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목요일마다 왔다.
항상 같은 자리였다. 카운터 왼쪽에서 세 번째. 앉으면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첫 잔을 시키기까지 대략 4분. 메뉴를 보는 게 아니라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4분을 재촉한 적이 없다. 물 한 잔만 놓아두었다. 그것이 인사였다.
처음 왔을 때 그 사람은 눈이 부어 있었다. 울고 온 것인지 잠을 못 잔 것인지는 몰랐다. 묻지 않았다. 바에서 눈이 부은 사람에게 이유를 묻는 건 상처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일이다. 대신 잔을 내밀었다. 괜찮으시냐는 말 대신 얼음을 하나 더 넣었다.
두 번째 왔을 때는 옆 사람과 한마디를 나눴다.
세 번째 왔을 때는 웃었다.
네 번째부터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아 그 사람이구나. 발걸음에는 무게가 있다. 무거운 날은 느리고 가벼운 날은 빠르다. 신발 소리가 곧 그날의 기분이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말을 꺼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기억할 필요도 없다. 나는 상담사가 아니니까. 다만 그 사람이 말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였고 잔이 비면 새로 채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한 밤이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매주 목요일이 되면 나는 그 자리를 비워두었다. 예약을 받은 적은 없다. 그냥 비워두었다. 혹시 오면 앉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와도 좋고 안 와도 좋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이 관계에서 내가 지켜야 할 선이었다.
단골이라는 말은 이상한 단어다. 골이 단단하다는 뜻인지 연결이 단단하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다만 어떤 사람이 같은 장소에 반복해서 앉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돌아갈 곳이 생겼다는 뜻이다. 집 말고. 회사 말고. 세 번째 집. 그런데 세 번째 집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석 달쯤 지났을까. 그 사람의 발소리가 사라졌다.
첫 번째 목요일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바쁜 날이 있는 거겠지. 두 번째 목요일에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릴 때마다. 세 번째 목요일에는 인정해야 했다. 안 오는 거구나.
빈자리가 무거웠다. 누군가 앉아 있을 때는 몰랐던 무게가 비어 있을 때 느껴졌다.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온기가 남는다고들 한다. 물리학적으로는 몇 분이면 사라지는 열이다. 그런데 기억 속의 온기는 체온보다 오래간다. 나는 카운터를 닦으면서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잠깐씩 멈추었다. 손이 거기서 멈추는 것이지 내가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머리보다 정직하다.
서운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서운했다. 한마디 없이 사라진 것이 서운한 게 아니라 인사를 기대한 내 마음이 서운했다. 바를 운영하는 사람이 손님에게 작별을 바라는 건 월세를 감정으로 계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한 달이 더 지나고 연락이 왔다.
인스타그램 DM 한 줄이었다. 사장님 요즘 잘 지내시죠? 저 요즘 좀 바빠져서요. 좋은 사람 만났어요. 고마웠습니다.
마침표가 찍힌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웃었다. 그리고 조금 슬펐다. 아주 조금.
그 사람은 이 바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맞는 순서다. 사람은 상처가 있을 때 이곳에 온다. 상처가 아물면 떠난다. 병원과 같다. 아무도 병원에 영원히 입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퇴원이 목적이다. 바도 그래야 한다.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의 진짜 역할이 아닌가.
그런데 병원은 퇴원을 축하한다. 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메시지에 짧게 답했다. 잘됐다고. 진심이었다. 축하한다고. 그것도 진심이었다.
가끔 생각나면 오라고. 그건 반쯤 진심이고 반쯤 거짓이었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예쁘게 포장한 것이니까.
좋은 바는 사람을 붙드는 곳이 아니다.
오게 만드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재방문율이 높을수록 좋은 가게라고 배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계속 오는 사람이 계속 아픈 사람이라면 그 재방문은 성공인가.
나는 사람이 나아지기를 바란다. 여기서 웃고 떠들고 낯선 사람과 잔을 부딪치는 동안 조금씩 괜찮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이곳이 아니어도 혼자 괜찮은 밤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내 매출을 스스로 갉아먹는 소원이다. 그래도 그렇게 바란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바는 부두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잠시 정박했다가 다시 바다로 나가는 곳. 부두는 배를 영원히 묶어두지 않는다. 밧줄을 풀어주는 것이 부두의 일이다.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장사를 하면서 이별 연습을 할 줄은 몰랐다. 연인과의 이별에는 공식이 있다. 슬퍼하고 분노하고 수용하는 단계가 있다고 한다. 손님과의 이별에는 공식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이유를 모를 때가 더 많다.
이사를 갔는지 취향이 바뀌었는지 내가 뭔가 잘못한 건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채로 다음 손님에게 잔을 건넨다.
가끔 그 사람의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앉는다.
처음 온 사람이다. 눈이 부어 있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나는 물 한 잔을 놓는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다만 나는 안다. 이 사람도 언젠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날이 올 때 내가 느낄 감정이 서운함이 아니라 안도가 되기를 바란다는 걸.
기쁜 마음으로 잊히는 법을 아직 완전히 배우지는 못했다.
다만 연습 중이다. 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