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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Nov 26. 2024

교육 -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 고병헌

나의 자유함이 교육으로 수렴되는 삶

책의 제목이 ‘교육’이다. 교육과 관련이 없는 내가 읽어도 되는 책인가 싶었다. 부제가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이라니... 책 겉표지만 보고,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은 결국 교육이라고 결론을 내겠지라고 생각하며 첫 장을 펼쳤다.


자유함

책을 읽으면서 낯선 단어가 계속 눈에 띄었다. ‘자유함’. 나는 ‘자유’라는 단어를 추상명사로 쓰거나 ‘자유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명사화하여 ‘자유로움’이라는 단어로 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자유함’은 잘 쓰지 않는 단어다. 5장 ‘자유함으로 온전히 사는 삶’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의 돌이 와장창 깨졌다.

 

저자는 ‘자유함’을 아마도 ‘자유하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자유하다’에서 ‘자유’란 ‘내 삶의 이유를 자기가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자기 결정’으로 ‘자기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다.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그냥 사는 삶이 아니다. 남이 규정짓는 삶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나라는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그 과정은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만 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자유의 반대 의미가 매우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자유의 반대 의미라고 하면 권리의 박탈, 신체구속인 부자유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부자유'가 아닌 ‘관성’이라고 설명한다. 관성의 법칙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균일한 속력으로 움직이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법칙’이다. 결국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자유의 반대 개념이다. 그렇다면 잠에서 깨어나 이부자리를 박차는 매일 아침이 자유를 쟁취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자유하다’에서 ‘하다’는 자유를 행하는 동적 의미이다. 내가 생각한 ‘하다’의 의미는 책에서 얘기하는 ‘산다’와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산다는 것은 바로 질문을 받는 것이며, 대답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삶이란 내 삶이 누군가의 길이 되는 삶이라고 얘기했다. 단순히 ‘산다’에서 그치지 않고 그런 삶을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하다’의 최종적인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함'이란 ‘자기 결정’으로 ‘자기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내 삶에 부과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교육

 

우리는 이런 자유함을 통해 너의 삶과 나의 삶이 만난다. 서로 보여주고 나눔으로써 삶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교육'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교육이라는 행위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나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삶은 배우는 사람에게 결코 종착역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보다 한 발짝 앞 서, 같은 삶의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젖고 바람을 함께 견디며 살아가는 삶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교육’은 학교 안, 선생님과 제자 사이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사이에서도, 너와 나의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어쩌면 자연과 나 사이에서도 교육은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자유함이 교육으로 수렴되는 삶. 이것이 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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