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코체레 하마, 라 아마다
어라운지는 선유도에 있는 창고형 커피 쇼핑몰이다. 집과 거리가 멀어서 일 년에 한번 갈까 말까 한 곳이다. 그곳에 잠들어 있는 하리오 핸드드립 머신을 깨운지 벌써 세 번째 겨울이 지나간다. 그동안 참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원두를 직접 갈아보려고 구입한 수동 그라인더는 손 아픈 기억만 남았지만, 원두를 오랜 시간 보관할 수 있는 캐니스터는 요긴하게 쓰고 있다. 문명의 혜택을 느낄 수 있는 전동 그라인더와 전기 드립포트는 가장 최근에 찾아온 친구들이다.
빈-브라더스 커피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커피 정기구독은 바리스타분들이 번갈아가면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매달 보내주는 패키지 상품이다. 항상 원두가 부족해서 600g을 신청했는데, 하루에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예전에는 원두를 오래 보관하려면 냉장고에 넣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기왕이면 홀빈 상태가 오래가고, 공기와의 접촉이 최대한 없는, 적당한 온도에 보관하는 것이 더 오래간다. 분쇄한 원두를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커피를 내렸을 때, 그 황홀한 냉장고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원두가 주변 냄새와 습기를 빨아들인다는 것을 하얗게 잊은 것이다. 원두는 로스팅했으면, 분쇄했으면, 최대한 빨리 내려 먹는 것이 좋다.
내가 처음 접한 에티오피아 원두는 아리차다. 원두에서 시트러스 향이 진짜 나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코 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향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동네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곳을 찾아가 한 잔씩 마시면서 어깨너머로 이것저것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본에 충실하면서, 고유의 맛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커피를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는 바리스타님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런 분들의 얼굴은 기쁘고 싱글벙글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실험한 어떤 사실을 알려줄 때의 그 모습을 볼 때면 실험실의 과학자가 따로 없다.
3월, James 바리스타님의 원두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코체레 하마. 원두를 캐니스터에 옮기는 중에도 향이 집안을 가득 메운다. 처음에는 원두 입자를 너무 크게 갈아서 신맛이 강한가 했는데, 분쇄도를 조절해도 큰 차이는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갈 때는 신맛이 점점 줄어들었다. 한 번은 커피 찌꺼기를 방에 메달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방 문을 여는 순간, "어우 단내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것은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100% 내추럴 가공 방식의 원두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원두의 신선도와 로스팅 실력에 따라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원두의 특성을 제대로 살렸다고 생각한다.
꽃내음의 향미, 혀 끝을 맴도는 잔향, 부드러운 바디감, 레몬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깔끔한 뒷 맛과 심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섬세한 마우스 필을 느낄 수 있다. 내추럴 커피 답게 향이 더 좋은 커피이다.
코스타리카 원두는 회사 근처 커피 코트에서 '따라주(Tarrazu)'로 처음 접했다. 신맛이, 다른 원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서 벨런스가 상당히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신맛이 당기지 않을 때' 고른 것이다. J.B 바리스타님의 코스타리카 원두는 '라 아마다(La Amada)'다. 주변 지인들은 신맛이 나는 커피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라 아마다는 향이 이전 원두(코체레 하마) 보다 덜한데, 맛이 정말 좋다 라는 얘기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커피는 단맛, 신맛, 쓴맛, 세 가지의 벨런스가 좋으면 맛있다. 그리고 잘 내린 커피 > 잘 로스팅한 원두 > 신선한 원두 순으로 맛이 좋은데, 나는 아직 잘 내리지 못하니 분명 로스팅이 잘 되었고, 신선한 원두일 것으로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