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연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알츠하이머 원인 물질 발견, 치매 치료 새 장 열리나'
'우울증 치료 메커니즘 국내 연구진이 밝혀내, 치료 길 열렸다'
'세계 최초 줄기세포로 뇌성마비 치료기전 밝혀, 치료제 곧 상용화'
흔히 접하는 과학 기사의 제목이다. 국내 연구진이, 불치병 연구를 해서, 세계 최초의 발견을 했고, 곧 치료제가 나온다 라는 기승전-치료의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이 제목들은 어느 질병을 대입해도 똑같은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제목계의 만병통치약(?)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위대한 질병 연구들에 관한 기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손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할머니가 계시고, 우울함에 사로잡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동생이 있다. 과학 기사들에 따르면 진작에 치료되었거나 적어도 치료제 처방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과학에 거는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커진다.
또한 '기승전-치료'로 이어지는 과학 기사는 과학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독자들이 과학을 읽는 흥미를 반감시킨다. 치료제와 같은 실용적인 결과물을 얻는 것이 과학의 궁극적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과학에 대한 오해를 갖게 하여 과학적 사고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과학을 전달하고 읽으면 좋을까. 과학에 관한 글이 주는 유익을 십분 나눌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최근 진행되고 있는 노화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과학 고유의 맛을 살려 전달하고 섭취하는 법을 생각해 보자.
흔한 과학 기사의 예
'뱀파이어 실험, 회춘의 비밀 밝혀'
젊은 쥐의 피가 늙은 쥐의 손상된 뇌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탠퍼드 대학의 위스코레이 (Wyss-Coray) 박사 연구팀은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피부를 벗긴 뒤 샴쌍둥이처럼 서로 봉합하는 수술(개체결합, Parabiosis)을 통해 늙은 쥐와 젊은 쥐의 피를 공유하는 실험을 하였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20세 청년과 80세 노인의 피를 서로 교환하는 실험을 한 것이다. 젊은 쥐의 피를 받은 늙은 쥐에서는 노화에 따른 뇌의 구조적 손상이 개선되었고 학습 능력과 기억력 감퇴가 회복되는 결과를 관찰하였다. 이는 회춘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이 젊은 피 속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제 수혈을 통해 불로장생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도 머지 않아 보인다.
흔히 접하는 종류의 과학 기사의 골자이고 언뜻 보기엔 크게 잘못된 부분도 없어 보인다. 최근 실제로 비슷한 내용의 연구를 다룬 기사에는 흥미로운 댓글들이 달렸다. '난 그냥 순리대로 살다 죽으련다' '갈 때 추하지 않게 가는 게 최고다'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 그러나, 나이 값도 못하면서 오래 살면 민폐다'. 온라인 댓글이 과학 기사를 읽는 독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과학 기사를 소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삶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을 과학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다면야 굳이 말릴 이유는 없겠지만, 과학 기사가 연구의 맥락과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어 씁쓸하다. 기껏 같이 먹으려고 저녁 상을 차렸는데, 그것을 본 아내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와 같은 속깊은 묵상을 꺼낸다면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니겠는가.
맥락의 이해
뽀얀 김이 모락모락 무쇠 솥뚜껑은 들썩들썩 뜸까지 잘 들고 나면 다 됐다 뒤적뒤적
(장기하와 얼굴들 '쌀밥' 중에서)
밥 짓는 과정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군침이 절로 돌게 하는 대목이다. 뜬금없이 웬 밥타령인가 할 수 있겠지만, 최신 연구라는 제철 음식으로 차린 과학 텍스트라는 저녁 상도 맛있게 나누어 먹으려면 연구의 뜸이 들기 전까지의 맥락에 대한 소개가 필요하다. 많은 과학 기사들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소개되지만, 사실 새로 발표되는 연구라 할지라도 오랜 기간을 두고 수행된 이전 연구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연구가 어떤 기존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맥락 속에서 어떤 풀리지 않은 질문에 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연구의 가치는 질문의 무게에 비례한다.
