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어머니의 연대기'를 보고
이 글은 2015년 가을이 끝나갈 즈음 아산서원에서 '영화로 읽는 동아시아 문화' 수업에서 쓴 글이다. 해당 수업은 주로 일본 문화권의 영화를 함께 보고 그것에 대한 감상문을 A4 1페이지 분량으로 적어오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담당 교수님은 제출한 감상문 중에서 잘 쓰여진 1~2개를 골라서 다음 수업 전에 함께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쓴 글 중에서 선정된 글이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영화의 제목과 의미를 내 식으로 잘 해석했고, 영화의 이야기와 나 자신을 잘 비추어 진심으로 써본 글이었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6680
‘내 어머니의 연대기’.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 코사쿠 어머니의 삶 전반을 다룰 것 같이 들린다. 하지만 영화는 아버지가 위독하시고 어머니는 치매의 증조를 보일 때부터 시작한다. 왜 어머니의 연대기는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점점 병약해지기 시작할 때 시작하는가? 왜 자신의 어머니 삶 전반을 다루지 않았는가? 의문은 영화가 끝이 나서야 풀렸다. 어릴 적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를 원망했던 아들에게 치매 이전의 어머니는 무의미했다. 무의미했기 때문에, 아들의 삶 속에 의미 있는 존재로 또 연대기로 남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치매가 걸린 후, 어머니는 그동안 보이지 않은 행동과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한다.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내면의 원망을 점차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 간다. 그 결과 어머니의 삶은 아들에 의미가 생기고 하나의 연대기가 되었다.
물론 어머니에 대해 코사쿠가 품고 있었던 원망은 쉽게 풀린 건 아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뒤에도 그는 재정적으로 어머니를 지원할 뿐 어머니가 있는 고향집에도 잘 방문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나이 든 어머니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그는 딱 그 정도까지였다. 자신이 가진 원망은 원망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지 9년이 흘렀을 때 그는 어머니와 자신의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때 그는 어머니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혼자 남겨두었다는 사실과 어머니가 아들을 혼자 남겨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평생 가지며 아들의 원망을 참아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어머니가 자신을 그리워하며 아들이 적은 시를 평생 간직해오고 수만 번 되뇌었다는 점으로 증명된다. 이후 그의 원망은 누마즈의 바다를 찾아간 어머니를 만나면서 완전히 사라진다. 어머니는 기억 속의 아들을 만나러 누마즈의 바다로 왔고,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다 씻어내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누마즈의 바다로 왔다. 결국 ‘내 어머니의 연대기’는 아들이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는 것으로 변하는 기록이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유의미한 존재가 되어가는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사쿠의 삶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연대기는 이미 쓰이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어머니와 이별한 후 그리움에 시를 적어 내려갔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된 그는 어머니에 버려진 현실을 위로하며 자신이 꿈꾸는 어머니의 모습을 소설에서 구현했다. 또한, 그가 자식들을 과하게 보호하고 통제하는 모습은 그의 내면에 어릴 적 어머니의 부재가 큰 아픔으로 자리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가 평생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가슴 깊숙이 품고 살았다는 점도 어머니는 처음부터 그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코사쿠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어머니에 대한 연대기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끝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시계 소리가 크게 들린 것은 연대기를 멈출 시간이 왔다는 신호였을지 모른다. 원망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코사쿠가 쓴 연대기는 코사쿠 만의 특별한 연대기가 아니다. 모든 자식이 가진 어머니에 대한 연대기와 닮아있다. 자식은 코사쿠처럼 어머니가 나이가 많이 들어 병약해질 때까지 어머니의 연대기를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전까지는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머니가 베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가늠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어머니의 사랑을 가늠할 수 없어 어머니에 대한 연대기를 항상 늦게 쓰는 것이 자식들이 가진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자식은 어머니라는 존재로 인해 자신의 삶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또 어머니가 얼마나 삶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려 애써야 한다. 그래야 너무 늦지 않게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어머니에 대한 연대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글을 다시 꺼내어보며 인터넷에 조금 검색을 해보니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아야겠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819025
※ '내 어머니의 연대기(인생)' 영화 포스터 출처는 '다음 영화'(https://movie.daum.n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