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박경필
29.9세, 곧 서른이 된다. 나의 지난 30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밑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삶이었다. 10대 때 '경제구조'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가득했다. 20대 때 '교육제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다.
'경제'와 '교육'이 두 단어가 지난 30년 동안 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생각했다.
나는 항공기 시스템 엔지니어다. 지난 13년간 끈질 지게 붙잡고 쌓아 올린 전문성 덕으로 삶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은 안락하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이 행복하고 퇴근 후의 삶이 만족스럽다. 점점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문제의식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20대 청춘의 마지막 글. 나에게 조금의 온기가 남아있을 때 남겨두려고 한다.
서른이 되는 90년생은 참으로 불쌍한 세대이다. 어른들은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IMF가 터졌다. 대학교 합격의 기쁨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다. 구직활동을 하자 청년 실업률이 최악으로 치솟았다. 피폐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주입식 교육과 무한경쟁이 우리의 지난 30년이다.
나는 어른들이 미웠다. 분명 경제는 어른들이 망쳐놓았는데 우리가 너무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IMF가 우리 집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었다. 나의 첫 알바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단지 붙이기였다. 100장을 붙이면 천 원을 벌었다.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에 끝나면 친구들은 PC방으로 학원으로 흩어졌다. 나는 교복값과 생활비를 벌려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쏘았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동상에 걸려도 자정까지 일하고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서 퇴근했다. 그때 내 시급은 3천 원이었다. 주유소 부스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의 정석을 풀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악착같이 공부하고 일했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내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농장으로 공장으로 5만 원에 팔려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공부를 했다. 2008년 6월 모의고사가 끝났다. 수능까지는 약 150일이 남았고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경제가 무너졌다. 나는 기숙사비를 3개월치가 밀렸고 50만 원을 구해야 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도망치고 밤에 일하기 시작했다. 딱 한 달 동안 200만 원을 벌어 수능 때까지 버틴다. 이것이 내 전략이었다. 하루 2시간을 자면서 공부하고 일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깐 온 몸의 구멍에서 피가 나왔다. 수시 원서를 낼 돈조차 없었다. 내신 1등급을 유지했지만 단 한 곳에도 쓰지 못했다. 억울했다. 다행히 수능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눈물이 나왔다. 1시간 동안 울었다. 나도 이제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대학에 들어왔다. 첫 학기가 끝나고 실망을 했다. 교수님은 너무나 오래된 지식을 가르쳐주셨다. 친구들의 꿈은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 셋 중 하나였다. 내가 생각한 대학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거나, 아직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에 온 이유, 내 꿈을 말하면 민망했다. 그리고 대부분 비웃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악인 것은 감당하기 힘든 등록금과 생활비였다.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다. 웨이터, 수학강사, 과학보조교사, 콩나물 장사, 타일 사업, 상하차, 시행사 사무보조, 식당 주방보조, 프레젠테이션 프리랜서... 당연히 학점은 제대로 안 나왔고, 장학금은 한국장학재단에 보조해주는 것 이 외에는 없었다. 억울했다. 나도 돈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하면 과탑도 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상상이다. 반값 등록금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을 데리고 거리에 나갔다. 등록금을 반값만이라도 해달라는 외침이었다. 실현되지 않았다.
취업시즌이 되었다. 여전히 많은 동기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일자리 전쟁이다. 다행히 들어간 일자리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과 생각보다 적은 월급에 한 숨이 나온다. 반도체 회사를 제외한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단군이래 최고의 스펙과 경쟁을 뚫어 여기까지 왔는데, 답이 없다. 주거비용, 결혼비용, 육아비용을 생각하면 내가 버는 돈으로 가족을 꾸리는 것이 가능한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결혼한 선배들은 "절대 결혼하지 말고, 결혼은 했어도 절대 애는 낳지 말라"라고 한다. 씁쓸한 현실이다.
4명의 친구가 자살을 했다. 중학교 친구 한 명, 고등학교 친구 두 명, 동네 형 한 명. 함께한 기억이 여전히 선명한데 내 옆에 존재하지 않는다. 꽃같이 젊은 날 가난하게 찢어져갔다. 우리는 경제위기가 올 때마다, 사회적 기준에 실패할 때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4년 전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매일 새벽 일거리를 찾으러 나가신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허탕을 치며 돌아오신다. 일하다가 몸이라도 상하면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진다. 모아 둔 돈은 모래성처럼 금세 사라진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어른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다. 60대가 되면 일할 곳이 없다. 아직 건강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두가 30년 넘게 쌓아온 전문성은 구시대의 흔적이 되었다.
결국은 기승전'치킨집'이다. 대부분 5년도 못되어 폐업한다. 남는 것은 빚뿐이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점진적으로 늘어난다. 여유 있는 노후도 기본적인 일자리도 없다. 정말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어른들의 아픔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향하는데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경제구조'와 '교육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경제구조 : 낙수효과(Top Down) vs 분수효과(Bottom Up)
②경제구조 : 한국형 제조업(복제와 착취)
③경제구조 : 복제의 결과(정년이 자영업밖에 할 수 없는 이유)
④경제구조 : 착취의 결과(청년이 중소기업으로 가지 않는 이유)
⑤교육제도 : 19세기 탄생, 20세기 선생, 21세기 학생
⑥교육제도 : 비효율(과잉투자)
⑦교육제도 : 비효과(실업자 양산)
⑧교육제도 : 비합리(다양성 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