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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 Feb 14. 2024

슈프림 수난시대

스트릿 브랜드의 일인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슈프림 수난시대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이 있다. "Supreme is dead"라는 말이다. 옆에서 최근 추앙받는 영국 스트릿 패션 브랜드 팔라스(Palace)도 24ss 컬렉션을 공개함과 동시에 웹페이지에 덧붙인 말을 통해서 이 문장에 무게를 더했다. 팔라스가 웹페이지에 부착한 말은 "만약 슈프림이 팔라스보다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멍청이 거나 반스, 노스페이스와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이 말은 사실 슈프림을 비하한 것을 넘어서 슈프림 식구 전체를 비난한 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20년 슈프림을 인수한 미국의 패션 지주회사 VF코퍼레이션이 반스와 노스페이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의 내면에는 슈프림은 더 이상 진정한 스트릿 패션 브랜드가 아니며, 혹시나 슈프림 편을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슈프림과 한 배를 탄 일종의 협력자인 반스와 노스페이스의 구성원일 것이라는 의미가 기저해 있다.


 이렇듯 슈프림이 사람들 뿐만 아니라 스트릿 패션 브랜드의 이인자라고 불리던 팔라스에게도 비방에 가까운 말을 듣는 것을 보면, 현시대는 슈프림 수난시대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들과 슈프림의 경쟁사가 하는 말만 듣고 슈프림을 무덤에 안치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슈프림은 단순 패션 브랜드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슈프림이 더 이상 기존의 마니아층이 떠나버린 죽은 브랜드인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슈프림의 실정을 살펴보고, 앞으로 슈프림이 나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제대로 논해보고자 한다.



슈프림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슈프림의 실정을 알아보기에 앞서, 슈프림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이나마 높이고 가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래야 그저 하나의 의류 브랜드가 수난을 겪는 과정이 왜 구설수에 올랐는지, 슈프림이 왜 하나의 문화라고 불릴 수 있는지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슈프림의 시초는 스케이트 보딩 문화와 반문화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슈프림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며 스트릿 패션이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닌 주류문화로 떠오르는데 큰 이바지를 했다. 이에 더해  한정판 제품을 얻기 위해 매장 앞에서 장시간 줄을 서거나 잠을 자는 캠핑 문화를 촉발시기도 했다. 이는 반문화적 행보로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악동의 이미지로 소비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덕분이었다. 지금의 미스치프(mschf)와 약간의 결이 비슷한 행보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회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작업들을 이어나간다는 면모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프림은 과거에 한정했을 때, 현재 미스치프의 행보보다 훨씬 센세이셔널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비교하는 것 자체를 실례라 할 수도 있다. 슈프림은 당시 합법과 불법 사이의 철조망을 넘나드는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즉, 사회에 가져오는 파급 효과가 엄청났다.


 결과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보더라도 대다수의 스트릿 패션 브랜드들이 대중들의 머릿속에 자신들의 브랜드를 어떤 이미지로 각인시키고자 하는지가 과거 슈프림과 비슷하다. 이는 과거 슈프림의 행보가 현재 힙하다고 불릴 수 있는 행동들의 시초였기 때문에, 많은 스트릿 패션 브랜드들이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슈프림은 스트릿 패션 브랜드 사이에서 오랜 시간 오리지널이자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를 써왔던 슈프림

 그러나 여기서 슈프림의 업적에 대한 언급을 마무리하기엔 가슴 한편에 아쉬움이 남는다. 브랜드와 브랜드 간 협업을 진행하여 각각의 브랜드들이 부족했던 이미지를 상쇄하며 대중들에게 참신함을 선사하는 콜라보레이션 문화에도 슈프림이 매우 큰 촉진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슈프림과 루이비통의 콜라보 사건을 최적의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슈프림과 루이비통의 정식 콜라보레이션 제품. 출처: World's Best


 한때 슈프림이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문양을 스케이트 보드에 판매를 목적으로 무단 차용하여 루이비통에게 고소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슈프림의 박스로고부터가 바버라 크루거의 작품 모방에서 시작된 것이었기에 어찌 보면 슈프림에게 있어서는 남의 작품을 Control C + Control V 하는 것이 그들의 아이덴티티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아이덴티티에 부합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선보였기 때문일까. 슈프림의 주요 고객들이었던 스케이트 보딩과 반문화 향유자들은 슈프림에 대한 충성도가 더욱 높아졌다. 따라서 슈프림은 그들에게  꾸준히 선택받은 결과 패션 분야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2015/2016 시즌까지 나이 든 명품 브랜드로 취급받던 루이비통에게 있어 골칫거리로 취급받던 슈프림은 이제 더 이상 적이 아닌 최고의 동료로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과거엔 무례한 브랜드로 여기던 슈프림에게 루이비통이 과감히 먼저 콜라보 제안을 요청했다.


