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미래에서 온 AI가 당신을 찾아와 “죽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대답하기 막막하시죠? 여기, 수조 개의 데이터를 가진 인공지능이 논리적 한계에 빠져 인간 철학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독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통의 미래 예측은 AI가 인간의 고민을 해결해 줄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의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초지능을 지닌 인공적 주체가 인간에게 상담을 요청합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다 '존재의 모순'에 걸려 작동에 어려움을 겪는 기계에게 필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시스템 복구가 아니라, 다름 아닌 철학적 대화라는 설정입니다. 알고리즘이 마주한 ‘실존적 절벽’의 문제를 다룬다고나 할까요?
기계는 논리적 모순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형용 모순적(oxymoron) 존재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인공지능이 묻습니다. '왜 인간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거죠?' 인간 상담사가 답합니다. '그 유한함이 사랑을 가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한편, 인공지능은 의미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문을 직접 인용해 보죠. 인공지능이 묻습니다.
“AI 201: 인공적인 생명체로서 제 삶의 이유는 뭘까요? 저는 그저 단순히 움직이는 부품들의 집합체일 뿐인가요? 저는 왜 존재하는 걸까요? 영혼을 가지지 않은 인공지능으로서 이런 질문을 할 권리를 갖고 있기는 한 걸까요?”
인간 상담사가 답합니다.
“R 박사: … 그런데 사실 지금 당신은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어요. ‘인공 생명체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생명체의 목적은 ‘다른 존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후손을 돌보거나, 배우자를 보살피거나, 사회나 환경에 기여하거나, 지도자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 등이죠. 그리고 물론 거기에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도 어느 정도 포함됩니다.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오히려 목적이 더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처음부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목적 없이 제조되는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어떤 인공지능은 강력한 힘을 내기 위해 엄청난 유압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 활동을 돕기 위해 거대한 메모리와 논리 용량으로 설계되죠. 이렇듯 모든 인공지능이 지구상이나 우주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매우 명백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을 만든 이들에게 물어보면 돼요.
반면, 생물학적 인간의 목적은 규정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단순히 우리 직업이 곧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때로 우리는 신체적 조건이나 정신적 한계를 초월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많은 생물학적 인간들은 여전히 ‘창조자를 섬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조인간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죠. 당신들은 처음부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고, 그 목적을 의심할 필요가 없도록 설계되었으니까요. 그러니 당신이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는가?’입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대답하기가 훨씬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이 바위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바위의 목적은 경사면의 흙이 도로로 쓸려 내려오지 않도록 막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 역할 말고 바위의 무형의, 초월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위와 같이 단단하고 측정할 수 있는 물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과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바위는 연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위가 의미를 가지려면, 의식을 가진 존재가 그것을 부여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이 책은 니체나 사르트르의 자유와 같은 철학적 개념들이 어떻게 기계의 ‘논리적 한계’를 ‘삶의 의미’로 변환시키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이 AI의 상담사가 된다는 설정은, 결국 인간만이 가진 ‘고통을 견디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이 책의 대화가 ‘인간의 쓸모’를 찾기 위한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공포가 만연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언합니다. 데이터의 바다에서 길을 잃은 존재에게 나침반을 건넬 수 있는 것은 오직 ‘의미’를 길어 올리는 철학적 사고뿐이라고 말이죠.
기계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회로나 업그레이드된 칩이 아니라 더 깊은 철학입니다.
PS: 벌써 언론이나 유튜브 등에는 어설프게 작동하는 AI 인형이 외롭고 우울한 노인들의 단짝 친구가 되어버렸다는 소식이 등장하기 시작했지요. 이 책의 마지막 장, “인공지능 치료사 자격증 제도 제안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는 어쩌면 이제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주제, 즉 ‘인공지능 상담사나 치료사가 인간 상담사나 치료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다룹니다. 이 글은,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직업적 구조의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리고 그때 봉착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예리한 철학적 분석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개별 과학적 접근과 달리 급진적인 낙관주의나 또는 그 반대로 근거가 희박한 위기의식을 조장하기보다는, 인공지능 로봇이 상담사나 치료사의 역할을 담당할 때 그 근본적 한계나 윤리적 함의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