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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 Jan 28. 2024

절대 인정하지 않던
증인의 마음이 한 번에 바뀐 이유

'아니오'라고 버티는 상대방을 '네'라고 대답을 유도하는 방법

우리 가족은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팬이다. 가족이 다 같이 시간이 있을 때는 모여서 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거의 켠 적이 없던 TV를 켠다. '오늘은 무엇을 볼 것인가' 세 아이가 옥신각신 하다가 선택한 것은 <18화,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 다섯 명의 가출청소년들이 사람을 죽인 주범으로 지목되었는데, 가출청소년 한 명이 '우리가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로 편지를 보내면서 사건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방송에서 내가 너무 신기했던 것은 재심 현장에서도 끝까지 첫 진술을 번복하지 않으며 강하게 버티던 증인이 어떻게 판사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바뀔 수 있었는지다. 공교롭게도 TV 시청 직전에 읽었던 <인간관계론>의 내용과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더 그랬다. '와.. 이게 정말 가능하구나!'


(출처: SBS 꼬꼬무 18화,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


사건 조사 과정에서 협박을 들으며 허위 자백을 했다는 증거 덕분에 사건은 재심이 진행됐다. 7명의 피고인(다섯 명의 가출청소년, 노숙인 정 씨와 강 씨), 강 씨를 제외한 6명이 이미 진술을 번복한 상태에서 강 씨까지 진술을 번복한다면 아이들의 무죄 판결의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 씨는 이미 벌금 200만 원을 내고 풀려났기 때문에 이미 형을 마친 상태. 그에게는 수많은 증거 앞에서도 번복을 할 이유는 없었다. 결과가 잘못되면 위증죄로 (첫 재판에서 정 씨가 그랬던 것처럼) 추가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 "진실을 말해라 마지막 기회다" 변호사가 아무리 진술의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강하게 추궁해하고 다그쳐도 강 씨는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 


(출처: SBS 꼬꼬무 18화,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


그때 판사가 증인 강 씨에게 물었다. 


재판장: "증인은 현재 수감 중인 노숙인 정 씨와 친구사이죠?"

강 씨: "네 맞습니다"

재판장: "증인이 진술을 번복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친구 정 씨의 억울함을 풀 수도 있겠죠? 모든 상황을 잘 생각해서 사실대로만 증언해 주세요. 정 씨가 사건 현장에 간 것이 틀림없는가요?"


그 질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강 씨가 이렇게 말했다.

"판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날 정 씨와 아이들은 사건 현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강 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편안하고 부드러운 말투?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과 대화할 견해가 다른 의견부터 논의하지 말고 상대방이 처음부터 "네. 네"라고 말하도록 대화를 이끌라고. 


오버스트리트 교수는 그의 저서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오'라는 반응은 극복하기 가장 어려운 장애물이다. 한번 '아니오'라고 말한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자기 생각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나중에 가서 '아니오'라고 한 것이 경솔한 일이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소중한 자존심을 챙겨야 한다! 사람은 한번 어떤 말을 뱉고 나면, 그 말을 계속 고수하려 한다. 따라서 상대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간관계론>, p.258


나는 변호사가 변명의 여지없이 강하게 추궁한 것이 오히려 강 씨 스스로를 더 방어하게 만들었을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대로 판사는 강 씨에게 친구 이야기룰 하며 그가 마음속에 걱정하고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첫 질문의 답을 "네 맞습니다"로 이끌어냈다. "친구 사이죠?"라고 물으면 당연히 맞다고 하지 않겠는가. 첫 질문은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이것이 강 씨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든 키가 아니었을까? 


'네' 반응을 유도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기술이다. 하지만 얼마나 쉽게 무시되던가! 사람들은 종종 처음부터 상대의 의견에 대립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급진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와 회의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상대를 분노에 빠뜨리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게 무엇인가? 단순히 상대를 화나게 해서 즐거움을 얻는 목적이라면 그나마 이해하겠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상대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그저 심리학적 바보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관계론>, p.259


하지만 핵심은 단순히 처음 대답을 '네'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 수많은 인간관계에 관한 비밀과 사례들이 <인간관계론>에 넘쳐나지만, 같은 맥락에서 생각나는 한 사례가 있다. '역설적 사고'라고 불리는 방법인데, 예를 들어 완전히 경쟁 관계에 있는 A 축구팀의 팬이 한 명 있다고 생각해 보자. A팀 팬에게 아무리 B팀의 장점을 늘어놓아도 A팀 팬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향한 애정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A팀 팬에게 A팀을 '극단적으로' 칭찬을 하면 그는 애초의 경직된 생각을 녹이기 시작하며 'A팀이 최고의 팀이긴 하지만 요즘엔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는 것 같다'며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책 <패거리 심리학>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의 심리학자 에란 할페린은 '우리 VS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갈등을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는데 이 '역설적 사고'는 심지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프고 감정적으로 뒤얽힌 문제에 적용해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즉 어떤 쟁점에 극단적인 확고한 견해를 지닌 사람과 논쟁한다면 그를 반대 의견으로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접근한다면, 상대방이 이런 상황에 놓인 다른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리 변호사가 강 씨에게 다그쳐도 그가 끝까지 버티며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말하는 방식을 바꾸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마법처럼 풀릴 것이다.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복잡한 일들이 <인간관계론>을 읽으며 한 줄기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누군가 나의 말에 반박하면 기존의 방식으로 대응하지 말자. '진심으로' 상대방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대화해 보자. 나를 공격하던 상대방을 변화시키며 그것을 즐기던 데일카네기가 놀랍다. 그의 비밀을 책 한 권을 통해 낱낱이 공유받은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가 기대돼서 약간 설렌다.


상상스퀘어에서 운영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15기의 첫 번째 서평입니다


참고:

1.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무삭제 완역본), 상상스퀘어

2. 꼬꼬무 18화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 SBS

3. <패거리 심리학>,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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