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직 학교에서 퇴근하지 않은 딸아이에게 문자로 짧은 대화를 나누어본다. " Miss Yi, 저녁식사는 어떻게 하셨는가요?" 아직 학기 초이고 이번에 담임을 맡은 학년은 2학년 아이들이라서 이런저런 준비를 할 것들이 많다면서 9월 시작부터 자주 저녁시간까지 학교에 머물다 오는 걸 보면 아이들과 수업시간에 할 것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잠시 후 답이 온다. " 지금 먹으러 나가요. 옆반 선생님하고 저녁 먹고 집에 갈게요." 오랜만에 아내가 만든 감바스를 딸아이가 오면 주려고 접시에 담아 놓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냉장고로 들여놓는다. 아내와 저녁식사 후 함께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아서 2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말하는 게 들려왔다. "엄마, 아빠 빨리 나와보세요!" "오로라! 오로라!" 딸아이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9시경에 가라지 문을 열고 차를 들여놓으려 하던 차에 갑자기 머리 위에서 구름도 아닌 초록빛 띠가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어서 놀란 마음으로 우리를 불렀던 것이다. 한겨울이나 어쩌다 보이던 오로라가 아직 찬바람도 불지 않는 10월에 나타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이것도 기상이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늘 위로,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우리들 머리 바로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초록의 기운이 밤하늘을 채웠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도 오로라는 북쪽지역에서 추운 한겨울에나 나타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 무슨 일로 영상 15도의 가을 날씨에 온통 푸른빛의 띠를 두르고 우리들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언젠가 에드먼튼에서도 오로라를 만났다고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10년 내외로 두세 차례에 지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나도 10여 년 전 겨울에 뒷마당 위로 잠시 약하게 초록의 빛을 살짝 보여주다가 사라지는 오로라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어제의 오로라는 그것들 보다 훨씬 진한 색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내는 잠시 하늘을 보다가 색이 연해지고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자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딸아이와 내가 계속 하늘을 주시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중에 골목 중간중간에 어디서 들 소식을 들었는지 하나 둘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골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바로 옆집에 현관문이 열리고 옆집아줌마 스테파니아가 핸드폰을 들고 나오면서 딸아이와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보여주기 바쁘다.'이건 윗동네 St. Albert에 사는 내 친구가 보낸 사진인데 너무나 색이 진하게 나왔다'면서 우리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정말 방송에서 나오는 색감을 가지고 있는 오로라 사진이다. "와우!" "멋진데" "대단하다"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보다가 조금씩 사라지는 오로라를 뒤로하고 30분 정도 하늘 사진을 찍다가 서로에게 굳나잇을 전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핸드폰에 남은 오로라의 흔적을 뒤적이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시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현관에 벨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 어플로 현관문 카메라를 확인해 보니 깜깜한 밤에 하얀 물체가 눈만 반짝이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안경을 쓰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옆집 스테파니아다. 나보다 딸아이가 먼저 벨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더니 바로 내 핸드폰이 울려댄다. "아빠! 오로라!"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의 몸은 자동반사하는 것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서 대충 옷을 입고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와!!"
우리들이 하는 말은 모두 한 가지로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초록빛 사이로 붉은빛도 섞여서 날아다닌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순간순간 바뀌며 빛의 세기도 강해지고 약해지고를 반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다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옆집아줌마가 벨을 눌러대리라곤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좀 전에 딸아이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와준 오로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벨을 눌렀다고 한다. 핸드폰에 비친 하얀 귀신?같던 스테파니아의 노력 덕분에 처음으로 환상적인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는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