다시 위에 소개한 위스코레이 박사 연구팀의 노화 연구로 돌아가 그 맥락을 살펴보면, 이들이 연구를 통해 답하고 있는 질문이 좀 더 또렷해 진다. 늙은 쥐와 젊은 쥐를 봉합하여 서로의 순환계를 공유하게 하는 방법 (개체결합)은 수술 과정의 조잡(?)함에서 알 수 있듯이 1860년대부터 사용된 굉장히 오래된 수술법이다. 서로 다른 두 동물의 순환계를 수술을 통해 공유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시도된 개체결합은 1950년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노화 연구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제한된 연구 방법으로는 그 이상의 자세한 연구가 힘들기도 했고 실험 자체의 지저분함으로 인해 이후 수십년간 과학자들에게 애용되지 못했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반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혈액 줄기세포의 이동을 연구하는 데 개체결합 방법이 다시 사용되었다. 당시 다수의 줄기세포 연구진을 보유하고 있던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입소문을 통해 개체결합 실험의 유용함이 옆 실험실로 전파되었다. 이 후 위스코레이 박사 연구팀을 비롯한 당시 스탠포드 대학 출신의 몇몇 연구진들은 개체결합을 통해 젊은 쥐의 피에 포함되어 있는 무언가가 늙은 쥐의 심장, 간, 뇌의 줄기세포의 기능을 향상시켜 조직을 재생시킨다는 연구를 줄줄이 내놓는다. 이제 남은 질문은, 과연 젊은 쥐의 피가 늙은 쥐의 줄기세포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늙은 쥐의 기억력과 같은 인지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위에 소개된 위스코레이 박사 연구팀의 연구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비판적 이해
된장찌개 싹싹 비벼서 김치를 쭉 찢어 살짝 얹어서 메추리알 장조림 한 알씩 물고서
굴비를 잘 발라 조금씩 곁들여 식어버린 다음엔 찬물에 말아서
(장기하와 얼굴들 '쌀밥' 중에서)
밥 짓는 법 못지 않게 밥을 맛있게 먹는 법을 알고 있다면 식탁에서의 시간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 맛있게 보인다고 모두 허겁지겁 입에 넣기 시작하면 음식 고유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듯이, 과학 기사가 하나의 연구 결과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홍보하기만 한다면 과학을 맛깔나게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위해서 비슷한 주제를 연구하는 다른 연구팀의 연구 결과와 비교하여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 결과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은 과학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을 막고 견고해 보이는 사실에도 의문을 품는 과학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
젊은 쥐의 혈액에 정말 노화를 늦추는 무언가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던 버클리 대학의 콘보이 (Conboy) 박사 연구팀은 기존의 개체결합 방법과 비슷하지만 업그레이드 된 방법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하였다. 개체결합이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혈액을 교환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장기와 면역 반응 등의 기능을 공유하게 한다는 점을 주목한 콘보이 박사 연구팀은, 두 쥐의 혈액 교환만이 가능한 장비를 개발하여 장기와 면역 반응 공유를 통한 노화 방지 효과를 배제하고자 했다. 이 실험에서 콘보이 박사 연구팀은 기존의 가설과 달리, 젊은 쥐의 혈액이 늙은 쥐의 조직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굉장히 미미하다는 결과를 발표한다. 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늙은 쥐의 혈액이 상대방 젊은 쥐의 조직의 기능을 굉장히 악화시킨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이 결과는 얼핏 '혈액 속의 물질을 통한 노화 방지'라는 기존의 연구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결과를 음미해 보면, 노화 방지의 열쇠를 젊은 피가 아닌 늙은 피가 쥐고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젊은 쥐의 피에서 노화를 방지는 인자를 찾으려 하는 대신에, 늙은 쥐의 피 속에 노화를 촉진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늙은 피에서 이 노화 촉진 인자를 찾아 걸러내자고 전략을 수정해 볼 수 있다. 밥이 식어버린 다음에도 찬물에 말아 먹는 방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연구의 '맥락'을 살피고 결과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우리는 과학적 사고에 동참할 수 있음을 노화 연구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물론 하나의 과학 기사에서 맥락과 비판, 더 나아가 사회적 함의까지 모든 것을 다루기는 현실적으로 버겁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기존의 과학 '기사'라는 형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식의 과학 텍스트들을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과학 기자들 뿐 아니라 현장의 과학자부터 과학책을 읽는 일반 독자에 이르기까지 과학 텍스트를 쓰고 읽고 재생산 한다. 이러한 여러 층위의 시도가 활발해져 과학 텍스트가 기존 과학 기사의 '질병-치료'라는 고정된 프레임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지식이 탄생되고 수정되는 과정을 더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고,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가 비단 과학을 이해하는 데 뿐만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에도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
*위스코레이 박사 연구팀은 올해 4월 발표된 연구에서 인간 태아의 제대혈 (탯줄에 포함 된 혈액)을 늙은 쥐에 주입하였을 때 뇌 기능이 향상되고, 제대혈 속의 TIMP2 단백질이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을 보여주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회사 Alkahest는 올해 1월까지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증상이 완화될 수 있는지 첫 임상시험을 진행하였고 올해 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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