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바를 거쳐 간 수많은 인생에게 보내는 추신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손님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만 알고 있었다. 평소처럼 잔을 닦고 얼음을 채우고 조명을 맞추었다.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는 속도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카운터 안쪽에서 바깥을 보는 풍경이 그날따라 선명했다. 사람들의 입 모양이 보였다. 웃음소리의 결이 느껴졌다.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유독 오래 울렸다. 모든 감각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채고 있었다.
바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일도 문은 열릴 것이다. 조명도 켜질 것이고 얼음도 채워질 것이고 누군가 카운터 안쪽에 설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이 내가 아닐 뿐이다.
내가 떠난 이유는 쓰지 않겠다. 어떤 관계든 안에서 겪은 사람만이 아는 무게가 있고 그 무게를 글로 옮기면 반드시 한쪽이 가벼워진다. 나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떠났다는 것. 그것만 사실로 남긴다.
마지막 손님이 나간 뒤 혼자 카운터에 섰다. 불을 끄지 않았다. 조금만 더 서 있고 싶었다. 이 조명 아래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해두고 싶었다. 바깥의 나와 이 안의 나는 달랐다. 여기서의 내가 더 좋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작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바를 열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물었다. 왜 하필 바냐고. 나는 그때 대답을 만들어냈다.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도시에 숨 쉴 곳이 없다고. 그럴듯한 말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솔직하지는 않았다.
진짜 이유는 더 단순했다.
나는 외로웠다.
사람들 속에 있고 싶었다. 사람들이 웃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하루가 풀리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다. 그걸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가 바였다. 나는 나의 외로움에 이름을 붙이고 그렇게 시작했다.
그래서 바는 나의 처방전이었다.
남들에게는 쉼터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치료실이었다. 카운터 안쪽에 서서 잔을 건네는 동안 나는 괜찮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시간 동안 나의 외로움은 잠잠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손님들에게 공간을 내어준 것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바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늘 주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공기를 만들고 분위기를 지키고 대화를 설계하고 사람을 이어주는 사람. 그게 나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받고 있었다는 것을. 매일 밤 카운터 너머로 건너오던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것이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의 무게를 알았다.
없어진 다음에야 존재를 깨닫는 것. 인간은 왜 늘 그 순서로만 배우는 걸까.
어떤 밤에는 꿈을 꾼다. 카운터 안에 서 있다. 조명은 켜져 있고 잔은 줄지어 놓여 있고 얼음이 녹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손님이 없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문은 열려 있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그 꿈에서 깨어나면 한참을 천장을 본다.
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시간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바를 열기 전의 나와 떠난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수백 명의 밤이 나를 통과했다. 나도 그 밤들을 통과했다. 통과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 어딘가에 쌓인다. 지층처럼.
나는 지금도 사람들이 궁금하다.
그해 여름 처음 혼자 문을 열고 들어오던 사람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카운터 끝자리에 앉던 그 사람은. 나가면서 고맙다고 작게 말하던 그 사람은. 나는 모든 손님들의 이름을 모른다. 그런데 얼굴은 기억한다. 표정은 더 정확히 기억한다. 들어올 때의 얼굴과 나갈 때의 얼굴이 달랐다. 그 차이가 나의 보수였다.
이제 보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쓰는 동안만이라도 카운터 안쪽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글이 끝나면 다시 바깥이다. 바깥은 조용하다. 조용한 것이 싫지는 않다. 다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바를 거쳐간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잘 지내라. 그것뿐이다. 대단한 행복이 아니어도 좋다. 퇴근길에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정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눈을 감는 정도. 그 정도의 숨이 매일 있기를. 나는 멀리서 그것을 바란다.
나는 떠났다.
그러나 내가 서 있던 자리의 온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고 믿는다. 믿는다기보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내가 거기 서 있었던 시간이 의미를 갖는다.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