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욱도 못 말리는 개새끼"

은혜를 원수로 갚는 개새끼들에 대한 묵상

by 바람
강형욱도 못말리는 개새끼.png "강형욱도 못말리는 개새끼"
35:11 거짓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을 캐묻는구나.
35:12 그들이 나에게 선을 악으로 갚다니! 내 영혼을 이토록 외롭게 하다니!
35:13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나는 굵은 베 옷을 걸치고, 나를 낮추어 금식하며 기도했건만! 오,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35:14 친구나 친척에게 하듯이 나는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모친상을 당한 사람처럼 상복을 입고 몸을 굽혀서 애도하였다.

시편 35:11-14 (새번역)


주여, 요즘따라 제 주변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 개새끼들이 왜 이리 많아진 것일까요? 물론 저는 누군가가 은혜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상대방에게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누군가가 선뜻 건넨 호의일 뿐이지, 일종의 계약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줬다고 해서 생색내는 꼴을 보는 것만큼 혐오스러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을 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애초에 보상을 기대하고 사람을 도와주면 그것은 암묵적인 계약관계일 뿐입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어느 정도 내가 기대하거나 원하는 만큼 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해서 아쉬워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러면 그냥 혼자서 생각하고 끝내면 되는 겁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는 현격히 다릅니다. 이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제 마음에 커다란 '불'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당연하게도, 그 누구라도 저에게 굉장히 싸가지 없게 대하거나 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조그마한 예의 하나 지키지 않았다고 매번 화를 내는 정도의 소인배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잘 아는 이들은 제가 웬만한 것들에 대해서는 딱히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것입니다. 제가 어느 순간 막 화를 내서 육두문자를 뱉노라면,—애시당초 그런 때도 거의 없지만—다들 '오죽하면 화를 낼까' 싶은 심정으로 저를 바라볼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상대방에게 은연중에 조금이나마 가졌던 기대감이 꺾여서 생긴 실망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사람인지라 상대방에게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기대를 아예 하지 않기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보답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내가 조언한 방법을 통해서 제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포함될 수 있겠지요. 물론 이러한 기대는 입 밖으로 내뱉지 말고 혼자 속으로만 간직하는 편이 낫습니다.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얹어봤자 피차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더 성장하고 나아지기는커녕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저에게 싸가지 없게 대해도 화가 날 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다 해주고 실제로 그로 인해서 큰 도움까지 얻은 사람이 상당히 싸가지 없는 방식으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면?


혹여나 제가 수행이 덜 된 것일까요? 애초에 은연중이라도 미약하게나마 기대를 한 제가 수행이 덜 된 것일까요? 마태복음에서도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 6:3)라고 했는데 제가 신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요? 불교의 경전인 <금강경>에서도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라고 하여 내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도 버리라는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요? 그따위 분노도 흘려보내지 못하는 한낱 범인이어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저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다 깨닫고 실천하기에는 아직도 심각하게 모자란 범인이 맞긴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남탓을 하고 싶은 심정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수행에 정진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다 드는 요즈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증오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만큼 뉘우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믿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그의 대표작 <화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반문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실수 때문일진대, 선한 사람이 그들을 증오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 순간만큼은 제가 만들어낸 화를 가능하면 섬세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강형욱이 말한 것처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말을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유념하려 합니다. "강형욱도 못 말리는 개새끼"들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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