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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 Sep 09. 2023

여름날의 태풍, 일기예보, 그리고 위로

'그 마음 알아. 나도 그렇거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카톡 하나와 무심한듯 턱 찍은 노을 사진 한 장. 골목 사이 비춰진 노을을 담겠다고 허공에 대고 셔터 버튼을 눌렀을 모습이 상상 되어 어쩐지 슬펐다. 눈물이 속절없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태풍에 휩쓸리고 있는 건 나 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여러가지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한 번에 막 닥쳐온 적. 처음엔 눈 앞에 있는 일부터 하나씩 헤쳐나가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해결했다. 버틸만 했다. 처음에는.



후폭풍은 정말 뜬금없을 정도로 나중에 온다.



알지 못했던 통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증 역시 하나의 고난일 뿐이라 생각하고 무시했다. 더 급한 다른 일들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정신이 넝마 조각만큼 너덜너덜해지게 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깊은 생각은 피하고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게 됐다. 보이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만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데, 내 안에 심각한 강도의 태풍이 출몰했다는 일기예보를 계속해서 송출해야만 마음이 놓이곤 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줄곧 늘어놓았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게 깊은 공감을 바라는 건 염치 없는 짓이란걸 알면서도.



누구도 원치 않는 일기예보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잦아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행복이 아닌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미안했다.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두 명이라는 T의 지론이 생각나서였을까. 빨리 이 태풍 속에서 사람들을 몰아내고 나 혼자 어떻게든 버티기로 했다. 내 힘듦은 다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들은 나의 슬픔을 모조리 무시해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많은 짐을 함께 들어달라고 하여 미안하다고 전했다. 진심으로 내 태풍 안에서 이 사람이 빠져나갔으면 했다. 이 괴로움을 아는 건 나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이를 악물었다. 혼자 이겨내리라, 단호히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혼자 온몸으로 태풍에 휩쓸릴 것을 생각하니 눈이 질끈 감겼다. 이런 것 하나 강인하게 이겨내지 못하는 내가 야속했다.



그 순간 노을 사진과 함께 온 '미안해 할 필요 없다. 그 마음 안다.' 라는 메시지는 지금까지 받은 어떤 위로보다도 강렬했다. 이 괴로움을 안다는 것 보다 똑같이 태풍에 휩쓸리고 있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날 들여다봐 준 그 시선에 감사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날의 위로는 나를 어떤 것으로도 만들지 않았다. 누군가를 탓하지도, 잘 될거라 예견하지도 않았다. '나'를 바라봐 주었고 그 뿐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이렇게 세세히 기록할 정도로.



그 덕분인지 비록 지금은 태풍에서 더 큰 쓰나미 정도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오히려 내 몸뚱이는 단단해진 느낌이다. 애써 잘 이겨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태풍이 불어오는 대로 꺾이지 않고 흔들거리다 보면, 그 때의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면 또 느끼는 바가 생기겠지.



여름날의 태풍이 참으로 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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