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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쥐 Jan 09. 2022

이탈리아를 떠나다 (1)

미운정도 무섭다

가끔씩 브런치 앱에서 알림이 왔다.

작가님의 글을 본 지 **일이 지났어요... 그 날짜가 300일이 넘어갔다는 알림을 며칠 전 기어코 받고야 말았다.

머릿속에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상과 깨달음들이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꼬리구름처럼 잠시 자국을 남겼다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날들이 계속됐다. 바쁜 일상에 치여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하니 내가 살아낸 시간들이 공중으로 분해되는 기분이었다. 잘 쓰지도 않지만 어쩌다 들쳐본 다이어리에 '드디어 오늘 둘째 기저귀에서 해방', '오늘 첫째가 $%^&$@#% 라고 말해주었다' 하는 짧막한 글을 보면, 아 기록해야해, 뭐라도 쓰자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나녔다. 하지만 그런 결심도 잠시일뿐, 산적해있는 납기와 집안일, 애들 뒤치닥거리까지 하다보면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하며 정신줄을 자꾸만 놓는 날이 이어졌다.



2021년 12월 18일, 우리 가족은 5년 동안 살며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 그중에서도 미운정의 비중이 훨씬 크긴 했지만- 이탈리아를 떠났다.

이탈리아에 정착하자마자 그곳을 떠나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던, 내 목표가 드디어, 5년 간의 기다림 끝에 이뤄진 셈이다. 

이탈리아가 왜 그렇게 싫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왠지 이탈리아에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든다. 돌이켜보면 내 문제는 처음부터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평생 살고 싶어서 이민을 떠난 게 아니었던 데 있었다. 나와 남편은 처음부터 이탈리아는 그저 거쳐가는 나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몇년 경력을 쌓고 그 경력을 발판삼아 더 좋은 곳으로, 우리에게 더 편한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게다 전에도 썼지만, 이방인에게 폐쇄적인 동네 분위기도 이탈리아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나도 안다. 만약 내가 적극적으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면, 5년 동안의 이탈리아 생활은 내가 실제로 겪은 것처럼 우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5년 전, 이탈리아에서는 평생 살지 않을 테니 대충 영어로 때우며 살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고, 그 잘못된 결정 덕분에 이탈리아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5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당장 2년 후에 이탈리아를 떠난다고 해도 이탈리아어를 배우려 노력할 것이다. 뭐, 뒤늦은 후회지만..적어도 우리 애들에게는 엄마의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이야기해줄 수는 있겠지.


어쨌든 이탈리아 탈출은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의 시작으로 더더욱 늦어졌다.

길면 3년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생활은 4년, 5년까지 이어졌고 도무지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3년이면 여기서 나갈 텐데 라는 생각에서 아이들을 바이링궐 사립에 보낸 것도 가계에 점점 부담이 되었다.

아이들이 계속 커가면서 한 명만 내도 되었던 사립학교 학비는 어느새 2배로 늘어나있었고, 그건 왠만한 이탈리아 사람들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학비를 부담하느라 나는 더 열심히 일을 해야했다. 스트레스 레벨은 코로나 발병 직전에 거의 정점을 찍었다. 이대로 여기서 살다간 아무 희망이 없단 절망에 나는 하루가 머다하고 남편을 들들 볶았고 우리는 (원래도 많이 싸우지만) 더 많이 부딪혔다.


지나고 나니 왜 그렇게까지 남편을 괴롭혔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땐 나도 궁지에 몰려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절망 가운데 터진 코로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게는 숨구멍을 틔워주었다.

우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코로나 발병 초반,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역병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뭣이 중한디'라는 질문을 자꾸만 하게 된 것도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내가 가치있게 생각했던 그것들이 과연 실제로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고로 나를 괴롭혔던 일들도 그 정도로 괴로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탈리아에서 살아 좋은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맛있고 저렴한 음식과 식재료, 와인, 단돈 1.5유로면 즐길 수 있는 너무나 훌륭한 커피, 커피!! 차를 타고 2시간만 달려가면 나오는 알프스와 아름다운 지중해 바닷가, 아프면 병가를 내고 10일까지 유급휴가를 누릴 수 있는 사회주의식 체계, 거의 두 달에 육박하는 휴가 기간....5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이제 어딜 가면 무엇을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지 알게 되며 생활은 점점 편해져만 갔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 와서 3년째에 알게 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세금 환급 정책을 알게되며 내 스트레스 레벨은 쑤욱 내려갔다. 이탈리아 직장인은 임금에 따라 약43%의 소득세를 내는데,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소득세를 그 절반만 받고 나머지 절반은 되돌려주는 정책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된 것이다.

이미 3년 동안 소득세를 43%씩 내왔으니, 3년치의 세금 절반을 한 번에 돌려받는 것만으로도 꽤 큰 몫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강제로 들었던적금을 탄 기분이엇다. 매달 아슬아슬한 통장 잔액만 보다가 몫돈을 통장에 넣어두니, 숨통이 트였다.



여튼 그래서 이탈리아, 나쁘지 않은데? 여기서 확 눌러앉아? 라고 생각하던 찰나, 2년 전 가장 괴로웠던 무렵 남편을 들들 볶아 미국에 지원했던 학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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