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읽고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파커 J. 파머 지음, 홍윤주 옮김, 한문화 펴냄, 2019년 2월)》는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진짜 자아가 무엇인지 발견해 보라는 이야기이다. 저자인 파커 J. 파머는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자신 삶의 어둡고 긴 터널에서 어떻게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후회, 실수와 같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경험들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어 그가 나아간 길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게 한다.
이 책은 영성에 관한 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초자연적 지성들을 믿는 것이나 우주 또는 세상에 본래부터 내재하는 성품(immanent nature) 또는 초월적인 성품(transcendent nature)을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영성은 삶에서 영감을 주고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원천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영성에 관한 책을 읽고 감상문이라고 쓴 글들 대부분이 왜 인용으로 채워졌는지 불만이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영감을 받았지만 책에서 표현한 것 이상으로 그 감동을 쓸 수가 없어 밑줄을 긋고 인용하는 것으로라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읽은 감상을 인용으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
삶은 나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다독이기도, 분노하게도 한다. 삶이 다정한 말을 속삭일 때는 잘 못 듣는다. 화나게 할 때는 잘 들리지만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닐 거라고 안 들리는 척하거나 애써 모르는 체한다. 그런데도 나는 삶이 말을 걸어올 때는 늘 다정하기를 바란다. 내 삶이 말하는 것과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이 다를 때 괴롭다. 이런 간극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떨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 윌리암 스태포드
강물이 얼음으로 변한 어느 날,
내가 한 실수들에 대해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한 일이 나의 인생인지 나에게 물어본다.
어떤 이들이 슬며시 내 머리에 스쳤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도움도 주고 상처도 줬거늘
그들의 강렬한 사랑과 증오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난 너의 말을 듣는다.
너와 난 돌아서서
고요한 강물을 바라보고 기다린다.
우린 물살이 숨겨진 채 있음을 안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어김없이 고요함을 지니며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 흘러오고 흘러나감을
강물이 말하는 것이 내가 말한 것임을.
*(원문) Ask Me / William Stafford
Some time when the river is ice ask me
mistakes I have made. Ask me whether
what I have done is my life. Others
have come in their slow way into
my thought, and some have tried to help
or to hurt: ask me what difference
their strongest love or hate has made.
I will listen to what you say.
You and I can turn and look
at the silent river and wait. We know
the current is there, hidden; and there
are comings and goings from miles away
that hold the stillness exactly before us.
What the river says, that is what I say.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을 늘어놓고는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언제나 그 결과는 비현실적이었고 진정한 나 자신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원인은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 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기보다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 내는 ‘고상한’ 길을 찾았던 것이다. 15, 16
젊은 시절, 나는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라는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내어 그것이 내 것이든 아니든 우격다짐으로 나의 인생에 꿰맞추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17
내가 믿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우리의 자아가 추구하는 것이 완전함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아무리 숭고한 비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부여된 강제의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폭력이다. 18
인생은 꼭 언어를 통해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행동과 반응, 직관과 본능, 감정과 몸의 상태를 통해서 어쩌면 말보다도 더욱 심오한 표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도 식물처럼 어떤 특정한 경험의 방향으로 스스로를 끌어당기고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것들을 멀리하려는 지향성이 있다. 만약 우리가 자기 경험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매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써 내려가는 그 텍스트를), 더욱 진정한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23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는 일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
Now I Become Myself
Now I become myself. It's taken
Time, many years and places;
I have been dissolved and shaken,
Worn other people's faces,
(…)
- 메이 사튼 May Sarton의 ‘이제 내가 되었네’중에서
*(원문) Now Become Myself / May Sarton
Now I Become Myself
Now I become myself. It's taken
Time, many years and places;
I have been dissolved and shaken,
Worn other people's faces,
Run madly, as if Time were there,
Terribly old, crying a warning,
"Hurry, you will be dead before—"
(What? Before you reach the morning?
Or the end of the poem is clear?
Or love safe in the walled city?)
Now to stand still, to be here,
Feel my own weight and density!
The black shadow on the paper
Is my hand; the shadow of a word
As thought shapes the shaper
Falls heavy on the page, is heard.
All fuses now, falls into place
From wish to action, word to silence,
My work, my love, my time, my face
Gathered into one intense
Gesture of growing like a plant.
As slowly as the ripening fruit
Fertile, detached, and always spent,
Falls but does not exhaust the root,
So all the poem is, can give,
Grows in me to become the song,
Made so and rooted by love.
Now there is time and Time is young.
O, in this single hour I live
All of myself and do not move.
I, the pursued, who madly ran,
Stand still, stand still, and stop the sun!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참자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소명의 씨앗이자 우리 자신의 참된 정체성이다. 31
어둠으로의 여행
어둠의 경험은 진정한 나의 자아로 돌아오는 데에 꼭 필요했으며, 그것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내가 빛 속에 머무르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사실을 밝히고 싶다. 늘 그래왔듯이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데 우리 어른들은 자기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꼭 감추어둔 채 그들을 모질게 대한다. 젊은 시절, 내게 어두운 경험을 얘기해 준 어른은 드물었고 대부분은 성공만 거듭해 온 것처럼 행동했다.
