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다. 나는 보통 주말에 집에서 뒹굴거린다. 하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하철을 탔다. 6호선 월곡역. 독립서점 갑을문고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끔씩 그곳에 간다.
월곡역에서 내렸다. 오래된 상가 지하 1층에 서점이 있다. 여기에 서점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풍경이다. 작동을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갔다. 갑을문구라는 문구점이 보였다. 그 너머로 우드톤 책장이 보였다. 따뜻한 노란 조명. 갑을문고다. 제대로 찾아왔다.
입구에 지도가 있다. 갑을문고 사용 설명서도 놓여 있다. 사실 나는 그런 것을 잘 보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이 서점의 진짜 지도는 따로 있다. 책마다 붙어있는 갈색 메모지. 그게 이 서점의 시그니처다. 직원들의 손글씨가 담겨 있다. 나는 그들의 글씨체를 구경한다.
메모는 단순한 요약이 아니다. 책 앞에서 느낀 감정들이 적혀 있다. 희로애락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들.
나는 그 메모에 발이 묶인다. 평소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 인문이나 과학 분야의 책들이다. 메모가 나와 낯선 책을 이어준다. 이런 경험은 다른 서점에선 할 수 없다. 베스트셀러 목록조차 인터넷 서점과 다르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이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물론 책을 판다. 하지만 그게 본질이 아닌 것 같다. 서점 디렉터는 '시각화된 서사'를 말한다.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른다. 그냥 이 책을 읽고 나면 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서가는 '확장하는 독서'를 제안한다. 책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설명서는 이것을 '별자리'라고 표현했다. 나는 나만의 별자리를 그리고 있다. 꽤 근사한 말이다.
설명서에 이런 말이 있다. 이곳을 하루 만에 공략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확한 말이다. 메모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시간이 사라진다. 나는 '사랑은 이별한 것들의 목록. 마음을 주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아낌없이 마음을 주고 있는 건, 이별이 먼저 일어난 내게 사랑은 언제나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라는 메모가 쓰인 책을 한 권 골랐다. 책에 붙은 메모도 조심스럽게 부탁드려 함께 받았다. 이걸 책갈피로 써야겠다. 집에 가서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홍차를 마시며 바로 읽을 생각이다.
세상의 말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질 때. 이 서점, 갑을문고에 오면 좋다. 누군가 써 놓은 메모에 공감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멋진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