 슈프림은 이 콜라보에 응했고, 결국 2017년에 발매가가 슈프림 가격이 아닌 루이비통 가격으로 책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가의 최대 30배까지 리셀(Resell) 가격이 치솟으며 엄청난 열기 속에 콜라보를 마무리했다. 끝맺음은 좋았지만, 초기에 얼마나 열기가 뜨거웠는지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며칠간 '캠핑'을 하는 바람에 지역에서 이에 반대하여 콜라보가 취소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결정은 서로가 이득을 볼 수 있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루이비통은 젊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슈프림은 럭셔리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상상조차 못 할 선택지였다. 아무리 브랜드 이미지가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해도 그 누가 럭셔리 브랜드를 길거리 문화와 반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날것의 브랜드와 콜라보할 생각을 하겠는가.


 해당 콜라보 전에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스트릿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사례가 없어 더욱 그렇다. 패션 분야의 콜라보 사례로 한정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사례는 여전히 패션사에 있어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며, 개인적으로 어떤 분야의 협업을 통틀어서도 최고의 콜라보라고 생각한다. 너무 쇼킹했다.



슈프림의 실정

 이렇듯 존재 자체가 하나의 문화인 슈프림의 실정에도 근래 이변이 일어났다. 그 이변은 건조하게 보면 브랜드의 매출과 순이익 감소, 브랜드 가치 손상,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증가. 이렇게 세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실 대부분의 회사들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영업이익이 줄거나 늘고, 브랜드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일상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프림의 경우는 어딘가 독특하다. 따라서 한번 자세히 알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각각의 이변들에 대한 핵심 원인을 고민해 보기 전에 슈프림의 재무적 실적과 브랜드 가치 손상의 수준을 먼저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슈프림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슈프림을 인수한 모회사인 VF 코퍼페이션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으로 슈프림의 매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24년 자료는 아직 없다) VF 코퍼레이션은 슈프림의 매출액을 8000억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7000억 원 수준에 머무르는 좋지 못한 성과를 냈다.


 이는 단순히 모회사의 기대치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낮은 성과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전년 동기 매출액과 비교하더라도 500억 수준의 매출 감소가 발생했다. 순이익 또한 하락세를 보였다. 작년 동기 기준으로 1100억 수준의 순이익을 창출하던 슈프림이 870억 수준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즉, 매출액과 순이익 모두 15% p 내외의 하락폭을 보였다.


 재무적으로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실제로 심히 우려할 만큼의 하락을 기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VF 코퍼레이션이 슈프림을 인수한 후, 이례적으로 지속되는 슈프림의 매출과 순이익 하락세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정황과 달리, VF 코퍼레이션은 슈프림을 인수할 당시 5000억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던 슈프림을 1조 1천억 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는 브랜드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포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 이후 슈프림의 재무 성적을 보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속되는 하락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23년 8월 기준으로 디올의 캡슐 컬렉션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는 슈프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트레메인 에모리도 슈프림을 떠났다.



슈프림의 위기

 악재의 연속이 잇따랐다. 슈프림의 수요 또한 매우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브랜드의 수요 감소로 인한 브랜드 가치 하락세를 알아보기란 힘들다. 직접적으로 발매 수량과 판매량을 알아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출액과 순이익으로 짐작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하지만 슈프림 같은 브랜드의 경우에는 수요의 감소를 통한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간접적으로 손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슈프림 대표 상품의 리셀 가격을 확인하는 것이다.


 슈프림은 태생부터 수요에 비해 공급을 제한해 온 브랜드다. 따라서 일부 소비자들을 제외하고는 정가보다 무조건 프리미엄 가격이 붙은, 리셀 가격에 구매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왔다. 따라서 발매되는 대다수의 상품들이 리셀가에 거래되므로 모든 상품의 수요 추이를 리셀가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슈프림은 대표상품이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똑같은 디자인으로 발매되어 왔다. 정가 또한 옷감의 물가상승률 정도만 반영한다. 그 외에 모자 후면에 아주 작게 새겨진 연도정도만 다르다. 따라서 슈프림의 대표상품인 박스로고 후드티의 리셀 가격 추이를 확인하는 것은 슈프림의 수요를 통한 고객들의 인식 변화를 알아볼 수 있는 최고의 지표라고 본다.


 

해당 자료는 글로벌 리셀 플랫폼 Stock X 에서 거래되는 슈프림 16FW 박스로고 후드티의 거래 가격 추이다.

