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문고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마주친 문장들

지나간 연애에 대한 단상

by 류이음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손가락을 멈췄다. 자주 구경하는 '갑을문고'의 피드였다. 책의 표지, 그리고 그 위에 놓인 큐레이터의 손글씨 메모. 무심코 읽어 내려간 그 문장들이 내 마음을 쿵 하고 울렸다.


스크린샷 2025-11-12 오후 12.37.53.png 출처: 갑을문고 인스타그램 https://vo.la/NpFWKKz


"당신과의 재회와 그에 앞서 마주한 헤어짐이 무엇을 합의하는지 곱씹을 계기가 되어줄 이 소설은, 몰이해에 기반한 당신의 관계는 억지 부린다고 지킬 수 있는 게 아니었음을, 또한 우리가 잠시 시선과 목소리의 교차를 재개한 건 미련을 청산하고 이후의 가능성으로 나아가기 위함임을 보여줍니다."


'몰이해에 기반한 관계', '미련을 청산하고 여유의 가능성으로 나아가기 위함'.


이 몇 개의 단어가 잊고 지냈던, 아니 사실은 잊지 못했던 지난 연애의 풍경을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놓았다. 정곡을 찔린 듯했다. 나에게도 꼭 저런 관계가 있었다.


스크린샷 2025-11-12 오후 12.37.33.png 출처: 갑을문고 인스타그램 https://vo.la/NpFWKKz
스크린샷 2025-11-12 오후 12.37.12.png 출처: 갑을문고 인스타그램 https://vo.la/NpFWKKz


이어진 피드에는 책의 내지가 담겨 있었다. 우리의 이별도 그랬다.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버려졌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서로의 시간이 다해 '헤어졌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크게 싸우지도, 서로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많은 것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았는지도 모른다.


큐레이터의 말처럼, 우리의 관계는 어쩌면 '몰이해'에 기반하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정작 상대의 가장 깊은 곳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혹은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끝이 났고, 나는 꽤 담담하게 그를 보냈다.


하지만 그 '담담함'이 모든 감정의 정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정말 아주 가끔 그가 생각난다. 문득 찬바람이 불 때, 혹은 우연히 그가 좋아하던 노래를 들을 때. 그럴 때면 '잘 지낼까' 하는 생각과 함께 희미한 아쉬움 같은 것이 마음을 스친다. 큐레이터가 말한 '미련'이란 것이 아마 이런 형태일 것이다.


이 책의 한 구절을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세주의 삶에서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지나간 시절. 그러나 필요가 없어졌다는 건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서 화분 하나로도 텅 빈 방이 가득 채워지는 충만함."


책 속의 '세주'가 한때 좋아했던 것들에서 벗어나 마침내 '충만함'을 느끼게 된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와의 관계가 끝난 후, 나의 일상은 그가 없는 상태로 다시금 단단하게 채워졌다. 화분 하나만으로도 텅 빈 방이 가득 차는 그런 평화로운 '여유'를 찾은 것이다.


그가 가끔 생각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 기억이 내게서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를 다시 만날 용기, 아니, 다시 사귈 자신은 없다. 우리는 '몰이해'의 강을 건너지 못했고, 이제 와서 그 강을 다시 건널 힘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미련을 청산하고 여유의 가능성으로 나아간다'는 큐레이터의 말이, 굳이 재회하지 않아도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임을 깨달을 뿐이다.


우연히 마주친 서점의 포스트 하나가 이토록 명쾌하게 나의 과거를 정리해 주다니. 책이란, 그리고 글이란 참 신기한 것이다.


[갑을문고 인스타그램 게시글 링크]


https://www.instagram.com/p/DOOFijNkigr/?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갑을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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