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생성의 의지인가, 인도인가

by 사색하는 공학자

이 시리즈는 『위버멘쉬』라는 책 속 사유를 바탕으로 삶의 태도를 다시 바라보는 시도입니다. 원문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나타난 니체의 철학에 기반했으나, 이 글은 2차 창작물인 『위버멘쉬』의 내용을 재해석한 에세이입니다. 원문을 읽으시려면 하단의 참고도서를 이용하세요.




니체의 아포리즘: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니체는 인간을 "짐승과 초인 사이에 매여 있는 밧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현재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생성(Becoming)'의 과정을 강조했습니다.


니체의 눈에 비친 과거의 형이상학적 믿음은 인간에게 안정감을 주었을지 모르나, 동시에 인간의 자생력을 약화시킨 '환상'이었습니다.


그는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불확실한 시대를 오히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할 기회로 삼는 '능동적 허무주의'를 주창합니다.


오늘 심은 씨앗이 내일의 숲이 되듯, 인간은 스스로를 가꾸고 초월해 나가는 주체여야 합니다.


삶의 재구성: 퇴마를 넘어선 조경의 메시지


원전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이 종교와 형이상학의 기원을 차갑게 파헤치며 과거의 망령을 쫓아내는 '퇴마'에 집중했다면, [위버멘쉬] 원문은 미래의 숲을 설계하는 '조경'의 태도를 보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움직이는 사람이 돼라"는 실천적 낙관론은 원전의 날카로운 회의주의를 현대인의 성장 동력으로 전환시킵니다.


니체 vs. 성경적 관점: 누가 자라나게 하는가


'심고 거둠'의 원리는 두 세계관이 공유하는 정직한 법칙입니다. 하지만 그 열매를 맺게 하는 근원적 힘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니체의 관점 (자기 초월): 내가 심고, 내가 가꾸며, 내가 개척합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믿을 것은 오직 '나의 의지'뿐이며, 나의 선택이 내일을 만든다는 인과율을 믿습니다.


성경적 관점 (신비로운 동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책임 있는 선택'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선포합니다(잠 16:9).


(016) 본문 표.png 니체 vs. 성경적 관점


니체에게 기다림은 수동적 나약함일 뿐이지만, 성경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는(기다리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로운 힘을 얻는 역동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며: 개척한 길의 끝에서 마주할 존재


성공주의와 결과주의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니체와 성경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열매만 찾지 말고 씨앗을 심는 정직한 과정을 회복하라."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땀 흘려 개척한 그 길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이 과연 승리감에 도취된 '나 자신'뿐입니까? 아니면 그 험난한 길을 함께 걸으며 씨앗을 자라나게 하신 '창조주'입니까?


니체는 자기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라 하지만, 성경은 심은 씨앗을 숲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라고 초대합니다.


오늘 당신이 심는 선택의 씨앗이 당신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시는 분의 신실하심을 발견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참고도서:

『위버맨쉬』, 프리드리히 니체 저 (어나니머스 역, 떠오름, 2025)

원문 번호: 16번 '오늘의 선택이 내일을 만든다'

이 글은 발행 순 [19]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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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나의 약함, 초인을 넘어서는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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