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서평

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by 바람
background-3390802_1920.jpg 출처: https://pixabay.com/illustrations/background-forest-trees-digital-art-3390802/

이번 장부터는 팬데믹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개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진화생물학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심적인 분야입니다. 코로나19를 포함한 여타 바이러스와 동물들 사이의 공진화 경로와 메커니즘, 그리고 그것들의 생태적인 기반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은 그러한 진화생물학이 다루는 주제들에 대해서 가장 폭넓으면서도 일반 독자들도 접근하기도 쉬운 교양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내용에 물을 타서 쉽게 전달하고자 왜곡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최재천 선생님께서도 동물행동학의 대학교재로 활용되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여기에서는 진화생물학의 기본적인 내용 정도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생물학은 참으로 종합적인 성격이 강한 학문입니다. 생명 현상 자체가 너무나도 다양하면서도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물학에서는 연구의 질문을 크게 ‘How(어떻게)’‘Why(왜)’의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하면서 연구를 더욱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이 둘을 각각 ‘근접인(proximate cause)’‘궁극인(ultimate cause)’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어떤 생물의 생리학적인 혹은 생화학적인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은 ‘어떻게’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은 주로 생화학이나 생물리학 등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생물의 메커니즘이나 행동방식이 도대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는 반드시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물에 대한 관점을 환원주의적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조금 더 역사적이고 종합적인 느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진화생물학은 상당히 유용한 생각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giraffe-35971_1280.png 출처: https://pixabay.com/vectors/giraffe-elephant-lion-three-35971/

그리고 그러한 궁극인에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원리가 막대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진화생물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다윈이 최초로 체계화한 원리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연 환경에 적응을 더 잘한 개체는 살아남아 번식을 하고, 후대로 갈수록 그 개체의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더 많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들이든지 이렇게 자연선택될 수 있는 조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생명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적응해가며 진화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진 다수의 생물학적 형질들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결과겠지요. 결코 우리에게는 미리 주어진 본질 따위는 없고, 거의 모든 것이 역사적인 연속선 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윈의 생각은 플라톤에서 시작된 서양 철학의 본질주의를 크게 뒤엎게 되는 결과까지 나아가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137억년 물질의 역사로부터 바라봐야 할 지도 모르는) 약 30억년을 넘는 생명 진화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오면서, 내 몸과 마음의 상당한 요소들이 자연선택되어 형성되었다는 점은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경이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직계 조상들 중에서 단 한 번의 실수로 번식 전에 죽음을 겪었다면 지금의 나는 필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경주 최씨 36대손인줄만 알았던 나 자신은 인간 뿐만 아니라 물 속에서 살아간 어류와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더 나아가 세균들까지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과 유전적으로 친인척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실존적 깨달음을 줍니다. 그것은 세계와 나 자신이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동반의존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당장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가 결단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직면할 때 존재에 대한 색다른 경이감이 솟아날지도 모릅니다. 이 시점에서 잠깐 최재천 선생님의 관련 글을 인용해봅시다.


"이렇듯 우리 삶은 우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우연히 태어난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도 지구의 역사를 하루로 본다면 태어난지 몇 초밖에 안 되는 동물입니다. 게다가 몇 초 만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많은 생물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가장 짧고 굵게 살다 간 종으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본질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자연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알고 배우다 보면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하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사라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p.372)


evolution-2305142_1920.jpg 출처: https://pixabay.com/illustrations/evolution-planet-ecology-nature-2305142/

우리가 진화생물학을 배워야 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우리 인류는 어쩌다 우연히 지구에 태어났을 뿐이고, 그것도 가장 막둥이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치 선택받은 종족인 것마냥 자연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오만입니다. 오히려 막둥이로서 먼저 태어난 생태계의 다른 존재들을 형님처럼 떠받들며 겸손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태도가 도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코로나19의 숙주를 두고 박쥐나 천산갑을 지목합니다. 그리고 일부 시민들은 이런 동물들을 원망하며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잘못한 것일까요? 오히려 이들의 보금자리까지 빼앗아버릴 정도로 과도하게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이 잘못한 것 아닐까요? 이후에 더욱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작금의 코로나19를 포함해서 앞으로 닥쳐올 전염병들은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오만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결국엔 "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가 박쥐나 천산갑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에 대해서 다시 이해하게 되고 제대로 알게 된다면 오히려 사랑의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동안 잘 알지 못하며 자연에게 커다란 해꼬지를 가했던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겸손해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겠다며 자연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하고 생태계 보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할 수도 있겠고요. 우리는 어떠한 것이든지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든지, 인간 관계든지, 생태계에게든지 적절하지 못한 대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도 이치에 밝지 못한 '무명(無明)'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우리가 그동안 서로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이해를 하고 대했는지, 혹은 무언가 아는 척하면서 제대로 되지 못한 대우를 하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생태계 그 모두에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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