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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an 29. 2022

"문제 풀이로 이어지지 못하는 개념은 '빈 개념'"


"우리가 "기호", "낱말", "문장"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에는 서로 다른 무수한 종류의 쓰임이 있다. 그리고 이런 쓰임의 다양성은 단 한번 정해진 채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언어와 새로운 언어게임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생겨나고, 다른 것들은 쓸모없어져 잊혀진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 『철학적 탐구』, 이승종 옮김, 아카넷, 2016, §23 인용. -


"여기서 "언어게임"이라는 낱말은 언어를 말하는 일이 어떤 활동의 일부, 또는 삶의 형식의 일부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 『철학적 탐구』, 이승종 옮김, 아카넷, 2016, §23 인용. -




 제 아무리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개념들을 포장한다 해도 문제 풀이로 이어지지 못하는 개념은 '빈 개념'(null concept)에 불과하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어떤 낱말의 의미는 그 언어에서 그 낱말의 쓰임"1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특정 상황에서 아무런 쓰임(use)이나 기능(function)을 발휘하지 못하는 언어(language) 및 개념(concept)이라면, 적어도 그 상황에서는 해당 언어 및 개념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볼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특정 개념들을 적용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단 하나도 없다면, 그 사람은 해당 개념들을 이해(understanding)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서 대니얼 데닛은 'E=mc2'라는 명제에 대한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른 이해를 예시로 든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공식이고 상대성이론의 핵심이란 것을 안다. 또 우리 중 많은 사람이 e와 m과 c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알고, 심지어 기본적인 대수학적 관계를 이해하고 잘못된 해석을 알아본다."2 그야말로 누구나 이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극소수의 전문가만이 그 명제를 실질적으로 이해한다. 쉽게 말해서, 그 명제에 대해 일반 대중과 아인슈타인이 가지는 이해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양자는 얼마나 깊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이후에 그 명제는 전문가들에 의해서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고, 그 방식이 좋든 싫든 어마어마한 문제의 해결로 이어졌다. 그 둘이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개념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에게 잠재된 문제 해결력의 정도는 실로 엄청난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한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 따르면, 개념에 대한 이해의 폭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의 개념들이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적용되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적절한 이해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3 세계에 대해서 지금, 여기서는 잘 적용되었던 개념이 나중에, 저기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못할 수도 있다. 즉, 똑같은 심적 상태와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면 이해의 정도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해가 '마음의 과정'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말라!"4 세계와 개념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외재적이면서도 규범적일(normative)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제럴드 에델만은 그의 주저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에서 이에 대해 보완적인 설명을 하는 듯하다. 특히 그의 전매특허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신경 다윈주의'(neural Darwinism)와 그를 기반으로 한 '뉴런 집단 선택설'(theory of neuronal group selection; TNGS)를 통해 개념의 규범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발생적으로 설명한다. TNGS에 따르면, "개념 형성은 지각 범주화와 기억, 학습이라는 주요 3요소에 기반하고"5 있다. 그런데 "범주화는 항상 가치value라는 내부적 기준과 관련해 일어나며, 이 같은 관련이 적절함을 정의해 준다는 사실을 TNGS는 제안하고 있다."6 정리하자면, 개념은 지각 범주화를 다시 범주화하면서 발생하는데, 그러한 범주화는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선택하는 가치에 의해 규제된다. 그러므로 개념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얼마나 문제해결을 잘 하느냐에 따라 그 적절성 여부가 갈린다. 바로 이것이 개념의 규범성이 형성되는 생물사적(生物史的) 과정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애초에 '개념'이라는 것은 상향식(bottom-up)으로 구성된 것이다. 즉, "당신이 과거에 경험한 개체군을 바탕으로 이리저리 짜맞추어 특정 상황에서 당신의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개념을 즉석에서 구성"7해낸 결과다. 어떤 면에서는 동영상 파일을 압축하는 과정이라고 비유해도 꽤 괜찮다. 각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만의 개념을 압축해낸다. 그런데 누군가의 개념을 거꾸로 압축해제하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빈 깡통인 경우가 종종 있다. 첫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그 개념을 통해 아무런 문제 풀이로 이어지지도 않고 적절한 예시도 들 수 없는 경우다. 그 개념을 자기 것으로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으니 적절한 예시 하나도 들지 못하며 겉도는 수준에서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해댈 뿐이다. 차근차근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과정 속에서 얻어낸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념을 형성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다. 그러니 이제 더이상 빈 깡통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꼴은 생기지 말아야 한다. 그 반대로 평생의 삶에 도움이 될 정도로 속이 꽉 찬 풍부한 개념들을 익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 『철학적 탐구』, 이승종 옮김, 아카넷, 2016, §43 인용.

2 대니얼 데닛 저, 『주문을 깨다』, 김현영 옮김, 동녘사이언스, 2010, p.287 인용.

3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 『철학적 탐구』, 이승종 옮김, 아카넷, 2016, §146 참조.

"적용은 여전히 이해의 한 기준이다."

4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저, 『철학적 탐구』, 이승종 옮김, 아카넷, 2016, §154 인용.

5 제럴드 에델만 저,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황희숙 옮김, 범양사, 2010, p.165 인용.

6 제럴드 에델만 저,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황희숙 옮김, 범양사, 2010, p.139 인용.

7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최호영 옮김, 생각연구소, 2017, p.184 인용.


https://blog.naver.com/philia1223/222634115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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