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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23. 2022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함께 있을 때 외롭지 않다

[필로어스 '위대한 질문'] 4일차


Q. 고독을 즐기는 것이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대부분 시간을 혼자 있는 것이 내게든 더 유익하다.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 해도 함께 있으면 곧 피곤하고 지루해진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한다. 나는 고독처럼 다정한 친구를 만나본 적이 없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1, p.182 인용. -

"외로움은 이제 더 이상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믿게 되었지요

진정으로 외로워 본 사람만이
사랑하고 가슴 뜨거울 자격 있음을
외로워 본 외로워 본 외로워 본
외로워 본"

- 심규선, <외로워 본> 中 -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고독을 즐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금방 외롭고 질리게 된다. 고독을 견디기 힘들어하니까 매번 사람들에 대해서 집착하면서도 번번이 좌절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가족관계, 친구, 연인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 전반에 대해서 두루 적용된다. 그 말인즉슨 가족관계가 불안정한 사람들은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독을 즐길 수 있느냐 마느냐는 삶에서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을 즐길 수 있으면 쉽게 말해서 주변의 부차적인 관계에 껄떡대지 않게 되니 삶에서 더욱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안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것은 자유가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고, 평화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없다. 다만 지난 날까지 나 자신을 얽매던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정신분석학자 라깡(Jacques Lacan)은 기독교 교리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재해석하기도 했다. 이는 곧 다른 무언가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 삶을 뜻한다. 이렇게 고독을 즐길 수 있으면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에 눈 뜨게 될 수 있다.


 물론 고독을 즐기는 삶이란 그리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가끔씩은 사무치도록 불안하거나 외로운 마음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칠 수도 있다. 어느 날 문득 백석의 시구처럼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체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바다 위의 섬처럼 외로운 운명을 쥐고" 태어나는 법이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외로움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너무 한심하게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외로움이 다시 내 마음을 휘젓더라도 이전보다는 빠르게 진정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외로움은 이제 더 이상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길만한 '고독'으로 달리 체험되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어른이 될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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