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을 빼고 살고 싶다
바야흐로 FLEX의 시대이다. 페이스북이 SNS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10년 전쯤까지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SNS의 주도권이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오면서부터 자기 과시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점에는 자기 관리와 자존감 높이기를 위한 에세이들이 쫙 깔려있고 한 번만 살다 가는 인생이기에 아낌없이 즐기려는 사람이 즐비하다. 버는 만큼 쓸 줄 아는 것이 쿨한 것이고, 이따금 혹자들은 버는 이상을 쓴다. 단순히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기 PR을 나쁘게 생각지는 않는다. 정보의 홍수, 이제는 나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다만, 눈에 보이는 것들로 모든 걸 판단하고 무의식 중에 상대의 '급'을 판단 짓는 행위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현재가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에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 다들 적당히 몸을 아껴가며 먹는 와중 한 직원은 밑도 끝도 없이 - 마치 자신의 뱃속이 맥주통이라도 된다는 양 - 술을 퍼부었다. 우리는 술값이 밥값보다 많이 나오겠다며 장난스레 핀잔을 주었다. B 씨가 술값 다 내요.
그런데 정말 그 직원은 밥값의 반을 부담했다. 장난으로 그렇게 던진 말을 그대로 행할 거라곤 생각 못한 눈동자들이 갈 곳 잃고 떠돌고 있는 동안 그가 답했다.
"에이, 괜찮아요. 저 이 정도는 낼 수 있어요."
술에 거나하게 취해 벌게진 얼굴로 흔쾌히 웃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B 씨는 오히려, 고액 대출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좋은 여건도 아닌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곳에는 늘 구설수가 함께한다더니 동료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질문이 떠도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의 일을 보고,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의 내가 떠올라 입 안이 쌉싸름했던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 시절, 다른 친구들에 비해 깨나 진로 고민을 많이 했던 나는 졸업이 비교적 늦었다. 길고 긴 터널 같았던 시간의 끝에 지금이야 내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잘하고,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어 후회가 없지만 당시에는 그저 괴롭기만 했다.
졸업 준비와 취업 준비를 함께 하고 있던 당시에는,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도 교회를 가는 주말에도 화장부터 옷차림까지 힘을 빡 주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물으셨을까.
"쥐뿔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치장하고 나가?"
나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을수록 더, 있는 것처럼 보여야 돼. 그래야 어디 나가서 무시 안 당해.
비즈니스로 만나게 된 직원 C 씨가 있다. 이 C 씨는 친구가 많다. 좋은 대학을 나온 친구, 좋은 기업에 들어간 친구, 자수성가한 친구, 돈이 많은 친구 …. 그러한 친구들을 곁에 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듯 일 얘기가 끝나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친구 이야기를 한다. 이따금씩 묻고 싶을 때도 있었다.
'친구 말고 본인은 어떤 대학에 나와서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데요?'
성격이 그다지 좋은 편은 못 되지만 그럼에도 사회생활 물은 들었기에 나는 입을 꾹꾹 눌러 닫는다. 자기 자랑과 집안 자랑, 인맥 자랑으로만 이어져 나가는 이 대화가 기묘한 기류를 띌 때면 나는 생각하곤 했다. 대학 때까지는 소위 말하는 '또라이'가 과에 그래 봐야 한둘 있었는데, 사회생활이란 대학에서 날고 기었던 '또라이'들의 집합체인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물론, 즐기려고도 해 보았다. 해답은 똑같이 내 자랑을 늘어놓는 것. 내 금전과, 집안과, 식견으로 맞받아치면 대화가 곧잘 다시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지쳐버렸다.
나는 사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다.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기한 안에 처리를 하는 것이 맞다 생각해 업무적으로만 빠듯하게 일할 뿐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교육받았고,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삶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참 애매한 사람이다.
차 한잔을 마셔도, 식사 한 끼를 함께 해도 그날의 일상적인 대화나 시시콜콜 늘어놓고 싶을 따름이지 피곤하게 잔머리를 굴리며 나를 빛나게 해 줄 간판을 찾고 싶지는 않다. 취업 준비 시절 벨트 끈을 바짝 조이며 그렇게나 '있어 보이는 척' 했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힘을 빼고 있는 지금의 나를 보면, 그만큼 살만해져서 되지도 않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결국 결론은 같았다.
나는 힘을 빼고 살고 싶다.
과시하지 않고, 근거조차 확인해볼 수 없는 말들로 잘남 배틀하지 않고.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고 소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나 지나가듯 하며 사는 삶.
20대의 끝자락, 스물아홉의 초여름을 맞이해 이러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타자기 앞에 앉았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