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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그랜트는 오리지널스를 다시 써야 한다

신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by 김이사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를 약 6년 전에 읽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그룹장으로 있던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고정 도서로 선정하고, 매기수마다 반복해서 읽고 매번 다르게 서평을 쓰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좋아했다. 특히 7장 '집단 사고를 재고하라'에 나오는 헤지펀드 회사, 브리지워터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레이 달리오에 대한 호감이 굉장히 높아졌다. 그의 책 <원칙>도 샀고, 그의 말을 인용해 서평도 썼었다.


<오리지널스>에서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 의사결정에 반영할지에 관해 레이 달리오와 애덤 그랜트가 토론하는 부분이었다. 레이 달리오는 신뢰도를 측정해서 신뢰도가 높은 사람들의 의견을 높이 사야 한다는 것이고, 애덤 그랜트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 공평하게 간주되어야 된다고 했다. 결국 그들은 서로 의견이 다른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때 나는 레이 달리오의 의견으로 더 기울었다. 모두의 의견은 동등하지 않고, 신뢰도가 높은 사람의 의견에 더 가중치를 두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여기서 궁금했던 것은 레이 달리오는 도대체 어떻게 신뢰도를 측정하는지였다.


아마도 브리지워터의 화려한 성공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 신뢰도 측정 방식은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는데, 최근 <원칙의 배신>을 읽고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답은 놀랍도록 불편했다.


애덤 그랜트가 본 '이상향'


애덤 그랜트는 <오리지널스>에서 브리지워터를 이렇게 묘사했다. "직원들이 조직을 가족이라 부르고 수십 년 동안 근무한 직원들도 흔할 만큼 구성원들 간의 유대감이 강하고 친밀한 공동체." 그는 달리오의 200여 개 원칙을 혁신적 경영 철학으로, 실시간 피드백 시스템을 객관적 평가 도구로, 급진적 솔직함을 집단사고 방지 메커니즘으로 해석했다.

특히 애덤 그랜트가 강조한 것은 브리지워터의 '평등한 투명성'이었다. 달리오조차 직원들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해 A부터 F까지 점수를 매겨달라고 요청한다는 일화는 겸손한 리더십의 모범사례로 제시되었다. "바로 이 점이 브리지워터의 강력한 문화와 컬트의 차이점"이라고 애덤 그랜트는 단언했다.

하지만 애덤 그랜트 자신도 달리오와의 만남에서 미묘한 의구심을 표했다. 200개가 넘는 원칙의 우선순위 부재, 의사결정 방식의 주관성, 과학적 실험 대신 '신뢰도 높은 직원 3명의 토론'에 의존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적 관찰에도 불구하고, 애덤 그랜트는 여전히 브리지워터를 혁신적 조직으로 결론지었다.


거울 뒤편의 진실


<원칙의 배신>에서 롭 코플랜드가 폭로하는 브리지워터의 실상은 애덤 그랜트의 묘사와 정반대다.

'투명성 라이브러리'는 경영위원회의 격렬한 논쟁부터 하급 직원들에 관한 지루한 경제 잡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간의 내부 회의가 소리와 영상으로 담긴 전자 저장소다. 그런데 실상은 스테파노바라는 임원이 굴욕당하는 장면을 녹화해 의도적으로 편집한 후 전 직원에게 "교육 자료"로 배포하는 식으로 활용되었다. 또 한 직원의 사적인 재정 문제를 50명 앞에서 공개 심문하고 이를 녹화해 "원칙 적용의 모범사례"로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투명성'이었다.

