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 벌이기의 기술

일상기술연구소 6-7회

by 동민

나는 산만하다. 지난 수년간 나 자신에 대한 깨달음 중 가장 확실한 것이 있다면 도무지 한 가지 일에 집중을 못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구를 하다보면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고 사진 찍다 보면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다시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은 식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보잘 것 없는 논문들과 잡다한 인스타 사진들과 끄적인 블로그 글들이 남았다. 미시적인 관점에서도 나의 산만함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사짐을 정리하며 책들을 분류하다가도 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이 눈에 들어오면, 여기에 맘이 쏠려서 굳이 문을 열고 방을 나가 거실에 있는 휴지통에 넣고 오곤 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산만함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어느 정도 접어두고, 산만함을 잘 관리해서 여러가지 일을 벌리며 삶을 풍요롭게 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성장 시대의 일상을 꾸려가는 기술에 대해 얘기하는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일 잘 벌이기의 기술' 편에서는 일 벌이기의 달인(?)을 모시고 그 비법을 전수해 주고 있다. 달인은 자신을 서교동 자영업자로 소개하는 이로 님인데, 유어마인드 라는 독립출판물 서점을 7년째 운영하고 있고 언리미티드 에디션 이라는 아트북페어를 8년째 주최해 오고 있는 분이다. 이 밖에도 출판, 개인 작업, 트위팅(!)까지 다채로운 일을 하고 있다. 타국에서 느끼는 문화적 소외감과 허기를 유어마인드의 사진들을 보며 달래곤 하기에, 내겐 잘 알지는 못하지만 참 고마운 분이다. 이로 님이 말하는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효율적인 벌이는 비법도 흥미로웠지만, '왜 그는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었는가', '이 일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 고개가 많이 끄덕여졌다.


유어마인드 서점 - instagram.com/your_mind_com


일의 고리.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되는 출발점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느끼는 갈증이 놓여있다고 말한다. 불만족이라는 표현보다는 이 갈증이라는 단어가 맘에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하더라도, 그것이 '한' 가지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갈증의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A 라는 일에서 느끼는 갈증을 B 라는 일에서 풀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B 라는 일에서의 갈증을 C를 풀기 시작하면 여러 일을 벌이는 것이 불가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로 님의 경우 책 제작자로서 느끼는 갈증을 서점 운영으로 해소하고, 정적인 서점 운영에서 느끼는 갈증은 동적인 북 페어로 풀어내고 하는 식이다. 이것이 다시 개인 작업으로, 소셜 미디어로 이어지다가 결국 원점인 책 제작으로 돌아오면 일련의 '일의 고리'가 생긴다. 일의 고리 안에 속한 일들은 서로를 유기적으로 연동시켜 주면서 하나하나의 일에서 발생하는 갈증의 틈들을 봉합해 주는 역할을 한다.


취향의 맥락. 그렇다면 동시에 벌어지는 이 여러가지 일들을 서로 흩어지지 않고 고리 안에서 묶여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일의 규모가 작게 유지되어야 하고 협업할 수 있는 지인이 있어야 하는 등의 요건들이 필요하겠지만,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핵심은 '취향을 중심으로 한 일들 간의 자연스러운 유대'이다. 어떻게 확고한 자신만의 취향을 갖게 되었냐는 물음에 이로 님은 오히려 본인의 뚜렷한 취향은 없고 수시로 변한다고 대답한다. 예전에는 라르크앙시엘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요즘은 러블리즈의 음악에 관심을 둘 정도로. 하지만 지금 갖고 있는 자신의 취향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이유로 이러한 취향을 갖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묻는다고 한다. 계속 변하고는 있지만 항상 '존재'하고 있는 취향의 맥락을 정확히 아는 것. 이것이 엉뚱한 일이 일의 고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줌은 물론이고, 반걸음 앞서 신선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기획자의 성실한 자산이 아닐까 싶다.


pic3.jpg 언리미티드 에디션 - unlimited-edition.org


평생을 바쳐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장인은 위대하다. 생계를 위해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감당하는 손길을 정말 숭고하다. 하지만 개인이 장인의 소양을 가지지 못했다면, 사회가 한 가지에 일에 대한 노동의 보상을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롭게 일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작게는 산만함으로 인해 스스로 미안해 하던 마음에 위안을 주는 에피소드였고, 좀더 크게는 일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 더 읽고픈 욕구를 부추기는 방송이었다.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딴짓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