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에피쿠로스 철학이 만날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장면이 하나 있지요.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밤,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마리아는 무서운 폭풍우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자고 제안합니다.
https://youtu.be/DGABqdbtQnA?si=VkEUk-iKyjOP1Aj7
“장미 꽃잎 위에 맺힌 빗방울과 새끼 고양이의 콧수염, 반짝이는 구리 솥과 따뜻한 울 장갑 … ”
아이들의 공포는 거창한 신앙적 구원에 관한 설교나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일상의 작고 구체적인 기쁨들을 호명하는 순간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이 마법 같은 순간은 사실 고대 에피쿠로스 학파가 제안했던 ‘철학적 자기 돌봄’의 핵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철학, 삶을 치유하는 처방전
흔히 에피쿠로스 철학을 ‘쾌락주의’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쾌락은 무절제한 방탕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불안에 잠식된 영혼을 건져내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는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일종의 치료학(Therapeutics)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인간은 “반드시 우리 자신의 삶을 치유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요. 그의 진단에 따르면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예컨대, 죽음, 신)을 두려워하고, 욕구할 필요가 없는 것(명예, 엄청난 재산)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당화되지 않는 공포와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시달리느라 지금 여기 실재하는 유일한 즐거움인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을 놓치고 만다는 것이죠.
자연학: 과학의 뿌리이자 영혼의 망원경
여기서 에피쿠로스는 독특한 치유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자연학’(physics) 공부입니다. 고대의 자연학은 만물의 원리와 근원을 탐구한다고 일컬어지던 지적 활동이었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자연과학 혁명을 거쳐 현대의 자연과학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 같지만, 자연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법칙을 찾아내려는 과학적 태도는 사실 고대 철학자들의 치유적 갈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당대 철학의 양대 산맥이었던 스토아와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은 자연을 바라보고 활용하는 방식에서 서로 많이 다르기는 했습니다.
스토아의 자연학이 우주의 정교한 질서(Logos)에 순응하려는 도덕적 긴장을 강조했다면,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은 정반대로 우주가 그저 원자들이 무한한 공간 속에서 우연히 결합하고 흩어지는 결과일 뿐이라고 가르치며 우리를 옥죄는 사이비 공포로부터 심리적으로 벗어날 것을 주문합니다. 우주에는 우리를 감시하는 신도, 우리를 옥죄는 정해진 운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죠.
그러므로 에피쿠로스에게 자연학적인 명상(관조, theoria)은 질서에 복종하는 훈련이 아니라, 우주의 광대함을 보면서 내안의 작은 근심, 나를 구속하는 모든 가짜 공포를 떨쳐내는 ‘해방 훈련’이었습니다. 현대의 과학이 객관적 데이터를 산출하는 작업에만 몰두하는 데 비해,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은 그 이치를 통해 ‘인간의 자유’를 입증하려 했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4줄의 문장, ‘마음의 비상약’
에피쿠로스 학파는 이 해방감 내지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짧은 경구를 밤낮으로 반복해서 되새겼습니다. 마치 영화 속 마리아의 아이들이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두려움을 쫓았듯이, 그들은 근본적인 가르침을 늘 손안에 넣고 간직하려 했던 거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네 가지 치유 공식(Tetrapharmakos)”입니다.
“신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좋은 것은 얻기 쉽다. 고통은 견디기 쉽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비바람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릴 때, 혹은 건강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엄습할 때 같이 말이죠. 그럴 때면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은 마음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위의 네 가지 짧은 문장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공식은 우리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비상약과 같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일상의 언어로 조금 더 쉽게 풀어볼까요?
1. 신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벌을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종종 ‘내가 잘못 살아서 벌을 받으면 어쩌지?’ 혹은 ‘고약한 운명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라는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말합니다. 신이나 운명은 인간의 사소한 일에 일일이 관여하며 우리를 벌주는 존재가 아니라고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2. 죽음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내가 존재할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올 때 나는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결코 죽음을 만나지 못하며, 죽음이 왔을 땐 이미 고통을 느낄 ‘나’가 없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순간의 공포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햇살과 커피 한 잔의 기쁨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3. 좋은 것은 얻기 쉽다
행복의 재료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값비싼 명품, 남들의 인정, 높은 명예가 있어야 행복할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즐거움은 친구와의 진솔한 대화, 배고플 때 먹는 소박한 한 끼처럼 의외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행복의 기준을 낮추면, 우리는 매일 행복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4. 고통은 견디기 쉽다
이 아픔 또한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생각보다 강합니다.
극심한 통증은 당장은 죽을 것 같지만 짧게 지나가고, 오래 지속되는 불편함은 서서히 몸과 마음이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리 안의 회복 탄력성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고통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 손님일 뿐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요동칠 때 이 네 가지 공식을 가만히 읊조려 보세요. 거창한 철학 이론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마음의 상처에 붙이는 밴드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이 짧은 문장들이 당신의 마음 근육에 새겨질 때, 삶의 어떤 풍랑 속에서도 당신은 마리아의 아이들처럼 씩씩하게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족 하나! : 에피쿠로스는 이 치유의 과정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심의 소란에서 벗어난 정원, 즉 케포스(kepos)에 모여 친구들과 함께 이 진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우리에겐 거창한 사교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평온을 빌어주는 지적인 우정의 공간(예컨대 브런치 스토리 같은)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행복을 유예하지 않는 용기, 카르페 디엠
에피쿠로스의 철학적 자기 돌봄은 정신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긴장의 완화와 평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고통을 미리 당겨 걱정하기보다,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되살리고 현재의 기쁨에 온전히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죠.
“우리는 단 한 번 태어난다. 두 번 태어날 수 없으며, 이 삶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래를 지배할 수 없는 당신은 어찌해서 행복을 뒤로 미루고만 있는가?”
이 통찰은 호라티우스의 유명한 금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붙잡아라)으로 귀결됩니다. 물론 이는 무책임하게 오늘만 살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지 않은 내일의 불안 때문에 오늘 우리 손안에 있는 존재함의 기쁨을 낭비하지 말라는 다정한(?) 조언이자 경고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가장 좋아하는 것들’(Favorite Things)은 무엇인가요? 그런 게 없다고요? 설마 … .
현대의 심리치료에서는 그렇게 반응하는 고객에게, 과거에 아주 아주(!) 예외적으로나마 즐거움을 주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주문하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른바 ‘기적 질문’(Miracle Question) 처방입니다. 그 기적의 풍경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딸아이 손을 붙들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걸었던 공원 산책, 어렸을 적 외가에 갔을 때 할머니가 웃으시며 안아주던 일 같은 소박한 일상의 경험입니다. 아침에 편안하게 마시는 커피 한 잔, 갓 구운 빵 냄새, 코끝에 내려앉은 눈송이, 이 글을 읽는 바로 이 순간 … 이런 것들을 가만히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에피쿠로스식 치유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은퇴 후 비로소 보이는 ‘존재함의 즐거움’을 어설프게나마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랫말과 에피쿠로스의 지혜로 풀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