매일매일 새로 문제가 불거지면서 직원들이 불려 나가 취조를 받았고 취조는 녹화되어 브리지워터의 기록 보관소에 새 자료로 저장되었다. 사건은 갈수록 사적인 문제로 비화되었다. 달리오는 마케팅 팀의 한 삼십대 직원이 빚을 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약 오십 명의 직원을 앞에 모아놓고 그 직원에게 빚을 진 이유를 심문했다. 심문 과정은 녹화되었고 원칙이 직업적 문제와 개인적 문제 양쪽에 적용될 수 있다는 모범사례를 제시하는 차원에서 전 직원에게 전송되었다. (p.182, <원칙의 배신>)


'이슈 로그'라는 개방형 문제 제기 시스템은 직원당 주당 10-20건씩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 강제 할당량이 문제였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보너스가 삭감되었다. 결과적으로 직원들은 억지로 문제를 만들어내야 했고, 동료를 "조사"해서 트집을 잡고 서로 감시하는 독성 문화가 조성되었다.


'신뢰도 점수 시스템'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아야만 했던 사람은 레이 달리오 자신이었다. 본인을 1순위로 고정한 후 직원들이 그 신뢰도를 넘을 수 없었고, 평가 기준을 추가하거나 삭제할 권한은 오직 달리오에게만 있었다. 신뢰도 높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구조에서, 결국 기존 권력구조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되었다.

모든 직원들은 야구카드 형태로 구현된 브리지워터의 등급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카드는 1부터 10까지의 도트 즉 평가 점수로 채워졌고, 도트는 24시간 언제라도 찍을 수 있었다.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서로를 평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감시하는 문화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신입사원들이 초기에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평가기록이 전혀 없는 빈 야구카드가 동료들로 하여금 야박한 점수를 매기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었다. 동료들로서는 신입사원에게 굳이 튀는 점수를 줄 이유가 없이 남들이 매긴 점수에 묻어가면 그만이었다. 신입사원들도 자신이 높은 점수를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임을 며칠 만에 깨달았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최고 경영진의 견해를 충실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달리오나 젠슨은 회의 도중 본론에서 벗어나 어떤 부하 직원이 일을 잘하는지 여부를 투표에 붙이는 경우가 잦았다. (p.181, <원칙의 배신>)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계급에 따른 차별적 적용이었다. 달리오는 "최하급 직원에게 폭풍 같은 맹렬한 도트 공격"을 가했지만, 캐시디 기자가 관찰한 바로는 "부하직원을 비판하는 임원들은 봤어도 임원을 비판하는 부하직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달리오는 아마 회사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단순직 종사자들에게 특히 무자비했던 것 같다. 그는 원칙을 주의 깊게 적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기본적 문제가 터졌을 때 더 쉽게 화를 냈다. 따라서 건물 관리인, 비서, 기타 단순직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위험지대에 있었다. 그들의 직장 생활은 소동이 일상이었다. 가령 버스 운전사는 차 안이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는 이유로 종종 조사를 받았다. 매일 아침 간식 냉장고가 가득 차 있으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반면 음료수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최하급 직원에게 폭풍 같은 맹렬한 도트 공격이 떨어졌다. 상사가 회의에 늦는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비서들은 일정 관리에 책임을 뒤집어써서 낮은 도트를 받았다. (p.184, <원칙의 배신>)

전문가들의 증언

<원칙의 배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브리지워터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IBM 왓슨의 개발자 데이비드 페루치는 달리오의 '경제 기계' 이론을 검토한 후 이를 "사이비 과학의 조합물"이라고 평가했다. 브리지워터는 그의 연구소에 수천만 달러를 투입했지만, 페루치 팀은 달리오의 사고과정에서 "예측 가능한 패턴을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페루치에게 신뢰도 산출 방식을 물었을 때, "비밀입니다. 창피해서요"라고 답한 것이다.