이십 대 초반 내게도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만 홀로 구제불능의 실패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류가 참가하는 여행에 나도 승선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46쪽
내면의 기쁨과 세상의 요구가 만나는 곳
어떤 여정은 곧은 직선으로 뻗어 있고, 어떤 여정은 빙빙 에두르는 길이다. 어떤 여행은 영웅적이고, 어떤 여행은 두려움과 혼란투성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은 정직하게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 세상의 절실한 요구를 만나는 어떤 지점으로 이끌어 준다. 72
길이 열린다
“나는 모태 신앙인이라네. 그리고 육십 년이 넘게 살아왔지. 그러나 내 앞에서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반면에 내 뒤에서는 수많은 길이 닫히고 있다네. 이 역시 삶이 나를 준비된 길로 이끌어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겠지.” 80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일어난 일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려 주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81
중산층 미국인, 특히 백인 남성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문화에서 성장했다. 이 메시지는 세상도 나도 한계란 없으며 내게는 충분한 에너지와 책임이 주어졌다는 뜻이었다. 81
길이 닫힐 때 나머지 세상이 열린다
우리 모두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말은 한계와 능력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능력을 깨닫는 것도 그렇지만 직접 자기 한계에 뛰어들어 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85
미국인으로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적어도 내가 속한 인종과 성에서- 모든 한계를 한때 인생에 닥친 유감스러운 일로만 간주한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한계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불가능은 없다’라는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길이 닫힐 때 일어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자꾸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87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
투명위원회란 대상자에게 고칠 점을 집어 주거나 조언을 하는 대신, 세 시간 동안 대상자가 자신의 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직하고 개방적인 질문을 던지는 절차를 말한다. 91
내게 없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고 있다면 나는 잘못되고 위험한 선물,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이 담기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려는 마음보다는 자신을 내세우려는 필요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런 베풂에는 사랑도 믿음도 없으며, 나 말고 사랑의 전달 통로는 없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나온 것이다. 96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후는 소위 탈진이라는 상태이다. 대개는 너무 많은 것을 주려다가 생기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상 탈진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다 생기는 결과이다. 탈진은 분명 공허함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주어서 생기는 결과가 아니다. 내가 주려고 해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 내 본성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선물이 나의 참다운 본성, 유기적인 실체 속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내가 그것을 주어 버린다 해도 스스로 다시 생겨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베풂의 결과는 탈진이 아니라 비옥함과 풍요로움이며, 나를 새롭게 할 것이다.
오직 내 안에서 자라지 않는 것을 주려 할 때, 그 행위는 나를 고갈시키며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된다. 강요되고, 기계적이며, 실체가 없는 선물은 해악만 불러온다. 97, 98
바로 지금 여기에
도덕과 그 결과물은 신이 만든 현실 구조에 이미 녹아들어 가 있다. 도덕 기준은 우리가 손 내밀어 잡아야 할 무엇이 아니며, 도덕적 결과는 우리가 기다려야 할 무엇도 아니다. 그것들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자아와 타인, 세상의 본성을 따르는지 거역하는지를 지켜보면서. 100
세상 뒤집어 보기
열리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나는 계속 닫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걱정에 가려 숨겨진 비밀을 보지 못할 뻔했다. 나는 이미 새로운 인생의 땅을 딛고 서 있었고, 여행의 다음 행보를 내닫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저 몸을 돌려 내 앞에 놓인 풍경을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반대의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한계와 능력 사이의 창조적 긴장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본성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야 한다.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 경험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 108
상처 입은 치료자
나는 처방전을 쓰는 게 아니다. 그저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내 얘기가 당신, 또는 당신이 염려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들의 고통을 소명에 대한 안내로 바꾸어 놓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14
우울증이 가르쳐 준 것들
우울증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것이 수동적인 행동이거나 포기는 아니다. 낯설지만 사실은 자기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의 힘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다림이며 지켜보는 것이다. 귀 기울이는 것, 고통을 겪어내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한 대로 자기에 관한 지식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그런 다음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매일매일 자아에 생명을 불어넣는 선택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림으로써 다시금 건강한 삶으로 한 걸음씩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118
영혼의 고통에 다가가기
빌이 내게 준 사랑이 이런 것이었다. 그는 결코 나의 내면을 거짓 위로나 충고로 침범하지 않았다. 그는 내면의 경계선에 가만히 서서 나와 내 여행을, 그리고 모든 상황을 그냥 그대로 놔둘 수 있는 용기를 존중해 주었다. 125
아래로, 아래로
우울증은 나를 안전한 땅, 한계와 재능, 약점과 강점, 어둠과 빛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나의 진실, 나의 본성의 땅 위로 내려서게 하는 친구의 손이었다. 130
빛과 어둠
이제 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137
안으로의 여행
내적 여행을 계속하라, 에고를 지나쳐 참자아에 이르라, 그러면 자아도취에 빠져 헤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따르는 책임감을 좀 더 늠름하게 간직한 채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142
그늘과 영성
스스로 드리운 그림자를 보지 못함으로써 리더들은 너무나 자주 위험한 착각에 빠져 그러한 생각들을 키워 나간다. 자신의 노력은 언제나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능력도 충분한데, 문제는 자신이 인도하려는 사람들에 있다는 식의 생각 말이다.