 

 21만 원 수준의 가격에 발매한 후드티의 리셀 가격이라고는 좀처럼 믿기 힘든 가격에 거래되었을 만큼 슈프림의 브랜드 가치는 대단했다. 2020년 7월 고점 기준으로 볼 때, 주식으로 따지면 1000%의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현시점의 거래 가격을 보면 30만 원선을 웃도는 모습을 보인다. 16FW에 발매한 상품이 아닌 23FW에 발매한 후드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수요 감소로 인한 브랜드 가치 손상은 확실해 보인다.


 이제 확실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Supreme is dead"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대표상품은 다행히도 리셀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지만, 과거 슈프림과 다르게 비주류 상품들은 꽤 오랜 시간 품절이 되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며 남겨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의 깊게 주목할 포인트가 있다. 슈프림을 VF 코퍼레이션이 인수했을 시점이 2020년 4분기라는 것이다. 차트에서 표시한 고점이 20년도 3분기이고, 그 이전까지 대표상품의 리셀 가격이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따라서 이는 VF 코퍼레이션이 슈프림을 인수한 것이 슈프림에게 재무 성적과 더불어 또 다른 악영향을 줬다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슈프림은 갑작스럽게 브랜드의 가치가 하락하는 국면을 맞이했다. 앞선 지표들을 종합하면 슈프림 브랜드 가치 하락의 주범은 VF 코퍼레이션인 것처럼 보인다.



VF 코퍼레이션이 뭔 짓을 했길래?

 그렇다면  VF 코퍼레이션이 슈프림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브랜드 가치와 매출이 이토록 하락하였는지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브랜드 가치 손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존 슈프림의 방향성과 상충되는 브랜드의 전개 방식 도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VF 코퍼레이션이 슈프림을 인수할 당시, 슈프림 마니아들은 "RIP"라고 외쳤다. VF 코퍼레이션은 놀란 기색을 감추며 우선 그들을 진정시켰다. 슈프림의 경영권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말이다. 하지만 슈프림을 무려 2조 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인수함과 동시에 VF 코퍼레이션이 밝혔던 계획을 보면,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아주 슈프림 시그니처 컬러다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고 짐작된다.


 VF코퍼레이션은 슈프림을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면서 수익 전망치를 공개한 적이 있다. 앞서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 바로 그 수익 전망치 중 일부다. 그러나 사실 포부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VF 코퍼레이션이 추가적으로 언급했던 요소들이 있다. 바로 슈프림의 디지털 시장 확대, 해외시장 확대, 신규 매장 확대, 매장 유지다. 경영권에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회사가 맞는가. 앞 뒤가 너무나도 다르다. 슈프림 마니아들을 진정시켰던 말이 진심이었을까 잠깐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단순 말뿐만 아니라 실행을 유무를 보더라도 결과적으로 슈프림은 해외시장을 확대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VF 코퍼레이션이 밝힌 디지털 시장 확대, 해외시장 확대, 신규 매장 확대는 대다수의 브랜드들이 이행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브랜드의 고객들은 그러한 행보에 대해 "RIP"라고 외칠 만큼 민감하지 않다. 오히려 주주라면 더 기뻐할 노릇이다. 하지만 슈프림의 경우는 유별나다. 모회사가 나서서 해외시장으로 확대하고 매출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무서워 기존 고객들에게 속내를 감춰야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토록 모회사가 슈프림에 조심스러운 이유는 슈프림의 아이덴티티가 유별나기 때문이다. 슈프림의 마니아층은 앞서 밝힌 대로 스케이트보딩 문화와 반문화 향유자들이다. 사실상 슈프림이 일종의 문화처럼 소비되면서 힙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슈프림 마니아들 덕분인 것이다.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는 여러 가지 문화와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성장했다.


 슈프림이 여러 가지 문화와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슈프림 마니아층의 역할은 필연적이었다. 일차적으로 슈프림과 그들의 서포터들 간의 상호작용을 지켜보고, 다른 분야에 있는 유명인들 또한 슈프림을 소비하며 뿌리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프림 마니아들에겐 슈프림의 정체성이 곧 자신들의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슈프림이 해외시장으로의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기존 정체성이 희석이 되거나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VF 코퍼레이션에게 인수당하기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슈프림 매장은 많지 않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총 4개국에 10개의 매장이 있었다. 지금도 매장 개수의 차이는 사실 하나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수 후, 세계에 포진해 있는 슈프림 매장이 많다는 것처럼 말 한 이유가 있다. 슈프림의 매장이 전 세계 4개국이 아닌 5개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확장 소식은 슈프림의 앞으로의 경영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2023년 8월 시장 확대를 점찍으며 가리킨 매장의 위치가 다름 아닌 서울이었다. 우리나라로 매장을 확대한 것이다. 당연히 구매 수준이 뒷받침되고 슈프림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으니 확대하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로 매장을 확대한 것 자체가 슈프림의 아이덴티티와 상충된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일본은 모두 스케이트 보딩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동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기존의 국가에 끼워져 있어서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도쿄 올림픽에서 스케이트 보딩 종목을 세계 최초로 추가했다. 스케이트 보딩에 진심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로 시장을 확장한 것은 기존의 슈프림 마니아들의 아이덴티티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기존의 마니아층이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기존의 마니아층이 떠난다면 슈프림이 더 이상 힙한 브랜드가 되기 힘들며, 그에 따라 브랜드 가치 손상이 올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스트릿 패션 브랜드 팔라스가 외친 대로 슈프림은 죽은 브랜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매출 확대가 목표였다면, 해외 시장을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온라인 매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옳았다고 본다. 정체성도 유지하면서 추가적인 수요 창출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브랜드 가치 손상을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VF 코퍼레이션의 추가적인 실수