실제 데이터 분석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직원들이 원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수록 회사의 투자 성과가 더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오가 자랑하던 원칙들이 실제로는 회사 성과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니얼 퍼거슨 교수는 달리오의 '역사의 순환' 이론에 대해 "이것이 대학원 제자가 쓴 논문이었다면 낙제시켰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퍼거슨이 "역사의 순환이라는 건 없습니다. 상상일 뿐이죠"라고 말하자, 달리오는 "보들보들 떨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고 한다. "니얼! 당신네 빌어먹을 모형은 어디 있소?"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한 루빈스타인은 가장 직설적이었다. 그는 달리오에게 "375개나 되는 것이 무슨 원칙입니까? 사용자 설명서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그는 브리지워터 시스템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브리지워터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은 신뢰도가 아니라 직원들의 신앙심이었다. 레이, 이건 종교예요." 회사를 나간 그에게 브리지워터가 어떠냐는 사적 대화에서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거기 사기 집단이야."


신뢰 평가의 함정들


<오리지널스>에서 브리지워터를 '집단 사고를 재고하라' 장에서 최고의 사례로 소개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명한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어떻게 이런 실상을 놓친걸까?


첫째, 정보 접근의 한계

애덤 그랜트는 "편집된 영상을 관찰"했고, 브리지워터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전시용 투명성'만 접했다. 반면 <원칙의 배신>의 저자는 내부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시스템의 실제 작동 방식을 폭로했다.


둘째, 성공 편향

브리지워터의 재정적 성공이 그들의 문화적 주장을 자동으로 정당화한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원칙 준수와 성과 간에 부정적 상관관계를 보여줬다.


셋째, 권위에 대한 맹신

애덤 그랜트는 달리오의 자기 서사를 충분한 검증 없이 받아들였다. 달리오는 떠나면서도 "나는 한번도 어떤 의견을 내 마음대로 뒤집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신뢰도 점수에서 항상 1등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루빈스타인을 3시간 동안 개인 공격한 후 축출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원칙의 배신>이 던지는 질문은 브리지워터를 넘어선다. 우리는 성공한 조직과 리더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1. 단일 출처에 의존하는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저명한 학자라도 제한된 접근과 편향된 정보로는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애덤 그랜트처럼 몇 번의 회의 참관과 인터뷰만으로는 조직 문화의 실체를 알 수 없다.


2. 내부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특히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 시스템을 떠난 사람들의 증언은 공식적 서사와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스테파노바, 맥도웰, 루빈스타인 같은 사람들의 경험이 달리오의 화려한 수사보다 진실에 가깝다.


3. 과학적 검증을 요구해야 한다.

달리오의 시스템은 "이중 맹검법도 익명 설문조사도 심지어 기본적인 회귀 분석조차 한 적이"없었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이라도 실증적 근거 없이는 신뢰할 수 없다.


4. 성공 그 자체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브리지워터의 투자 성과와 조직 문화는 별개 문제였다. 때로는 성공이 문제를 은폐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애덤 그랜트는 정말로 <오리지널스>를 다시 써야 한다. 브리지워터 사례를 삭제하거나, 최소한 <원칙의 배신>이 제시하는 반박 증거들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진정한 '오리지널 사고'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처음 <오리지널스>를 읽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신뢰도를 누가,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만약 신뢰도 측정 방법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우리는 결국 "모든 사람의 의견은 평등하다"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신뢰도는 누가 정하는가? 달리오의 고집과 재력으로 가능했던 매우 비싼 실험을 통해, 아직 우리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결국 신뢰를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원칙의 배신>을 읽으며 나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얼마나 쉽게 맹신하는지, 그리고 이 맹신을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이야기했을 때 얼마나 큰 파급이 올 수 있을지!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대단해 보이는 그들도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결국 누군가를 신뢰하고 싶다면 충분히 의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뢰하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신뢰 사회를 살아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믿고 싶다면 절대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맹신하면 안된다는 교훈.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더 잘 믿기 위해서는 충분히 의심해야 한다.



참고

1. <원칙의 배신>, 롭 코플랜드

2. <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3. <원칙>, 레이 달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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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스> 예전 서평들

https://brunch.co.kr/@petite-juhyun/10

https://brunch.co.kr/@petite-juhyun/50

https://brunch.co.kr/@petite-juhyun/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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