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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Jul 12. 2018

33. 창원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회상 (1)

거의 매일 꿈을 꾸지만 꿈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몇 군데를 꼽아보면 군부대가 있고, 대학 캠퍼스가 있고,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있다. 군대와 대학이 배경이 되는 꿈을 꿀 때 꿈속의 나는 내가 그곳에서 일련의 과정을 이미 모두 마쳤음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로 군대나 대학에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재입대나 재입학한 나는 꿈속에서 불안을 느끼다가 깨어나서 안도하곤 한다. 반면 어릴 적 동네가 나오는 꿈에서의 나는 말 그대로 어린 아이다. 내가 어른인 걸 아는데 지금은 어린 아이로 돌아와 있네 라는 자각이 없는, 그저 그때 그 나이의 어린 나다. 얼만큼 어린가를 굳이 따져 본다면 학교에 들어가기 전 혹은 갓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의 나다. 어린 나는 불안을 느끼지도 않고 안도하며 깨어나지도 않는다. 주로 공터에서 놀고 있거나 살던 집 근처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가, 오히려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일어난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봤을 때 그때 참 좋았지 하고 기억되는 시간이 많으면 좋겠지만, 내 경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다시 꺼내 보고픈 순간은 시간의 축 여기저기에 점처럼 자리하고 있겠지만,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순간이라기보다는 '어떤 시기'라고 불릴 만한 시간의 토막에 가깝다. 참 좋았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 던질 때마다 떠오르는 때는 10년 전 언젠가와 20년 전 언젠가와 30년 전 언젠가이다. 정확히 10년 주기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무렵의 얼마간의 시간이 내겐 이 정도의 기억이면 가끔 꺼내보고 곱씹어 봐도 괜찮겠어 라고 생각되는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믿을 수 있는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오래된 30년 전 즈음의 얼마간의 시간이다. 기억의 밀도가 높은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팽창이 많이 되어 있는 시간이다. 느슨하게 늘어진 시간의 반죽 위에 어린 내가 있고 어린이들이 있고 엄마가 있고 아빠가 올려져 있다.



그때의 나는 창원에 있었다. 말을 빙빙 돌려 복잡하게 한 것 같은데, 유년기를 보낸 창원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내가 살던 창원의 한 동네를 꼭 가보고 싶었다. 사실 창원을 떠나고 그 동네를 다시 찾아가 본 적이 한 번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나. 그때는 유년기에 대한 기억을 지금보다 더 꼭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이미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지 않은 활동이 내 맘 속에 있는 무언가를 자라나게 해서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짠 하고 꺼내어 놓을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믿음에 의심을 품지는 않았다. 다만 의심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불안을 느꼈다 라고 해야 할까. 내 삶 속 어딘가 한 부분이 살짝 미묘하게 틀어졌고 이 작은 틈이 왠지 생각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의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무의식의 불안은 나에게 현실에서 떠나 숨을 곳을 찾으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가능했고 모든 것이 포근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창원에서의 유년기를 떠올리고 그때를 연두색으로 칠한 다음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게 상자에 담아 손에 닿을 만한 거리에 두었다. 고등학생인 내가 창원을 회상하는 마음이 정말 이와 같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십 대가 된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해석은 그렇다.


고등학생 때 다시 찾아간 창원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예전에 다니던 유치원을 찾아가 그 앞에서 찍었던 사진 한 장이 내가 창원을 다시 찾아가긴 했다는 사실을 겨우 증명하고 있다. 당시 동행한 아버지나 어머니가 찍어 주셨을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의 나는 여전히 미성숙의 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아니 여전히 어려 보여서 사진의 배경과 사진 속 나라는 인물 사이에 있을 거라 기대했던 불협화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여름이었는지 사진 속 유치원 마당의 무성한 녹음을 배경으로 나는 초록색 엠엘비 야구 모자와 흰색 반팔티에 체크 반바지를 입고 있다. 살짝 지루한 듯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한쪽 손이 다른 쪽 팔꿈치를 잡고 어색하게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지나간 삶의 한 부분을 회상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기엔 무언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어쩌면 당시에도 이것저것 되살아나는 추억이 꽤나 있어 가슴이 말랑해졌는데, 같이 간 부모님에게 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불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창원을 방문한 그때 이후로 나의 창원 앓이는 조금 잠잠해졌다. 다시 가봐도 별것 없네 하는 실망감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연두색으로만 칠해 놓았던 어릴 적 기억이 다소 침침하게 바래진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창원 그 동네는 그대로 있네 하는 안도감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 두 배의 나이를 먹는 동안 나는 얼마간 변했을 테고 창원도 주변의 마산과 진해를 흡수하여 몸집이 제법 커졌다. 예전에 창원에 살 때면 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모퉁이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것이 부끄럽다거나 말하기 꺼려지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른 곳에 사는 사람에게 내가 어디에 사는지 설명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마산 옆에 있는 창원 살아요 라고 내가 사는 곳을 소개했는데, 그건 마산이 당시 창원에는 없던 백화점이 있었을 정도로 큰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웃 도시 진해는 벚꽃축제 군항제가 유명했으므로 그 나름의 존재감이 있었다. 창원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살기는 좋지만 애매한 도시였다. 적어도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엔 그랬다.


그랬던 창원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나도 그 도시에 다시 가고 싶어 졌다. 정확히 말하면 변한 도시가 보고 싶다기보다는, 변하지 않은 동네가 보고 싶었다. 이번에 가면 좀 더 차분하고 담담하게 동네 곳곳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미묘하게 어긋나기 전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때는 좋았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왜 좋았는지 조용히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묻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예전 그 시간 속에서 잠시 서 있고 싶었다. 그리고 몇 걸음 걸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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