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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20. 202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필로어스 '위대한 질문'] 3일차


Q. '삶'이 아닌 것과 '진정한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1, p.121 인용. -


"그대여 두려워마시오
길 위에서는 누구나 혼자요
어디로 가든 그 얼마나 느리게 걷든
눈앞의 소로를 따라 묵묵히 그저 가시게"

- 심규선, <소로 小路> 中 -


 소로가 말한 온전한 삶이란 무엇일까? 이는 무어라 딱 잘라서 결론을 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주제의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온전한 삶이 아닌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있겠다. 적어도 인생 전반에 대해서 숙고(deliberation)나 반성(self-reflection)이 없는 삶은 결단코 온전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숙고나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괜스레 겁을 먹고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누군가가 민트초코호빵을 먹은 뒤에 상당히 후회가 막심해서 다음부터는 절대로 입에 넣지 말아야겠다고 내린 결단도 낮은 수준의 반성적 판단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더욱 고차원적인 반성으로는 민트초코호빵을 직접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만 돌려보면서 그것을 결코 먹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단이 있겠다. 이처럼 인간은 실제로 특정 상황에 부딪치지 않으면서도 이성을 통해서 높은 수준의 반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1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훌륭한 능력을 인생 전반에 대해서 잘 써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입시에서 대학을 잘 가기 위해서, 취업을 잘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하고 반성을 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우리는 직장에서 중요한 계약을 할 때 꼼꼼히 계약서를 읽고 검토하려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의 인생 전반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반성을 하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기쁘고 행복한지, 무엇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무엇을 할 때 삶이 힘들고 답답한지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명확히 모르기에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질질 끌려가며 살아갈 뿐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운이 좋아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확률이 극히 낮다. 설령 어느 순간 우연히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그 삶은 금방 사라져버릴 사상누각일 뿐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생각해보면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것도, 대학을 잘 가기 위한 것도, 취업을 잘 하기 위한 것도 결국엔 내가 원하는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왜 대학 입시와 취업을 위해 바쳤던 정도만큼 인생 전반에 대해서 체계적인 노력을 기하지 않는가? 아니, 그 정도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한 노력의 절반이라도 인생 전반에 대해서 기울인다면 무언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 사이에 주식 투자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그와중에 대박을 치면서 쏠쏠하게 재미를 본 사람도 있을 테고, 쪽박을 찬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투자 전문가들은 종목 선택을 할 때 안정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염두에 두며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인생'이라는 종목만큼 확실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투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게다가 투자한 시간도 시간이지만 관련된 정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수집하느냐도 중요한 관건이다. 꽤 많은 이들이 대학 입시와 취업에 관해서는 정확하면서도 검증된 정보들 위주로 취하려 하면서도, 인생에 관한 조언을 얻을 때는 그보다는 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라도 검증하지 않고 믿어서는 안 된다."2 그 주제가 인생에 관해서라면 검증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덧붙여도 모자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성찰할 때 가장 잘 검증된 도구로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꼽는 편이다. 철학을 통해서 제대로 생각하는 방법을 깨닫고, 심리학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얻고, 신경과학을 통해서 마음의 근본적인 작동방식을 깨닫는 것이다. 물론 인생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서 이것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생을 체계적으로 숙고하고 반성함으로써 "온전한 삶"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소로가 말한 것처럼 "노고에 시달리는 인간은 매일매일 고결하게 살아갈 여유가 없다."3 "삶의 의미와 자살"이라는 주제로 대학원 세미나 수업을 진행했던 경희대학교 최성호 교수도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남긴 바가 있다.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그 질문이 합당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질문이 중요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단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사색하고 있기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과업이기 때문이다.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은 혼신의 노력과 정성을 요구하는 풀타임 과업이다."4 더군다나 우리 사회의 교육은 인생을 제대로 성찰하는 방법 따위는 가르쳐주지 않은 채 손을 놓아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전한 삶" 운운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무기력하게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을 원하는 방향대로 가꾸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마저 삶을 포기해버린다면 그 누구도 대신 삶을 살아줄 수 없다. 그러니 "눈앞의 소로를 따라 묵묵히"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어 인생을 성찰해보기를 바란다.





1 대니얼 데닛, 『마음의 진화』, 이희재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 p.158 참조.


"우리는 포퍼 생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생물종과 다르지 않다.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심지어는 수많은 무척추동물도 자신의 환경에서 얻은 제반 정보를 활용하여 행동안(behavioral option)을 미리 추려 내는 능력을 보여 준다."


2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1, p.19 인용.

3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1, p.15 인용.

4 최성호, 「청춘의 죽음, 철학자의 탄식」,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7 인용. (https://www.huffingtonpost.kr/sungho-choi/story_b_18867810.html)


https://blog.naver.com/philia1223/222625427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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