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옷을 입은 유쾌한 장난,
<동물의 사육제>

Saint-Saëns The Carnival of the Animals

by 에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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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The Carnival of the Animals)>는 1886년에 작곡된 실내악 모음곡으로, 총 14개의 짧은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상스는 이 작품에 Grande fantaisie zoologique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이는 ‘동물학적 대환상곡’이라는 뜻으로 작품 전체가 하나의 유쾌한 음악적 놀이이자 재치 있는 풍자임을 암시합니다.


이 곡은 생상스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가까운 음악가 친구들과의 사적인 연주회를 위해 작곡한 작품입니다. 평소 고전적 형식과 엄격한 작법을 중시하던 생상스는 이 작품에서만큼은 의도적으로 유머와 패러디를 마음껏 펼쳐 보입니다. 각 악장은 사자, 거북, 코끼리, 백조 등 특정 동물이나 인물을 주제로 삼아 그 특징을 음악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며 동시대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한 은근한 풍자까지 담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생상스는 이 작품이 자신의 ‘진지한 작곡가’로서의 이미지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해 <백조>를 제외한 전곡의 생전 연주와 출판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전곡이 공개되자 이 작품은 곧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연주되는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jOtAuS1d3CI?si=ziKaKZcOTNOpgR0Y

Hyuk Lee & Hy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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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troduction et Marche royale du lion 서주와 사자의 행진
장엄한 화음과 당당한 리듬으로 동물의 왕 사자를 묘사합니다.


2. Poules et Coqs 암탉과 수탉

짧고 날카로운 음형으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닭들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3. Hémiones 야생 당나귀
매우 빠른 스케일이 이어지며 쉼 없이 달리는 야생 당나귀의 질주를 그립니다.


4. Tortues 거북
오펜바흐의 <캉캉> 선율을 극도로 느리게 변형하여 느릿느릿한 거북의 움직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합니다.


5. L’Éléphant 코끼리
콘트라베이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무겁고 둔중하면서도 어딘가 익살스러운 코끼리를 묘사합니다.


6. Kangourous 캥거루
피아노의 갑작스러운 도약과 정지가 캥거루의 깡충깡충 뛰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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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Aquarium 수족관
몽환적인 화성과 반짝이는 음색이 물속 세계의 신비로움을 그려냅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악장 중 하나입니다.


8. Personnages à longues oreilles 긴 귀를 가진 인물들
당나귀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짧은 악장으로 당시 비평가들을 풍자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9. Le Coucou au fond des bois 숲 속 깊은 곳의 뻐꾸기

한 대의 피아노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화음으로 숲의 고요를 만들고 다른 한 대의 피아노는 일정한 두 음을 반복하며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묘사합니다.


10. Volière 새장

빠르고 가벼운 음형이 위아래로 흩어지며 두 피아노가 날아다니는 새들을 그려냅니다.


11. Pianistes 피아니스트들
서툰 연습곡처럼 들리는 음형으로 ‘연습 중인 피아니스트’를 풍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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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Fossiles 화석
과거의 음악과 동요 선율을 인용하며 “이미 낡은 것들”을 유쾌하게 나열합니다.


13. Le Cygne 백조
첼로 독주로 유명한 이 악장은 2 piano 버전에서는 한 피아노가 노래하듯 선율을 이끌고 다른 피아노가 잔잔히 흐름을 받쳐줍니다. 우아하고 서정적인 악장으로 이 곡만은 생상스 생전에 첼로와 피아노 독주곡으로 출판되었습니다.


14. Final 피날레
앞서 등장했던 동물들이 다시 한번 등장하며 유쾌하고 화려하게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오늘날 <동물의 사육제>는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음악으로, 또 어른에게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재치 넘치는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생상스가 생전에 염려했던 것과 달리, 이 곡은 그의 뛰어난 작곡 기교와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이 얼마나 폭넓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고전적인 정교함과 장난기 어린 유머가 한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참으로 매력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https://youtu.be/GWANMzwff3c?si=0qEKOFP0DMATYADe

피아노 두대와 실내악 앙상블을 위한 버전도 들어보시지요 ^^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