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가는 길, 열차 안에서

친구의 명복을 빕니다.

by 폭풍속 부푼돛

갑자기 한파가 몰려왔다. 따뜻했던 날씨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시샘이라도 하듯이 한낮에도 영하권의 추운 날씨로 변했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코로나와 갑자기 찾아온 한파로 크리스마스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모님과 장인어른께서 크리스마스라고 한 보따리를 챙겨 오셨다. 따뜻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었다.


'지잉~~~~~~'

웃고 떠드는 가운데 한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문자를 알려주는 핸드폰 팝업창에서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대학시절 가장 가깝게 보냈던 한 친구의 이름이었다.

'어? 뭐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얼핏 본 문자는 근조 문자처럼 보였는데 내 친구 이름이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친구 이름 앞에는 "고"라는 한자가 있었다. 순간 불길한 감정은 나를 휘감았고 떨리는 손끝으로 문자에 링크 주소를 클릭했다.

장례식장 이리고 크게 적힌, 근조를 알리는 화면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사진이 있었다. 대학 졸업을 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간혹 연락을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 얼마 전 육아휴직 중에도 부산 한번 안 내려온다며 타박하던 그의 음성이 또렷하다. 사업이 잘 되어 나름대로 입지를 다져간다며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대학시절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던 자신의 모습은 이제 잊어버려도 좋다는 듯 한껏 격앙된 그의 음성이 또렷하다. 언제나 그렇듯 다음에 꼭 보자던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는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어 버렸다.


친구의 사진을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왜 죽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불과 얼마 전, 통화도 했었고 41세라는 한창인 나이에 지병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갑자기 쓰러지거나 사고를 당한 건가? 여러 가지 추측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에 사진 아래로 유가족의 이름이 보였다. 아내와 딸들의 이름들. 아빠와 남편을 먼저 보낸 이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며 마음이 울컥해지며 먹먹해졌다. 지금 옆에서 환하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과 장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내의 얼굴이 겹쳐졌다.

'내가 먼저 떠난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지금처럼 즐겁지 않겠지? 나의 빈자리가 남겨진 가족에게 얼마나 큰 슬픔이 될까?'

친구가 어떤 사유로 떠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그들의 감정에 숙연해진다.


지금은 먼저 떠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열차 안이다. 세월이 좋아져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뚝딱 갈 수 있는 거리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서로 얼굴은 못 보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 한마디 꼭 하고 싶다.

"잘 가라~ 친구야!"




먼저 하늘나라로 올라간 친구의 명복을 빕니다.

남겨진 이들이 굳세게 살기를 바랍니다.

마주 보며 웃고 짜증 부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친구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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