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빌딩 숲 사이, 산소통 하나를 놓기로 했다

by 류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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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산소가 부족하다. 공기는 있다. 바람도 분다. 그런데 숨이 안 쉬어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은 숨을 참는다. 회의실에서도 참는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참는다. 하루 종일 호흡을 하는데 한 번도 숨을 쉬지 못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 사실을 내 몸으로 먼저 알았다.


어느 저녁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걸었다. 빌딩 사이를 걸었다. 유리벽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수백 개의 창문 안에 수백 명이 앉아 있었다. 모두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서 있었다. 숨만 내쉬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았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모두가 노트북을 열고 있거나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몸은 있는데 눈이 없었다. 아무도 아무도를 보지 않았다.


그날 밤 술집에 갔다. 시끄러웠다.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웃음 안에 내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미 만들어진 무리 안에서 웃음은 닫혀 있었다. 혼자 온 사람은 혼자인 채로 앉아 있었다. 술이 취해도 외로움은 깨어 있었다.


고독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 사람 사이에 있는데 외로운 것. 도시는 후자를 대량생산한다. 매일. 쉬지 않고.


나는 장사를 하려던 게 아니다.


숨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직함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곳. 처음 본 사람에게 "요즘 좀 힘들어요"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 찾았다. 없었다. 카페는 너무 조용했고 술집은 너무 시끄러웠고 집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없으면 만들어야 했다.


왜 굳이 '바'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카페도 되고 독서실도 되고 공유 오피스도 되지 않느냐고. 안 된다. 술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카운터가 필요했다.


바의 카운터라는 구조물은 사람을 나란히 앉힌다. 옆으로 앉는다. 같은 말이라도 방향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카운터는 말을 가볍게 만든다. 가벼워진 말은 멀리 간다.


그리고 술이라는 매개가 있다. 술은 문을 연다. 안쪽의 문을. 첫 모금에 어깨가 내려가고 두 번째 모금에 목소리가 낮아진다. 세 번째쯤이면 눈이 부드러워진다. 그때 옆 사람이 보인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사람이. 술이 만드는 것은 취기가 아니라 시야다.


나는 빌딩 숲 한가운데에 산소통 하나를 놓기로 했다. 크지 않아도 됐다. 화려하지 않아도 됐다. 다만 문을 열면 숨이 쉬어지는 곳이어야 했다. 들어오는 사람이 페르소나를 벗을 수 있는 곳. 직함도 연봉도 성과도 묻지 않는 곳. 그냥 앉아서 한 잔 마시고 옆 사람과 눈 한번 마주치고 웃을 수 있는 곳.


그게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계획서에 '고독 해소'라는 항목은 없다. 투자 피칭에서 '외로운 사람들의 산소통'이라고 말하면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없다. 매출 예측 시트에 '웃음소리'를 넣을 칸은 없다.


그래도 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필요했으니까. 내가 앉고 싶은 카운터가 이 도시에 없었으니까. 없는 걸 찾아 헤매는 대신 만드는 쪽을 택했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바를 열고 운영하면서 카운터 안쪽에서 본 것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페르소나를 벗고 잠시 숨을 쉬고 다시 나가는 과정. 그 안에서 내가 배운 것들. 장부에 적히지 않는 숫자들. 매뉴얼에 없는 순간들.


빌딩 숲은 여전히 빽빽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숨을 참고 산다. 나는 그 숲 사이에 작은 틈 하나를 만들었다. 산소통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하다. 그냥 문 하나다. 열면 숨이 쉬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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