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커넥션>, 동물 관계에서 깨달은 인간사회
<애니멀 커넥션>은 동물들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개미, 벌, 메뚜기, 새, 고래, 사자, 침팬지, 보노보 등 다양한 동물들의 무리에서 각자의 역할, 규칙, 그리고 협력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들려준다.
이 책의 묘미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동물들의 행동에 숨겨진 이유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철새들이 V자 대형으로 날 때 힘센 리더 한 마리가 앞장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번갈아가며 앞을 맡고 공평하게 에너지를 분배한다고 한다. 무임승차는 없다는 것. 또 수백만 마리 메뚜기 떼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이유는, 뒤에서 따라오던 배고픈 메뚜기들이 앞선 개체의 다리를 물어뜯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책을 펼치고 읽다 보면 생각보다 우리와 닮은 모습이 많아서 놀라웠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인간 사회와 비교하게 됐고, 꽤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리 안에서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고 퍼져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서식지를 바꾼 때 물고기 떼 중 약 5% 정도가 이동을 시도하면, 나머지 무리는 아무런 지시 없이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간다. 마치 작은 불씨가 커다란 불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포유동물 같은 일부 동물들에게는 집단의 이동 방향을 지시할 수 있는 리더와 명확한 계층 구조가 존재한다. 그러나 물고기 떼나 대부분의 새 떼에는 위계질서가 없고 영구적인 지도자도 없으므로 이들은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대규모 집단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잘 작동한다. 먹이 신호를 감지한 소수의 배고픈 물고기들만 있어도 큰 무리를 움직일 수 있다. 그룹의 5퍼센트 정도가 먹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머지도 따라갈 것이다. -p.136, <애니멀 커넥션>
이 장면을 읽는 순간, Damon Centola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등장하는 25%의 티핑포인트가 떠올랐다. 그 책에선 '약 25%의 사람들이 새로운 행동을 수용하면 나머지도 금세 따라간다'는 사회 실험 결과가 소개된다.
결국 전체 집단을 반대 방향으로 '뒤집게' 할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 데 필요한 얼리 어답터는 몇 명일까? 우리가 도출한 예측치는 캔터의 원래 연구와 일치했는데, 그 티핑 포인트는 25%였다. 우리 집단 중 4분의 1만 새로운 믿음이나 행동을 받아들이면, 나머지도 금방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상정했다.
- p. 238-239,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5%와 25%. 수치는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 꼭 대다수의 동의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 임계질량만 넘으면 변화는 스르르 일어나기 시작한다. 동물 사회든 인간 사회든, 결국 누군가 먼저 움직여야 시작되는 법이다.
하지만 또렷한 차이도 있다. 바로 '정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태도다. 철새들은 각자 수집한 정보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하며 방향을 조절하고, 주변 새들과 함께 평균적인 방향으로 날아간다. 누군가가 더 나은 경로를 발견하면 전체 무리가 그 혜택을 함께 누린다. 이건 다른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한 박새가 우유병 뚜껑 여는 법을 알아내자, 몇 년 안에 그 지식이 전국으로 퍼졌고, 돌고래가 해면을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면 그게 대대로 전해진다. 이건 일종의 ‘동물판 바이럴’이다.
이쯤 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들은 정보를 독점하지 않는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발견이라면 당연히 나누고, 함께 써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인간은? 우리는 종종 중요한 정보를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다. 기회를 빼앗길까 봐,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혹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물론 인간의 뇌는 훨씬 복잡하고, 자아나 명예욕도 강하다. 그래서 정보는 곧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너무 많은 경쟁과 독점이, 집단 전체의 성장이나 생존을 막기도 하지 않을까?
책을 덮고 나서 마음에 남았던 문장이 있다.
협력은 경쟁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결국 인간과 동물 모두, 집단의 안정성과 개인의 창의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다수의 안정은 우리를 지키고, 소수의 용기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다수의 선택 → 전통과 안정
개인의 혁신 → 학습과 진화
그럼 변화는 어디서 시작될까? 우리는 때로 너무 큰 숫자, 너무 많은 사람의 동의를 기다린다를 기다린다. 모두가 동의해야, 모두가 찬성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수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그게 일정한 임계점을 넘으면 변화는 퍼져나간다. 며칠 전 여름휴가에서 봉하마을에 들렀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관에서 이 문장을 보게 됐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래서 서평을 쓰는 데 3주나 걸렸지만, 그만큼 의미 있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문구는 복잡하던 내 머릿속을 순식간에 정리해 주었다.
변화를 만드는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깨어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움직이는 힘일지도 모른다. 소수의 용기와 다수의 지혜가 함께 작동하는 사회적 협응을 상상해 본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5%’가 '25%'로 연결된다면,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철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협응을 통해 전체가 이득을 누릴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집단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1. <애니멀 커넥션>, Ashley Ward
2.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Damon Cent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