '현실'의 양상이 -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었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그림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에 홀로 남았을 터였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세계에 돌아와 있을까?
계속 여기 있었고,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그저 기나긴 꿈을 꾸었을 뿐일까?
2부가 시작되면 주인공인 나 만큼 독자인 나도 혼돈에 빠지게 된다. 내가 왜 현실에 있을까? 도시는 무엇이었지? 나는 실체인가 아니면 그림자 인가? 아니면 정말 기나긴 꿈을 꾸었을 뿐인가? 그 도시가 꿈이었다는 듯이 2부는 현실의 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2부의 나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은 3부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저녁 무렵, 여느 때처럼 도서관으로 걸어가던 길에 희한한 소년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다리 맞은편에 혼자 오도카니 서 있었다. 수면에 흐릿하게 저녁 안개가 깔려 있었다.
봄이 시작될 무렵에는 자주 그렇게 안개가 낀다. 수온과 기온의 차이 탓이다.
안개 때문에 소년의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입은 옷이 몹시 특징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소년은 초록색 요트파카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노란색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다.
그때 바람이 불어 한순간 안개가 부분적으로 걷히고 그림이 명료히 드러난다.
둥그스럼하게 생긴 잠수함 그림이다.
<옐로 서브마린>, 비틀스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왔던 노란 잠수함.
3부의 시작에서 나는 다리 건너편의 <옐로 서브마린> 소년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그 도시에 있는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몇 페이지가 지난 후에서 였다. 아... 나는 지금 그 도시에 있구나. 나는 그 도시에 있던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 영상이 아닌 글로 쓰인 책이 만드는 시차. 상황을 따라가지만,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기 까지의 시차는 미묘한 발견의 기쁨을 느끼게 했다. 시각화 되지 않은 모든 것을 담지 않은 문자가 제공하는 시차는 문자에 구조적으로 담기지 않은 다른 감상과 공간이 담겨 있었다. (왠지 나는 이 시차를 느끼는 순간이 강렬하고 짜릿하게 좋았다.)
책은 미묘한 것들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 하나는 도시에 대한 공간적 묘사였다.
그 묘사들을 직접 지도로 그려보고 싶어진 것은 이 글을 읽으면서 였다.
그 지도를 앞에 두고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이, 높은 벽돌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의 지도였다.
... 그 소년은, 아직 본 적도 없는(없을) 도시의 지도를 이처럼 거의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나도 나름대로 도시의 지도를 그려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는데.
<옐로 서브머린> 소년이 그렸다는 그 도시의 지도가 보고 싶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지도> 를 검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뒤적이며 도시가 묘사된 문장들을 모두 찾아서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줄지은 짐승들이 구불구불하게 뻗은 돌길을 나아간다.
짐승들은 눈을 내리깔고 양옆으로 어깨를 작게 흔들면서 침묵의 강을 내려갈 따름
완만한 아치를 그리는 옛 다리를 건너 날카로운 첨탑이 서 있는 광장까지 걷는다.
그리고 강의 모래톱(냇버들이 늘어진 아름다운 모래톱)으로 내려가
초록 풀을 뜯던 소수의 집단을 합류시킨다.
강가를 따라 상류로 나아가, 북쪽으로 뻗은 메마른 운하변의 공장가를 통과하고,
숲에서 나무열매를 찾아다니던 무리를 거둬들인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주물공장의 지붕 달린 복도를 빠져나가고,
북쪽 언덕을 따라 긴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 관련된 검색을 하던 중에 그 도시가 무라카미의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지도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내가 그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도시의 지도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궁금해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구매했다. 지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두 책의 작가의 서문의 처음 반은 다른 번역가의 번역톤을 제하면 완전히 동일한 내용이었다.
결국 1980년 문예지에 발표한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서문에는 '거리와'라고 쓰여있고,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작가후기에는 '도시와,'로 쓰여있다)이라는 중편소설을 하루키 본인이 납득하지 못해 책에 싣지 않았고, 다시 고쳐 두 가지 스토리를 병행해 교대로 진행시키며 쓴 것이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2020년에 또 다른 작가 스스로의 채움을 위해서 다시 또 두가지 스토리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 바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라는 것이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한 작가가 자신의 어떤 스토리를 40여년의 시간을 넘어 계속 작업 한다는 것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로 하루키 책을 처음 접해서 너무나 빠져들었던 나에게, 이것이 과거의 하루키 작품 스타일 이라는 것은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 지도까지 그렸는데 말이다 - 뭔가 더 덕질 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는 것에 곧 실망은 흥미로 바뀌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지도는 비슷하지만, 무엇인가 북서 방향의 무엇인가 차이가 있었다. 내가 틀린 것일까 생각해서 다시 책을 찾았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었다. 두 도시는 미묘하게 달랐다. 그럼 비슷한 두 도시는 과연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 책의 두 도시 혹은 다른 시간 같은 도시일지도 모르는 그 도시(들) 의 세계관이 궁금해 졌다. 이렇게 다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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