리더십, 특히 대중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외향적인 기질이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종종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무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더는 외부 세계를 경영하는 전문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그늘과 빛의 근원을 향한 내면의 여행을 올바로 해내는 영적인 기술도 갖추어야 한다. 151, 152
리더가 갖기 쉬운 다섯 가지 그늘
그늘을 드리우는 첫 번째 괴물은 자기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이다.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리더들이 자기 정체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어떤 외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리더들은 정체성이란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그 역할에 주어지는 타인에 대한 지배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162, 163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두 번째 그늘은 세상은 전쟁터이며 사람에게 적대적인 곳이라는 믿음이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마치 전쟁터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가게 한다.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대개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현실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조화라는 영적 진실이다. 165, 166
리더들에게 흔한 세 번째 그늘은 모든 일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 우리 인간의 몫이라는 믿음이다. 내적 여행에서 우리가 받는 선물은, 세상에는 우리만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활동이 있기만 한 게 아니라, 그중 어떤 것은 우리보다 낫다.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힘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짐을 우리가 져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내면에 있는 네 번째 그늘은 두려움, 특히 인생의 혼돈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는 세상을 완벽하게 정돈하고 배열하여 다시 혼란스러움이 일어나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혼란이란 의견 차이, 혁신, 도전과 변화를 의미한다. 가정, 학교, 종교, 기업에서 이 그늘은 규칙과 절차를 엄격하게 하여, 권한 부여가 아닌 구속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러고 나면 우리가 가두어 놓은 혼란은 구속을 깨고 나오려고 발버둥 친다. 167, 168
리더가 드리우는 그늘에 대한 마지막 예는, 역설적이지만 죽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되면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살기도 한다. 이런 부정을 따르는 리더들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이미 죽은 것을 부활시키라고 요구한다.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과제와 프로그램이, 죽음을 자기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은 리더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계속 살아 있게 되는 것이다. 내적 여행에서 우리가 얻는 선물은 결국 모든 것에는 죽음이 다가옴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끝은 아니다. 생명이 다한 어떤 것을 죽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168, 169
공동체에서의 내면 활동
먼저 ‘내면 활동(inner work)’의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내면 활동이 외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있다는 것부터 인식해야 한다. 그러한 활동에는 일기 쓰기, 책 읽기, 명상과 기도처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로, 내면 활동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 공동의 통찰력과 지원에 대한 모델로 퀘이커 공동체의 투명위원회 같은 것이 있다. 개인적 문제에 대해 제안이나 조언은 금지되어 있고 세 시간 동안 정직하고 개방적인 질문을 통해 스스로 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절차는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을 막고,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의식의 탄생을 돕는 산파 역할을 한다. 이런 형태의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은, 관계를 맺되 그 안에서 서로 혼자일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역설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되, 그 방식은 영혼의 고독을 존중해야 한다. 171, 172
세 번째로, 우리는 서로에게 두려움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지배적인 역할을 상기시켜 줄 수 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발견하는 그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부에 두려움의 공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뢰와 희망, 믿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공간들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공간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거기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173, 174
끝없는 순환
우리의 인생이 끝없는 계절의 순환과 같다는 개념은 투쟁과 기쁨, 손실과 이득, 어둠과 빛을 부정하지 않으며,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포용하도록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의 기회를 발견하도록 기운을 북돋아 준다.
가을
가을은 대단히 아름다운 계절임에 틀림없지만, 또한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는 겨울을 앞에 두고 자연은 가을에 어떤 일을 하는가? 자연은 새봄에 다시 자라날 씨앗을 뿌린다. 가을은 새 생명의 전조로서 매일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185, 189
겨울
겨울은 눈앞의 풍경을 깨끗이 치워 준다. 혹독하긴 하지만,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 서로를 더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 우리 존재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192
봄
봄은 내게 가능성을 지닌 초록 줄기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가르친다. 직관적인 육감은 폭넓은 통찰력으로 변한다. 눈빛과 손짓이 얼어붙은 관계를 녹일 수도 있으며, 낯선 이의 친절한 행동이 세상을 다시금 살 만한 곳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197, 198
여름
인간 세상에서 풍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풍요는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려는 의식을 가지고, 공동으로 저장한 것들을 자축하고 함께 나눌 때 찾아온다. 돈, 사랑, 권력, 어휘, 부족한 자원이 무엇이든 그것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서로 돌려쓰면 그 자원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205
여름에는 우리가 자연의 과정을 의심했던 것도, 마지막 단어인 죽음이란 말을 꺼냈던 것도, 새로운 생명력에 대한 믿음을 잃었던 것도 모두 잊어버리기 쉽다. 여름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라는 게 그리 굳건하지 않음을 상기시켜 주는 계절이다. 여름은 우리의 불안한 음모를 접어 두고 일상생활에서 지속되는 풍요로운 은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다. 207
*(원문)은 책에는 없지만 제가 찾아서 넣은 것입니다.