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도로 자신을 판단한다

스타크 가문의 비극

by 김이사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행동으로 판단하고,
자기 자신은 의도로 판단한다."

스티븐 코비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는 엄격하지만, 자신의 행동에는 관대하다. 타인은 결과로 판단하면서, 자신은 의도로 정당화한다.



왕좌의 게임에서 스타크 가문의 비극은 이 문장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악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 의도가 옳다는 믿음이, 행동의 결과를 끝까지 생각하는 것을 막았다는 데 있다.


1. 캐틀린 스타크 — 아들을 지키려 했다


캐틀린 스타크의 의도는 분명했다. 아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브랜을 떨어뜨린 범인이 티리온이라는 증거는 없었다. 단지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짐작만으로 티리온을 납치했다. 자신의 의도가 옳다는 확신이 판단을 대신했다. 결과는 라니스터 가문에게 명분을 주었고, 두 가문의 갈등을 전쟁으로 끌어올렸다.



더 결정적인 실수는 포로 제이미 라니스터를 몰래 석방한 것이었다. 아들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 그 의도만큼은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선택은 롭의 권위를 흔들었고, 핵심 동맹 카스타크 가문의 이탈을 불러왔다. 캐틀린은 매번 가족을 지키려 행동했다. 그러나 그 의도가 행동의 결과를 가렸고, 결국 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2. 네드 스타크 — 명예를 지키려 했다


네드 스타크의 의도 역시 명확했다. 명예를 지키는 것이었다.

제이미 라니스터가 미친 왕을 죽였을 때, 네드는 그를 왕을 살해한 자로 단죄했다. 왕이 수천 명을 불태우려 했다는 사실, 제이미가 그것을 막았다는 맥락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제이미를 행동으로 판단했고, 그 행동 뒤의 의도는 묻지 않았다. 코비의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장면이다.



더 치명적인 실수는 서세이의 비밀을 알게 된 후 그녀에게 직접 경고를 보낸 것이었다. 명예로운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믿음, 그 의도는 순수했다. 하지만 킹스랜딩에서 그것은 스스로 패를 다 내보이는 행위였다. 그는 리틀핑거를 신뢰하며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고, 결국 배신당했다. 네드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은 의도로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3. 롭 스타크 — 원칙을 지키려 했다


롭 스타크는 전장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의도와 원칙을 앞세운 결정들이 그를 무너뜨렸다.

프레이 가문과의 결혼 약속을 어기고 탈리사와 결혼한 것은 사랑이라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개인으로서 롭에게 그 선택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북부의 왕으로서 그것은 핵심 동맹을 저버리는 행위였고, 결과는 레드 웨딩이었다.



카스타크 경을 즉결 처형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명령을 어기고 포로를 살해한 자를 처벌한다는 원칙, 그 의도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조언을 무시하고 즉각 처형을 택한 결과, 카스타크 군사 절반이 이탈했다. 원칙을 지키려다 전략을 잃었다.


세 사람의 공통점


세 사람 모두 스스로의 의도를 믿었고, 그 의도가 옳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이 행동의 결과를 내다보는 것을 막았다. 스티븐 코비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의도로 스스로를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행동으로 우리를 판단한다. 스타크 가문은 악해서 몰락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몰락했다. 자신의 의도가 선하다는 믿음이, 행동이 만들어낼 결과를 끝까지 보지 못하게 했다. 세 가지 실수는 다음의 교훈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감정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에 결정하지 말 것

2.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멀리 내다볼 것

3. 그리고 타인의 행동 뒤에 숨겨진 의도를 진심으로 들여다볼 것


마치며

스타크 가문의 비극은 판타지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다. 그 의도가 어떤 행동과 결과로 이어질지 끝까지 생각하는 일이다.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은 이렇게 말한다.


"타인과 나의 거리를 좁히는 핵심은 이 시선의 방향을 뒤집는 데 있다. 자신의 진심과는 어긋난 서툰 행동이 상대에게 준 상처를 직시할 때 진정한 반성이 시작되고, 타인의 행동 뒤에 숨겨진 복잡한 사정을 헤아릴 때 깊은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근원적 반성과 이해가 열리는 순간, 우리는 옳고 그름을 심판하던 자리에서 물러나 같은 불완전함을 지닌 인간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진정한 소통은 '시선의 역지사지'에서 완성된다. 자신에게는 더 엄격한 행동의 잣대를, 타인에게는 더 따뜻한 의도의 잣대를 적용할 때 오해의 장벽은 허물어진다. 내 진심이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며 행동을 살피고, 타인의 거친 겉모습에 매몰되지 않고 마음을 읽어낼 때, 우리는 마침내 서로의 실체에 닿는 성숙한 인격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 p. 152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p.152


이 책이 제안하는 것처럼,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나 자신을 행동으로 판단하는 연습, 타인을 의도로 판단하는 연습. 우리는 이미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 그렇기에 반대 방향으로 의식적으로 기울어야, 비로소 조금이라도 중심에 가까워질 수 있다.


감정이 판단을 앞지르는 순간, 우리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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