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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많이 구제하면 어떻습니까? 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을 일삼는 정도이겠는가? 반드시 성일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셨다. 인한 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서게 하며,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 데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으면 인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전: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論語>, 6-28(雍也))]
흔히 줄여서 ‘박시제중’(博施濟衆)이라고 불리는 <논어>의 한 구절이다. 이는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뜻의 구절이다. 이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자'(仁者)의 경지를 거뜬히 넘어선 '성인'(聖人)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고 공자는 말한다. 그만큼 공자는 널리 인(仁)의 정신을 실천하며 베풀기를 강조한 인물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종류의 인류애는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종교들의 교리 그 어디를 보더라도 강조될 정도로 진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토록 진부하면서도 간단한 진리 하나를 실천하지 못해서 여전히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각박하게 살고 있을까?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누어준다는 것이 아깝게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혹시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이 아깝게 느껴져서 그런 것이라면, 꼭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오히려 그렇게 베푸는 삶은 우리에게 풍족한 삶의 의미를 안겨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은 보통 어떨 때 삶이 의미있다고 생각할까?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짜릿한 성적 쾌감을 느낄 때?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히 기쁜 감정과 인생이 의미있다고 느끼는 상태는 개념적으로 서로 다르다. 우리는 보통 그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능동적인 방식으로 성취해낼 때 인생에서 의미를 얻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자기효능감 개념과 관련이 많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에 무언가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기효능감을 느낄 때 더욱 깊은 의미가 느껴진다. 이러한 상태를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헬퍼스 하이'(helper's high)1 라 부른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예시로 봉사활동을 들 수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린다 프리드 교수는 볼티모어 시에서 노인들에게 공립 학교 학생들을 도와주도록 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예를 들어, 노인 봉사자들이 어떤 학생에게 읽기를 도와주거나 하는 등 교사를 보조하는 봉사활동이다. 그로 인해서 학생들은 학교 생활 적응 및 학업성취도 문제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또한 자원봉사를 했던 노인들의 건강과 삶의 질이 높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생리적으로도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줌으로써 도움을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와주는 이들까지 몸과 마음의 건강이 증진된 것이다.2
심지어 단순히 남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행복감이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 소속의 더글라스 A. 젠틸레(Douglas A. Gentile) 교수의 연구다. 그의 팀은 불안과 스트레스로 진단받은 사람들을 연구 대상으로 택했다. 그들은 매일 12분씩 대학을 걸어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결과 실험 참여자들의 행복감과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수치가 증가했고, 불안감이나 스트레스 수치는 감소했다고 한다. 단 12분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3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한 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서게 하며,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한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는 본문의 공자의 말과 상통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살펴본 연구들에서도 우리는 '박시제중'의 강력한 힘을 깨달을 수 있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라는 말은 그저 희망찬 구호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종교의 영역에서 주로 받아들여진 사랑의 가르침은 이제 과학의 영역에서까지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봉사활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어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자 노력해보자. 공자가 말했듯이 인의 실천은 "가까운 데서 취하여"(能近取譬) 널리 퍼져나가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변화는 자그마한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1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윌리엄 패트릭 지음, 이원기 옮김, 2013, 민음사, p.301 참조.
“호스피스 간호사처럼 선의와 친밀함, 보살핌을 베푼 결과로 갖게 되는 기분 좋은 느낌, 다시 말해 ‘축복’을 받는다는 느낌이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봉사자의 희열)’다. 하지만 봉사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낯선 사람을 도울 때도 똑같은 행복감에 도취될 수 있다.”
2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윌리엄 패트릭 지음, 이원기 옮김, 2013, 민음사, p.312 참조.
3 A simple strategy to improve your mood in 12 minutes (https://www.news.iastate.edu/news/2019/03/27/happiness) 참조. ““Walking around and offering kindness to others in the world reduces anxiety and increases happiness and feelings of social connection,”
4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윌리엄 패트릭 지음, 이원기 옮김, 2013, 민음사, p.351 참조.
“’이기적 유전자’는 사회적 두뇌를 만들어 냈다. 그 사회적 두뇌는 외로움을 혐오하는 반응을 키웠고, 그런 반응이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했다.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유전자의 생존을 보장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연쇄적인 반응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을 형성하는 바로 그 힘이 ‘제3의 적응 방식’을 만들어 냈다. 자기 유전자의 장기적 생존을 보장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서로 주고받으며 의지하는 적응 방식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