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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의 사고법

– 미래를 더 선명하게 그릴수록, 오늘이 달라진다

by 김이사

소설책을 손에 든 게 참 오랜만이다. 7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봄, 무려 2,500쪽에 달하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시리즈 7권을 석 달 만에 읽었다. 이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책 속에서 자꾸 이 책 제목 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칸 아카데미를 만든 살만 칸의 <나는 AI와 공부한다>에서 한 페이지를 넘게 설명한 줄거리를 보고 흥미가 생겼다.

KakaoTalk_20250510_125900060_01.jpg <나는 AI와 공부한다>, p.316-317


검색을 해 보니, 심지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보고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연구하는 “심리역사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는 걸까?


20250510_135031.png 폴 크루그먼이 2012년 가디언에 기고한 글


<파운데이션> 의 중심에는 ‘심리역사학자’ 해리 셀던이 있다. 그는 수학과 통계를 이용해 대규모 집단의 행동을 예측하는 가상의 학문,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을 창시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하다. 은하 제국의 몰락 후 도래할 암흑기 3만년을 단 1천 년으로 줄이는 것. 그는 직접 사건에 계속 등장하지는 않지만, 후속 세대가 그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치 설계도만 남기고 떠난 엔지니어 같은 존재다.


어떻게 곧 도래할 암흑기를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신 3만년의 암흑기를 1천 년으로 줄여보겠다고 결정할 수 있을까? 이 압도적인 상상력은 단지 SF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던져준다. 이 관점은 <롱 뷰>에서 강조하는 미래 지향적 사고와도 통한다. 문명의 몰락을 예견하고 오늘을 준비하는 역사심리학자의 이야기... 즉, 미래를 명확하게 그릴수록 현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장기적인 시야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책 <롱 뷰>의 초반(46-47쪽)에서 저자는 H.G. 웰스의 통찰을 인용하며 인간의 사고방식을 과거 지향적 사고와 미래 지향적 사고로 나눈다. 여기에 현재 지향적 사고를 더하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고방식은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세 가지 방향의 조화로운 균형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롱 뷰>*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단연 미래 지향적 사고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현재에만 몰두한 채 근시안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힘이다."
- 롱 뷰, p.47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을 세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리더는 반드시 미래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장기적인 시야를 갖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미래를 바꾸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영향력 있는 리더가 바뀌는 것이다. 리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단지 자기 앞길만이 아니라 함께할 사람들, 그리고 인류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한 다짐만으로는 충분하지도 않다. 구체적인 미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폴 크루그먼은 <파운데이션> 이 "사회과학의 수학적 모델을 통해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통해 경제학이 실제로 사회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학문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 했다. 살만 칸은 중학교 때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처음 읽고 그 정도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며 문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책 한 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변화 시킬 수 있다.


2. 미래가 구체적이고 선명해질수록 현재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롱 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는, 디자인 스튜디오 슈퍼플럭스의 실험이다. 아랍에미리트의 한 전시회에서 그들은 관람객에게 ‘미래에서 온 오염된 공기’를 단계별로 들이마시게 했다.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이후, 환경 보호를 위한 지출에 더 관대해졌다. 이 사례를 보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미래를 더 선명하게 체험할수록 현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막연히 “잘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는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10년 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오늘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퓨처 셀프>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3. 장기적 사고는 현재에 더 충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롱 뷰>의 저자 리처드 피셔는 이렇게 말한다.

장기적 사고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장기적 사고를 하려면 현재의 세상은 무시하고 과거 또는 미래를 생각하는 데 정신적 시간을 모두 소비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시간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현재 삶에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고 믿는다. 근시안적 사고를 포기하면 좀 더 현재를 중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무엇이 위험하고 해로운지, 오늘의 세상에서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도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롱 뷰>, p.387
KakaoTalk_20250510_125900060.jpg - <롱 뷰>, p.387


미래를 상상하고 대비하면 할수록 현재에 더 충실할 수 있다. 미래를 더 멀리 바라보는 사람일수록, 오늘 하루의 의미에 더 민감하다. 장기적 사고는 철학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인 변화의 출발점이다. 그런 점에서 <롱 뷰>는 장기적인 시야가 단지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아주 실용적인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운데이션> 과 <롱 뷰>를 비슷한 시기에 읽으며 미래를 생각하는 일은 자기중심적인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이 책들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의 질문에 닿게 되었다. "나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나를 더 책임감 있게 만들고, 더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가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미래는 단지 예측하는 대상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책임이다. <롱 뷰>가 전하는 이 메시지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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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서로 다른 세계관들이 연결되어 읽힌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다.『파운데이션』을 다 읽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영 셸든 시즌 5, 18화에서 셸든이 자신의 영웅 아이작 아시모프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슬퍼하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참고로 영쉘든의 이름은 파운데이션의 주인공의 해리 셀던(Hari Seldon)의 이름과 비슷한데,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비슷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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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롱 뷰>, 리처드 피셔

2. <파운데이션> 시리즈, 아이작 아시모프

3. <나는 AI와 공부한다>, 살만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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