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종교 영화가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두 교황’

by 비해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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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전통적이었던 교황이 왜 가장 전통적이지 않은 선택을 했을까? 영화‘두 교황’은 이 한 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는 실제로 세 번의 만남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그들의 대화는 공개된 적 없지만, 서로 다른 신앙관을 가진 두 인물이 각자의 은퇴를 고민하던 순간에 만나 나눈 대화는 어땠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영화의 소개를 읽어봐도 평소 기독교에 별 다른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이 쉽게 시청을 결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인물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단순히 기독교의 이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며 결과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보다 한 발 더 본질로 다가간다면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포용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교황 라칭거 베네딕토 16세는 카톨릭의 전통을 수호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추앙받으며 선출되었다. 그랬던 그가 재위 7년만에 스스로 사임을 선언한다. 생전 사임은 2000년 카톨릭 역사에서 598년동안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공식적인 사임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지만 그 시기의 카톨릭 교회는 사제들의 성추문 사건, 교회 내부의 비리 폭로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그의 사임에 이러한 배경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뒤 이어 선출된 베르고골리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인물이다. 아르헨티나의 주교인 그는 동성애, 낙태, 피임, 여성과 기혼 남성의 사제 서품 등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기독교 전통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한다고 말한다.


이토록 반대 성향의 두 인물이 교황의 여름별장에서 나누는 대화는 마냥 평화롭지 않았다. 세상이 변화함과 동시에 교회는 무얼 지키고 무얼 버려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시며 우리들과 어떻게 함께 하시는가. 동성애자들의 결혼, 이혼한 사람들의 사제 서품 문제처럼 지금 카톨릭 교회가 대응해야 하는 가장 민감한 문제들을 두고 이들은 대화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대화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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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타협한 거죠”

“타협이 아닙니다. 전 변했어요. 서로 다른 겁니다. ”

“변화는 타협이요. ”

“주님께서 주신 삶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에서도요. 심지어 주님도요.”

“주님은 변하지 않아요”

“주님도 변합니다. 우리 쪽으로 오세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주님이 항상 움직인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요?”

“이동하면서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혼란 속에서 보수는 교회가 더욱 두 다리를 깊이 바닥에 박자고 말하고 진보는 함께 이동하자고 말한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 교회는 이혼, 피임, 동성애 등에 대해 교회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느라 지난 세월을 다 보냈어요. 지구는 파괴되고 불평등이 암처럼 커져 가는데

교회에서는 미사를 라틴어로 하는게 옳은지 여자 아이들을 복사로 허용할 것인지를 정했어요. 우리 주위로 담을 쌓았어요. 진짜 위험은 늘 내부에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었다고요.

…”

“ … 지금까지 한 말 중 어느 것도 동의할 수 없소. ”


그들의 입장 차이는 쉽게 좁혀질 수 없는 문제이다. 살아온 삶과 그 속에서 자신이 내렸왔던 결정들은 현재의 라칭거와 베르고골리오를 만들었다. 그들은 카톨릭의 누구보다 카톨릭의 미래와 신자들을 위한 선택을 스스로 해온 사람들이다. 라칭거는 교리를 더욱 엄격히 하는 방식으로, 베르고골리오는 높은 벽을 허물고 가난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때문에 상대가 아닌 자신이 늘 옳은 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과오를 마주하고 이걸 바로잡을 힘이 내게 없다고 판단했을 때 상대에게 지혜를 구하는 모습. 아마 가장 현명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일 것이다.


라칭거와 베르고골리오가 교황이라는 직분을 넘어 진정한 신뢰는 서로의 인간적인 모습을 알아가면서이다. 저녁 식사후 라칭거의 취미가 피아노를 치는 것과 셰퍼드가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 드라마를 보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베르고골리오가 탱고를 즐겨 추고 축구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서로가 결국 진심이 통하는 인간임을 느낀다.


그 클라이맥스는 서로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다. 각자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 때의 사건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들은 숨김없이 고백한다.


“이런 말이 있어요. 주님은 항상 세상에 새로운 교황을 보내어 이전 교황의 잘못을 시정하신다.

어떻게 내 잘못을 바로잡는지 보고 싶소.

내 의도와 동기는 순수하오.

당신이 선택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선 이 결정을 할 수 없소.

교회는 변화가 필요하고 당신이 그 변화일 수 있소 ”


교회를 지키기 위해 라칭거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베르고골리오는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라칭거는 그것을 인정했고 교회에 베르고골리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대되는 이념은 서로의 공존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실천한 예수도의 정신은 바로 ‘포용’이었다. 포용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포용은 정체되어 있는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두교황’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단순히 기독교 정신만을 이야기하는 종교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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