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3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셨나요? 이제 날씨가 꽤 춥습니다. 집 근처 은행나무도 흠뻑 물드나 싶더니, 벌써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더라고요. 가을과 겨울 사이 그쯤에서 글자로나마 안부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내 모든 것』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질문을 공유해 봅니다. 이 책은 영화 에세이예요. 오정미 작가가 (익명의) 인터뷰어들과 나누었던 인생 영화에 관한 대화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죠. 다들 '인생 영화'라고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작을 말하고는 하지만, 사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같나요. 주인공들은 '이게 인생 영화라고?' 싶을 법한 작품들도 내놓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과 함께요.
저는 사실 인생 영화 한 편을 고르는 일에는 좀 실패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영화 몇 편을 적어보려고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꼭 이상과 연결되는 편입니다. 여러분은 꿈꾸는 이상형(理想型)이나 이상향(理想型)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좋은 어른'을 갈망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나쁜 어른을 만난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저는 왜 이렇게 좋은 어른을 꿈꾸고 있는 걸까요? 좋은 어른을 기다릴 나이는 지났지만 여전히 기다리고 있고, 이제는 또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참 좋아했던 건 필연적이었던 거죠.
숀이 윌에게 "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하는 장면은 다들 기억하시겠죠? 저도 볼 때마다 눈물을 훔치는 명장면인데요. 그럼에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친구 처키가 윌을 떠나보내는 장면입니다. 처키가 윌에게 건네는 대사를 너무나도 좋아해요.
Evey day I come by your house and I pick you up. We go out and have a few drinks and few laughs, and it's great. You know what the best part of day is? It's for about ten seconds. From when I pull up to the curb and when I get to your door. 'Cause I think maybe I'll get up there and I'll knock on the door and you won't be there. No "good-bye, " no "see ya later." No nothing. You just left. I don't know much, but I know that.
전 언제쯤 이 대사를 듣고도 태연하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일이 이토록 성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작품을 통해 배우고 또 배웁니다. 윌의 집이 비어 있는 걸 확인하고 씁쓸하게 웃던 처키의 모습, 친구들이 선물한 쉐보레 노바를 타고 서부로 향하던 윌의 모습이 평생 떠오를 것 같아요. (그래도 처키랑 윌이 언젠가 다시 만났다고 믿어요. 저는)
여기까지는 다들 인생 영화로 많이 말씀하시겠죠? 또 전 재밌는 게 좋아요. 오락 영화 좋아합니다. 함의 없이 깔끔하게 웃기고 감동적인 거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과 <나우 유 씨 미(Now You See Me)> 시리즈는 제가 아주 오랫동안 좋아한 영화예요. 전 한 번 본 영화는 다시 안 보는 편인데, 이건 몇 번이나 봤으니 말 다한 거죠. 이번에 <나우 유 씨미> 시즌3가 개봉한다고 해서 달려가서 봤습니다. 엄청 웃겨, 유쾌해, 근데 감동적이야. 이런 건 왜 이렇게 매력적인지요. 같은 결로 <좀비랜드> 시리즈도 재밌게 봤습니다. (여기도 제시 아이젠버그와 우디 해럴슨이 나오네요) 시즌3도 꼭 개봉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영화 한 편 정말 가볍게 봤었는데, 요즘에는 그 서사를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어서 주저하게 됩니다. 출근 전날에 울고 싶지도 않고요. (ㅎㅎ) 적당히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볼 줄 도 알아야 하는데, 왜 저는 적당히가 그렇게 힘들까요? 책도 영화도 한 번 읽으면 여운이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영상은 특히 더 그렇고요. 같은 이유로 드라마를 참 안보기도 해요. 드라마는 고난과 역경의 서사가 너무 기니까요. 늘 모든 것에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네요.
어쨌든, 독감이 유행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저는 또 너무 늦지 않게 안부를 전하러 오겠습니다. 마지막은 제가 겨울이 다가오면 꼭 듣는 노래 구절로 마무리할게요.
꽃잎이 번지면
그럼에도 새로운 봄이 오겠죠
한참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겨울에는 유독 마음이 더 힘들죠. 저도 계절을 참 많이 타서 유독 겨울이 힘겹게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유난히 춥고 시린 겨울에도 복수초는 쌓인 눈을 뚫고 자랍니다. 그러니 우리도 시간이 걸려도, 어쩌면 한참이 걸려도 꼭 행복해지기로 해요.
박은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