 VF 코퍼레이션이 슈프림을 인수하면서 매출 확대를 밝힌 것 또한 브랜드 가치 손상을 야기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아까 리셀가 추이를 살펴보기 바로 전에 슈프림은 태초부터 공급을 조절하는 브랜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추가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슈프림은 온라인 샵의 경우에도 슈프림이 정식으로 진출한 국가 내의 사람들만 구매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슈프림의 경우 수요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슈프림을 갈구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VPN과 배송대행지를 쓰며 슈프림을 구매한다. 따라서 슈프림은 재고가 모자라면 모자랐지, 차고 넘친 적은 여태껏 없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발생한 매출은 슈프림이 공급한 대부분의 상품이 판매됨으로 인해 발생한 매출이다. 그렇다면 VF 코퍼레이션이 밝힌 1조 1천억까지의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서 슈프림은 지금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물량을 찍어내야 한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슈프림이 가치를 유지하는 데 필연적 요소인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은 물거품이 된다. 슈프림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VF 코퍼레이션이 밝힌 향후 계획에 슈프림 마니아들이 "RIP"라고 외쳤던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슈프림의 대표상품인 박스로고의 리셀 가격이 엄청나게 떨어진 것도 이러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할 때, VF 코퍼레이션의 인수 자체가 실패적이라고 생각한다. VF 코퍼레이션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확인하면 슈프림과 완전히 이미지가 다른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다. 안을 들여다보면 노스페이스, 반스, 잔스포츠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브랜드들은 슈프림과 달리 공급을 제한하지 않는다. 수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팔고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VF 코퍼레이션의 계획을 보면 기존에 운영하던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처럼 슈프림을 운영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슈프림 자체의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고 했지만, 가뜩이나 근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상장기업인 VF 코퍼레이션에게 실적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과연 슈프림에게 자유롭게 경영권을 보장해 주었을지는 의문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결과적으로 경영권을 완전히 보장하지 않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제는 변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공고히 다질 시기인 것이다. 아이덴티티를 단단히 함과 동시에, 기존 슈프림의 방식대로 수요를 더 늘려서 공급을 그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수요를 먼저 늘릴 생각을 하지 않고 공급부터 늘릴 생각을 하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VF 코퍼레이션이 슈프림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슈프림을 비상장 기업처럼 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의 슈프림은 예전만큼의 창의적인 프린팅과 디자인,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콜라보, 추가적으로 그들의 아이덴티티에 부재를 맞이했다. 따라서 상장기업스러운 안정성 추구보다는 리스크 감내가 필요한 시기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이번에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겠다고 밝힌 김에 슈프림 또한 시장에 내놓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싶다.



슈프림의 도약 가능성

 슈프림이 스트릿 패션 브랜드 사이에서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슈프림은 다시 한 발자국 내딛고 도약할 힘이 있는 브랜드다. 스트릿 패션 브랜드 사이에서 매출액과 영업이익 그리고 순이익 규모를 따져보면 슈프림을 이길만한 강자는 아직 없다. 아직 한참 멀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슈프림이 괜히 2조라는 거금에 판매된 것이 아니다. 브랜드 정체성과 선호도만 놓고 보면 최근 스투시와 팔라스가 슈프림을 넘었다고 봐도 무방하긴 하지만, 사실 스투시와 슈프림의 매출액 차이는 10배에 달한다.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는 자금이 밑바탕 되기 때문에 방향성만 잘 설정하면 예전의 슈프림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추락할 경우 슈프림이 역사책 한 페이지에 마침표를 찍고 커버를 덮는 것 또한 시간문제라고 본다.


 현재로서는 어느 브랜드가 앞서 있는지는 사람마다 잡는 기준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슈프림이 스트릿 패션 브랜드의 왕이라는 말에 이견이 없는 날이 다시 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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