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선배는 왜 기자가 된 겁니까?”
“대학시절 때, 취약계층을 주제로 쓴 기사가... 조금은 반영되더라고. 그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어.”
회사 선배와 청계천 앞 의자. 바위에 부딪히며 흐르는 물줄기를 보다가 문득 꺼낸 말이다. 그는 정치부에서 5년간 일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든 정치로 끝낼 수 있는 탁월한 몰입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그의 빈 이마를 쳐다봤다.
“아니, 형처럼 그렇게 지식이 많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당해보면 돼”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정치부 시절, 국회에서 문밖에 서서 밤새 기다리던 시기를 회상한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고위 인사에게 “왜 네가 왔냐”는 말을 들으며, 돌아가는 길 쓰레기통에서 자신의 명함을 주웠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난... 공부가 너무 힘들어. 선배를 보면 이 흐르는 청계천만 봐도 기사를 쓸 수 있는 사람 같아.”
“아, 청계천은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여길 덮으면서... 박근혜... 전쟁...(중략)”
마치 인공지능 로봇처럼 대답하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을 떠올렸다. 이 물이 바다로 가서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비가 되어 나무의 뿌리를 적시는 장면을 상상한다. 모든 것은 변화할 것이라는 그 헤라클레이토스의 말과 달리, 여전히 시간이 흘러도 그 물줄기에 다시 발을 담그고 있을 나를 떠올리며.
“그렇게라도 공부해야 형이 무시받지 않았겠구나.”
“맞지. 그래서 최대한 많이 알려고 애썼어.”
나는 침묵했다. 무시받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공부라니. 그는 직장생활 1년 사이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2년 차부터는 무엇을 쓰든 정치와 연관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눈물짓던 사람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배우고, 글 쓰는 즐거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머잖아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야로 배우고, 글 쓰게 되었다. 지금의 그는, 무엇을 봐도 정치라는 키워드를 한번 거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이에는 자의에서 타의로, 타의에서 자의가 되기까지, 영겁과 같은 배움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언제쯤 뭐든지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뒤로 재꼈다. 뻐근했던 뒷목이 시원해지며 드높은 건물들과 푸른 하늘이 보였다. ‘건물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진다’는 멘토님의 칼럼 첫 문장을 되새겨본다. 나는 이 사회를 단 1퍼센트도 이해하고 있을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사회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대중철학자가 되겠다는 말인가.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독일 철학자 호네트는 “모든 행동과 사유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그의 ‘인정투쟁’을 통해 개인이 사회에서 인정받아 자아실현하는 건강한 사회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했다.
“배움에 대한 동기는 타인으로부터 온 인정이 아닐까요. 선배는 충분히 인정받고, 앞으로도 더욱 배우면서 사회를 이롭게 하는 기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집에 가는 길에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아직 배움에 있어 지속할만한 동기를 주는 인정투쟁을 시작하지 않았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써야 책이 잘 나온다고 했던 조지오웰처럼, 내가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그 대상은 누구일까. 나는 언제까지 기자를 하며 수동적 배움에 머물러야 할까. 나는 언제까지 독서가 어려워서 몸부림치며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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