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상자에 쌓인 기억의 세금

그날의 감정을 다시 지불하는 일

by 류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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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한 구석에 상자가 하나 있다. 크기는 택배 상자 정도다. 처음에는 빈 상자였다. 지금은 빈 적이 없다.


우산 세 개. 머플러 두 개. 카드지갑 하나. 열쇠고리 하나. 립스틱 하나. 이어폰 케이스 두 개.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수건 하나.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다.


처음에는 연락을 시도했다. 카드지갑 안에 명함이 있으면 전화를 걸었다. 이어폰 케이스에 이니셜이 적혀 있으면 최근 예약자 목록을 뒤졌다.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락이 닿아도 가지러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바쁜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연락에도 오지 않으면 잊은 거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없었다. 세 번 연락하면 집요해진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들 중 일부는 잊은 게 아니었다.


버린 것이었다.


정확히는 버렸다는 표현도 맞지 않다. 두고 온 것이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혹은 의식하면서도 모른 척한 채로.


사람은 감정이 격해진 밤에 물건을 흘린다. 기쁨이 넘치는 순간에도 흘리고 슬픔이 무거운 순간에도 흘린다. 공통점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빠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주머니 속 물건보다 가슴 안의 감정이 더 크면 손이 느슨해진다. 쥐고 있던 것을 놓는다. 물리적으로.


바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대개 가장 취약했던 순간의 증거물이다. 혹은 가장 고양되었던 순간의 잔해다. 어느 쪽이든 평소의 자기가 아니었던 시간에 흘린 것들이다. 그 물건을 다시 손에 쥐는 순간 그날 밤의 자기와 강제로 재회하게 된다. 서툰 말들. 쏟아냈던 눈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외로움. 그것들이 물건과 함께 돌아온다.


상자 안의 우산 하나를 꺼내본 적이 있다. 접이식이었다. 손잡이에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부러진 걸 붙여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새 우산을 사면 될 일인데 이 사람은 고쳐서 썼다. 물건에 정이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 우산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


생각해 봤다. 우산을 고쳐 쓸 정도로 물건을 아끼는 사람이 왜 이걸 포기했을까.


그 밤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물건을 되찾는 일은 단순한 수거가 아니다. 그 물건이 놓여 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우산을 찾으러 오면 그날 밤 비를 맞으며 걸었던 귀갓길을 다시 걷게 된다. 머플러를 찾으러 오면 목을 감싸던 온기와 함께 그날 나눴던 대화가 되살아난다. 물건에는 날짜가 붙어 있다. 보이지 않는 날짜가.


그래서 찾으러 오지 않는 것이다. 물건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물건에 엉겨 붙은 그날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문제다. 단돈 몇만 원의 우산이나 장갑을 포기함으로써 어제의 무거웠던 나로부터 도망칠 권리를 사는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자가 목요일 밤에 왔다. 혼자였다. 조용히 마시다 갔다. 다음 날 아침 정리를 하다 보니 그 자리에 머플러가 남아 있었다. 베이지색이었다. 올이 조금 풀려 있었지만 빨지 않아도 될 만큼 깨끗했다. 소중하게 다뤘던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주일 뒤 그 여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머플러가 거기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했다. 그러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가지러 갈게요.


그 말을 하고 끊었다. 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쯤 뒤에 그 여자가 다시 바에 왔다. 머플러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나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잔을 따랐다. 두 잔을 마시고 나가면서 문 앞에서 멈췄다. 돌아보더니 말했다.


그 머플러 버려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 머플러가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라는 걸 짐작했다. 받은 사람이 그 물건을 두고 간 것은 그 관계를 두고 온 것과 같은 행위였을 것이다. 되찾으러 오는 순간 그 관계가 다시 손에 잡힌다. 놓아줬던 것이 다시 감긴다. 그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버려주세요'라는 말은 잘 가라는 말이었다. 머플러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머플러를 준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다. 물건을 찾지 않는 행위는 일종의 기억의 손절이다.


물건을 되찾는 것은 그날의 감정을 다시 지불하는 일이다. 기억에는 이자가 붙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금보다 이자가 커진다. 한 달 전의 슬픔을 오늘 다시 꺼내면 한 달치의 이자가 붙어서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몇만 원짜리 물건을 포기한다. 물건값보다 감정의 이자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기억의 세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밤을 통과한다. 그 밤마다 감정이라는 세금이 부과된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납부한다. 울거나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침묵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일부는 미납된다. 감당하지 못한 감정은 물건 안에 숨는다. 우산 안에. 머플러 안에. 주머니 속 열쇠고리 안에.


분실물 상자는 미납된 감정의 보관함이다.


가끔 청소하다가 상자 속 물건을 하나씩 꺼내본다. 물건마다 무게가 다르다. 그램으로 재면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손에 올려놓으면 어떤 것은 유난히 무겁다. 손잡이가 닳은 우산이 그렇다. 안감에 향수 냄새가 밴 머플러가 그렇다. 누군가의 시간이 스며든 물건은 물리적 무게와 다른 무게를 가진다.


또 한 가지를 알게 됐다.


분실물이 가장 많이 쌓이는 날은 금요일 밤이다. 한 주가 끝나는 밤. 일주일 동안 쌓인 것들이 술잔과 함께 쏟아지는 밤이다. 사람들은 금요일에 가장 솔직해지고 가장 취약해진다. 취약한 순간에 사람은 물건을 놓친다. 물건만 놓치는 게 아니다. 체면도 놓치고 경계도 놓치고 평소에 꽉 쥐고 있던 감정의 끈도 놓친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밤에 주머니 속 작은 물건 하나쯤은 바닥으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토요일 아침에 바닥을 쓸면 금요일 밤의 잔해가 보인다. 빈 잔들 사이로 누군가의 물건이 놓여 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처럼 그 밤의 감정이 물건 위에 얇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주워서 상자에 넣는다. 조심스럽게. 누군가의 어젯밤을 다루는 일이니까.


나는 이제 분실물에서 연락처를 찾기 위해 뒤적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물건을 되찾지 않는 행위가 어제의 슬픔과 성공적으로 결별했다는 조용한 선언임을 알기 때문이다. 찾으러 오지 않는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도망친 것이 아니다. 졸업한 것이다.


가끔 상자를 들여다본다. 우산과 머플러와 열쇠고리가 쌓여 있다. 그것들은 조용하다. 주인을 부르지 않는다. 주인도 그것들을 부르지 않는다.


서로를 잊은 것이 아니다. 서로를 놓아준 것이다.


이 바에서 내가 배운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진실이 하나 있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영영 잃어버림으로써만 비로소 어딘가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상자는 오늘도 카운터 뒤에 있다.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다. 나는 그 무게를 함부로 덜지 않기로 했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어젯밤이 잠들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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